라떼기자의 now & then [2회]
곽경근 2021. 10. 17. 05:02
필동 꽃길마을과 충무로 인쇄골목
-정겨운 사람들 모여 사는 소박한 마을
-담벼락 마다 피어난 꽃들과 줄지어서 화분들
-좁은 골목 다닥다닥 마주한 60~70년대 풍경 그대로
-쉴 새 없는 기계소리와 기름과 잉크냄새, 땀 냄새 가득
-인쇄골목의 또 다른 주인공 삼발이와 지게차
-일제강점기 적산가옥 원형 간직해
원래 인쇄골목은 퇴계로 건너편 인현동 일대를 지칭한다. 2000년대 초 청계천복원 사업이 시작되면서 청계천 일대에 있던 인쇄소들이 하나 둘 필동지역으로 이주를 한다. 조선시대 남산골 선비들이 기거하고, 일제강점기 이후 주택가가 형성된 필동이 새로운 인쇄 골목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대한극장에서 약 5분을 걸어올라 필동로 3길로 접어들면 번화한 도심과는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골목 또는 골목길(alley)이란 건물 사이나 뒷면에 형성된 길을 가리키는 말이다. 흔히 폭이 좁아 소수의 보행자만 통행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경우가 많으며, 건물들이 밀집해 있는 도시 지역에 많이 나타난다. 간혹 큰 길에서 갈라져 나온 작은 길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도 쓰인다.
CCTV가 설치가 적었던 예전의 골목길은 사람의 통행이 적고 마을 자체가 어둡고 미로가 많아 우범지역으로 인식하기도 했다. 가을비가 종일 오락가락했던 지난 7일, 기자가 찾은 필동로 3길에서 필동로 5길로 이어지는 필동골목은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이어주는 화초들이 좁은 골목에 줄지어 피어 있다. 낮선 사람들이 마을 입구로 들어서자 동네 강아지들이 일제히 짖어댄다. 어느 집 아주머니가 담장너머로 “조용히 해!” 한 마디하자 개짓는 소리가 일제히 멈춘다.
강아지도 낮은 지붕 위나 담장에서 쉽게 눈에 띄는 길량이들도 담벼락에 수줍은 듯 피어난 꽃들과 계단에 열병식 하듯 줄지어 서 있는 화분들도 모두 한 식구처럼 느껴졌다. 좁은 골목만큼이나 마을 사람들 마음의 간격도 가까워 보였다.
젊은 시절 권투선수 생활을 했다는 김종상(70)씨는 “이 동네처럼 운동하기 좋은 곳은 없어요. 사시사철 변하는 자연을 눈으로 바로 확인하면서 평지와 언덕과 산을 오르고 내리다 보면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요… 운동을 열심히 하고 싶어서 군 제대 후 창신동에 잠시 살다가 필동으로 이사 온지가 어느 새 40 년이 넘었네요”라며, “인쇄업을 하면서 마라톤 풀코스를 15번 이상 완주했다”며 탄탄한 몸매를 드러내 보였다.
기자와 대화를 마친 김종상 씨는 잠시 기다리라더니 집에서 라면 박스를 들고 나왔다. “이것 가져가세요. 어차피 나 혼자 다 못 먹는데 기자 선생님도 좀 드셔 보세요. 신제품인데 생각보다 맛있어요”라며 정성을 표하는데 겨우 사양했다.
92세 할머니의 요양보호사로 이 마을에 일주일 전에 처음 왔다는 김00(62)씨는 “세상에 서울 하늘 아래 이런 마을이 있다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좁은 골목길 사이로 나지막한 집들이 끊어질 듯 이어지더니 그 속에 사람 냄새 진하게 느껴지는 아름다운 마을이 숨어 있었네요.”라고 말했다.
필동로 5길로 접어들며 꽃길 골목이 끝날 무렵 만난 한 주민은 “원래 필동 올라오는 큰길은 남산에서 내려오는 물길이 있었고 현 CJ 뒤쪽 길이 본길이었다. 퇴계로 건너 인현동에서 태어나 필동에서 50년 째 살고 있다."는 그는 “옛날 이 곳은 주택가였고 이승만 전 대통령 별장으로 소문난 대 저택은 현재 고급 예식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어느 날부터인가 한집 두 집 인쇄소가 들어서더니 마을 전체가 공장이 된 것 같다”고 했다.
가칭 '필동 꽃길 골목'은 대한극장을 끼고 5분 정도 올라가면 길 건너 동원교회에서 시작해 필동로 5길로 필동공용주차장 방향으로 나오면 된다. 꽃길 마을에는 관음사라는 소박한 절도 있다. 마을이 아담해서 30분정도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
현대적 의미의 인쇄골목으로 성장한 것은 구한말 남산 아래 터 잡은 일제의 통감부 등에서 제국의 선전물을 만들기 위해 형성되었다.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 충무로에 영화산업이 활발하게 자리 잡으면서 영화산업과 함께 발전해 충무로하면 영화판과 인쇄판이 거리를 활기차게 만들었다.
충무로역에서 을지로 방향 충무로동과 필동, 인현동 일대를 통칭해 ‘충무로 인쇄골목’ 또는 ‘인현동 인쇄골목’이라고 부른다. 골목과 골목 사이 크고 작은 건물에는 여러 개의 인쇄소가 또아리를 트고 있다. 골목 뿐 아니라 사람끼리 어깨를 비껴야 겨우 지나칠 샛길 구석진 곳에서도 인쇄기가 부지런히 돌아가고 있다. 충무로 인쇄골목에는 종이가게, 재단소, 제본소, 코팅집, 출력실까지 대략 5000여개의 인쇄와 관련된 모든 업종이 충무로 인쇄골목을 채우고 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좁은 골목 안, 낡은 간판이 붙어있는 건물 사이를 오토바이를 개조한 운반수단인 삼발이가 쉴 새 없이 오간다. 인쇄기와 함께 지게차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이처럼 충무로 인쇄골목은 인쇄와 모든 후처리 과정이 실핏줄처럼 연결돼 협업을 통해 완성된다.
“하리꼬미, 돈땡, 구와이, 하리, 베다, 야리, 도무송...” 알 듯 모를 듯 아직도 일본 말이 남아 있는 인쇄골목에서 평생을 살아 온 이영철(60)씨는 “이 골목에서만 40년 넘게 기름밥을 먹고 있지만 인쇄 경기가 예전 같지 않아요... 어려서부터 배운 게 이 일이고 이 일만 할 줄 아니 아직도 하고 있다.”며, “여기 있는 기계 2대로 아이들 공부 다 가르치고 집도 사고 이제는 소일거리로 일한다. 젊은이들이 힘든 인쇄 일을 배우려 들지 않으니 우리 세대가 아직 일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종합광고기획사인 이케이커뮤니케이션 노은경 실장은 “광고 출판업의 특징이 꼭 일을 닥쳐서 주문한다. 하루나 이틀 만에 완성을 요구하는 경유가 비일비재한데 그럴 경우 대형업체에서는 일정을 잡을 수조차 없다.”면서 “하지만 충무로에는 이 골목에서 잔뼈가 굵은 백전노장들이 있어 다품종 소량 발주에서는 순발력과 품질 모두를 보장할 수 있다. 충무로의 베테랑 인쇄기술자들은 밤을 새워서라도 납기를 맞춰주기 때문에 충무로를 찾는다”고 말한다.
바쁘게 돌아가는 서울 생활에서 출발지와 목적지만 있는 도시인에게 충무로 골목은 그저 지나치는 곳이다. 지하철 환승역에서 줄지어 열차를 갈아타는 무리에서 잠시 벗어나 충무로 인쇄골목을 들어가 보면 삶의 활력을 맛 볼 수 있다. 이웃한 인현시장의 저렴한 대폿집에서 자신만의 철학을 설파하며 대포잔을 기울이는 샐러리맨들의 대화도 귀 기울여 봄직하다. 일제강점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적산가옥들이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며 오래된 필름카메라나 스마트폰에 담아보자. 좁고 쇄락한 골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삶의 향기를 느껴 보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다.
인쇄는 물론 영화와 사진, 출판 거리로 유명했던 충무로 일대의 옛 영화(榮華)는 희미하지만 여전히 충무로에는 관련 업종 사람들이 모여들어 오늘도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거나 앞서가며 분주히 골목을 오간다.
kkkwak7@kukinews.com
-정겨운 사람들 모여 사는 소박한 마을
-담벼락 마다 피어난 꽃들과 줄지어서 화분들
-좁은 골목 다닥다닥 마주한 60~70년대 풍경 그대로
-쉴 새 없는 기계소리와 기름과 잉크냄새, 땀 냄새 가득
-인쇄골목의 또 다른 주인공 삼발이와 지게차
-일제강점기 적산가옥 원형 간직해
필동 꽃길마을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 나비 꽃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쿠키뉴스] 글·사진 곽경근 대기자= 지하철 충무로역 1번 출구 대한극장 옆 골목으로 들어서면 '노찾사'의 ‘사계(四季)’가 입가에 멤 돈다. 퇴계로 지역 직장인들 사이 맛집으로 소문난 저렴하고 맛난 식당들을 지나다 보면 여기저기서 인쇄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미싱은 아니, 인쇄기는 잘도 도네 돌아가네...”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 나비 꽃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쿠키뉴스] 글·사진 곽경근 대기자= 지하철 충무로역 1번 출구 대한극장 옆 골목으로 들어서면 '노찾사'의 ‘사계(四季)’가 입가에 멤 돈다. 퇴계로 지역 직장인들 사이 맛집으로 소문난 저렴하고 맛난 식당들을 지나다 보면 여기저기서 인쇄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미싱은 아니, 인쇄기는 잘도 도네 돌아가네...”
원래 인쇄골목은 퇴계로 건너편 인현동 일대를 지칭한다. 2000년대 초 청계천복원 사업이 시작되면서 청계천 일대에 있던 인쇄소들이 하나 둘 필동지역으로 이주를 한다. 조선시대 남산골 선비들이 기거하고, 일제강점기 이후 주택가가 형성된 필동이 새로운 인쇄 골목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대한극장에서 약 5분을 걸어올라 필동로 3길로 접어들면 번화한 도심과는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골목 또는 골목길(alley)이란 건물 사이나 뒷면에 형성된 길을 가리키는 말이다. 흔히 폭이 좁아 소수의 보행자만 통행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경우가 많으며, 건물들이 밀집해 있는 도시 지역에 많이 나타난다. 간혹 큰 길에서 갈라져 나온 작은 길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도 쓰인다.
CCTV가 설치가 적었던 예전의 골목길은 사람의 통행이 적고 마을 자체가 어둡고 미로가 많아 우범지역으로 인식하기도 했다. 가을비가 종일 오락가락했던 지난 7일, 기자가 찾은 필동로 3길에서 필동로 5길로 이어지는 필동골목은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이어주는 화초들이 좁은 골목에 줄지어 피어 있다. 낮선 사람들이 마을 입구로 들어서자 동네 강아지들이 일제히 짖어댄다. 어느 집 아주머니가 담장너머로 “조용히 해!” 한 마디하자 개짓는 소리가 일제히 멈춘다.
강아지도 낮은 지붕 위나 담장에서 쉽게 눈에 띄는 길량이들도 담벼락에 수줍은 듯 피어난 꽃들과 계단에 열병식 하듯 줄지어 서 있는 화분들도 모두 한 식구처럼 느껴졌다. 좁은 골목만큼이나 마을 사람들 마음의 간격도 가까워 보였다.
필동 꽃길 골목에서 만난 오경자(77) 할머니는 “여기 계단과 벽에 핀 꽃들은 모두 내가 심고 가꾼 겁니다. 우리 마을은 너나없이 모두 한 식구죠. 서울 한복판에 옛 인심을 그대로 간직하면서 따뜻한 정을 나누는 곳은 그리 많지 않을 거예요”라며 “우리 동네는 공기가 너무 좋아요. 아침에는 참새, 비둘기, 직박구리, 까치 등 부지런한 새들 노랫소리에 잠을 깨고, 올 여름 그렇게 더웠다고 하는데 산 아래 마을이라 그런지 더운 줄 모르고 지냈다”면서 할머니는 이 마을에 사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젊은 시절 권투선수 생활을 했다는 김종상(70)씨는 “이 동네처럼 운동하기 좋은 곳은 없어요. 사시사철 변하는 자연을 눈으로 바로 확인하면서 평지와 언덕과 산을 오르고 내리다 보면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요… 운동을 열심히 하고 싶어서 군 제대 후 창신동에 잠시 살다가 필동으로 이사 온지가 어느 새 40 년이 넘었네요”라며, “인쇄업을 하면서 마라톤 풀코스를 15번 이상 완주했다”며 탄탄한 몸매를 드러내 보였다.
기자와 대화를 마친 김종상 씨는 잠시 기다리라더니 집에서 라면 박스를 들고 나왔다. “이것 가져가세요. 어차피 나 혼자 다 못 먹는데 기자 선생님도 좀 드셔 보세요. 신제품인데 생각보다 맛있어요”라며 정성을 표하는데 겨우 사양했다.
92세 할머니의 요양보호사로 이 마을에 일주일 전에 처음 왔다는 김00(62)씨는 “세상에 서울 하늘 아래 이런 마을이 있다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좁은 골목길 사이로 나지막한 집들이 끊어질 듯 이어지더니 그 속에 사람 냄새 진하게 느껴지는 아름다운 마을이 숨어 있었네요.”라고 말했다.
필동로 5길로 접어들며 꽃길 골목이 끝날 무렵 만난 한 주민은 “원래 필동 올라오는 큰길은 남산에서 내려오는 물길이 있었고 현 CJ 뒤쪽 길이 본길이었다. 퇴계로 건너 인현동에서 태어나 필동에서 50년 째 살고 있다."는 그는 “옛날 이 곳은 주택가였고 이승만 전 대통령 별장으로 소문난 대 저택은 현재 고급 예식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어느 날부터인가 한집 두 집 인쇄소가 들어서더니 마을 전체가 공장이 된 것 같다”고 했다.
가칭 '필동 꽃길 골목'은 대한극장을 끼고 5분 정도 올라가면 길 건너 동원교회에서 시작해 필동로 5길로 필동공용주차장 방향으로 나오면 된다. 꽃길 마을에는 관음사라는 소박한 절도 있다. 마을이 아담해서 30분정도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
필동 꽃길마을을 내려와 충무로 인쇄골목을 찾다
대한극장을 건너 충무로 인쇄골목 안으로 들어서니 70년대 대학 시절 사진전시회 팸플릿을 만들기 위해 들렸던 당시의 모습과 크게 변하지 않았다.
충무로가 인쇄와 관련된 것은 조선시대에 활자를 주조하여 서적의 인쇄를 담당했던 중앙관서인 주자소(鑄字所)가 있었던 곳에서 시작할 수 있다. 충무로역 5번 출구 남산스퀘어빌딩 택시승강장 앞 화단에는 옛 주자소 터라는 푯돌이 세워져 있다.
대한극장을 건너 충무로 인쇄골목 안으로 들어서니 70년대 대학 시절 사진전시회 팸플릿을 만들기 위해 들렸던 당시의 모습과 크게 변하지 않았다.
충무로가 인쇄와 관련된 것은 조선시대에 활자를 주조하여 서적의 인쇄를 담당했던 중앙관서인 주자소(鑄字所)가 있었던 곳에서 시작할 수 있다. 충무로역 5번 출구 남산스퀘어빌딩 택시승강장 앞 화단에는 옛 주자소 터라는 푯돌이 세워져 있다.
현대적 의미의 인쇄골목으로 성장한 것은 구한말 남산 아래 터 잡은 일제의 통감부 등에서 제국의 선전물을 만들기 위해 형성되었다.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 충무로에 영화산업이 활발하게 자리 잡으면서 영화산업과 함께 발전해 충무로하면 영화판과 인쇄판이 거리를 활기차게 만들었다.
충무로역에서 을지로 방향 충무로동과 필동, 인현동 일대를 통칭해 ‘충무로 인쇄골목’ 또는 ‘인현동 인쇄골목’이라고 부른다. 골목과 골목 사이 크고 작은 건물에는 여러 개의 인쇄소가 또아리를 트고 있다. 골목 뿐 아니라 사람끼리 어깨를 비껴야 겨우 지나칠 샛길 구석진 곳에서도 인쇄기가 부지런히 돌아가고 있다. 충무로 인쇄골목에는 종이가게, 재단소, 제본소, 코팅집, 출력실까지 대략 5000여개의 인쇄와 관련된 모든 업종이 충무로 인쇄골목을 채우고 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좁은 골목 안, 낡은 간판이 붙어있는 건물 사이를 오토바이를 개조한 운반수단인 삼발이가 쉴 새 없이 오간다. 인쇄기와 함께 지게차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이처럼 충무로 인쇄골목은 인쇄와 모든 후처리 과정이 실핏줄처럼 연결돼 협업을 통해 완성된다.
“하리꼬미, 돈땡, 구와이, 하리, 베다, 야리, 도무송...” 알 듯 모를 듯 아직도 일본 말이 남아 있는 인쇄골목에서 평생을 살아 온 이영철(60)씨는 “이 골목에서만 40년 넘게 기름밥을 먹고 있지만 인쇄 경기가 예전 같지 않아요... 어려서부터 배운 게 이 일이고 이 일만 할 줄 아니 아직도 하고 있다.”며, “여기 있는 기계 2대로 아이들 공부 다 가르치고 집도 사고 이제는 소일거리로 일한다. 젊은이들이 힘든 인쇄 일을 배우려 들지 않으니 우리 세대가 아직 일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종합광고기획사인 이케이커뮤니케이션 노은경 실장은 “광고 출판업의 특징이 꼭 일을 닥쳐서 주문한다. 하루나 이틀 만에 완성을 요구하는 경유가 비일비재한데 그럴 경우 대형업체에서는 일정을 잡을 수조차 없다.”면서 “하지만 충무로에는 이 골목에서 잔뼈가 굵은 백전노장들이 있어 다품종 소량 발주에서는 순발력과 품질 모두를 보장할 수 있다. 충무로의 베테랑 인쇄기술자들은 밤을 새워서라도 납기를 맞춰주기 때문에 충무로를 찾는다”고 말한다.
바쁘게 돌아가는 서울 생활에서 출발지와 목적지만 있는 도시인에게 충무로 골목은 그저 지나치는 곳이다. 지하철 환승역에서 줄지어 열차를 갈아타는 무리에서 잠시 벗어나 충무로 인쇄골목을 들어가 보면 삶의 활력을 맛 볼 수 있다. 이웃한 인현시장의 저렴한 대폿집에서 자신만의 철학을 설파하며 대포잔을 기울이는 샐러리맨들의 대화도 귀 기울여 봄직하다. 일제강점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적산가옥들이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며 오래된 필름카메라나 스마트폰에 담아보자. 좁고 쇄락한 골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삶의 향기를 느껴 보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다.
인쇄는 물론 영화와 사진, 출판 거리로 유명했던 충무로 일대의 옛 영화(榮華)는 희미하지만 여전히 충무로에는 관련 업종 사람들이 모여들어 오늘도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거나 앞서가며 분주히 골목을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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