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유대인이 아프간인 탈출 돕나" 물었더니, 그의 한마디
미국 뉴욕에 거주하는 유대인 랍비(유대교 율법교사)가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에서 탈출을 시도하는 아프간인들을 구조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그는 지금껏 아프간에서 미국과 동맹국을 도운 통역가, 여성 운동가, 운동선수는 물론 일반 시민까지 수십 명을 구출했다.
아프간 아이 네명 구출해 엄마와 재회
14일(현지시간) 영국 BBC 방송은 41세 랍비 모셰 마가렛텐에 대해 소개했다. 마가렛텐의 ‘아프간인 구출 작업’은 지난 8월 4명의 아프간 아이들을 미국으로 데려온 일로 세간에 알려졌다. 당시 마가렛텐이 데려온 아이들의 아버지는 미군을 돕는 활동가로 일하다 갑자기 실종된 상태였다. 아버지가 사라진 뒤 어머니 수니타는 먼저 미국으로 이사와 아이들을 데려올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아이들만 아프간에 남겨진 상태에서 수도 카불이 갑작스럽게 탈레반에게 함락되자 수니타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잠도 잘 수 없고 음식도 먹을 수 없었다. 수니타는 미국난민및이민자위원회의 변호사인 사라 로우리에게 도움을 청했고, 얼마 뒤 마가렛텐과 연이 닿았다. 마가렛텐은 수니타에게 “내가 당신 아이들이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도록 도울 수 있다”고 했다.
마가렛텐은 자신이 소속된 랍비총회인 체덱협회와 아프간 내 네트워크를 활용했다. 그는 “아프간 내에 믿을만한 사람을 찾아 그에게 최대한 빨리 아이들을 돌보게 했다. 그리고 한시간 뒤 그가 아이들을 공항으로 데려갔다”고 말했다. 공항에 도착한 지 몇 시간 안에 아이들은 카타르로 가는 비행기를 탔고, 며칠 뒤 미국 뉴욕주 올버니에 도착해 어머니 수니타의 품에 안겼다.
여자 축구선수, 인권운동가, 통역사 탈출 도와
마가렛텐이 처음으로 아프간인 구출을 도운 건 아프간 내의 마지막 유대인으로 알려진 카펫 상인 자블론 시민토프를 빼내오면서다. 지난 8월 시민토프는 마가렛텐에게 연락해 “현 상황은 20년 전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했을 때보다 훨씬 심각하다”며 필사적으로 탈출하려 했다. 마가렛텐은 시민토프를 돕는 과정에서 위험에 처한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걸 알게 됐고 그들을 구출하는 일에 뛰어들었다.
먼저 체덱협회와 함께 뉴욕 브룩클린과 시카고의 유대인 공동체를 통해 기금을 마련했다. 이후 아프간의 주니어 여자축구 국가대표들이 가족과 함께 국경을 넘을 수 있게 도왔다. 여성·아동 인권운동가 파리다(25·가명) 역시 마가렛텐의 도움으로 아프간을 빠져나왔다. 파리다는 “탈레반이 내가 숨어있는 곳까지 찾아와 문을 두드려댔다. 나는 두려움에 빠져 있었다”고 말했다. 도울 곳을 찾아 헤매던 파리다가 마가렛텐의 팀과 연결된 뒤 24시간 만에 아프간에서 구출됐다. 아프간 통역사로 유엔군을 도왔던 알렘(36·가명) 역시 마가렛텐의 도움을 받아 자신을 찾는 탈레반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마가렛텐은 “이 일에 깊이 관여할수록 엄청나게 많은 연락이 오고 있다”면서 “한밤중에 걸려온 전화를 받으면 ‘랍비여, 나를 도와주세요. 제 목숨이 위험합니다’라고 울부짖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게 행복하지만, 가장 위험한 사람을 찾아 우선순위를 매겨 구해야 하는 현실은 정말 슬프다”고 말했다. 마가렛텐은 구조된 사람들이 새로운 곳에서 정착할 수 있도록 자금 지원과 서류 작업까지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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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부모 홀로코스트 생존자…누구든 도와야”
BBC는 “많은 사람들이 정통 유대교 랍비인 마가렛텐이 왜 아프간의 이슬람교도를 돕는 지 궁금해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마가렛텐은 “답은 간단하다. 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홀로코스트 생존자”라고 말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가 유럽을 휩쓸었을 때 헝가리에 계셨던 내 조부모님이 겪었던 공포와 현재 아프간인의 경험은 비슷할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은 선택지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내가 구조하는 사람이 유대인인지 아닌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라며 “유대교의 가르침은 ‘하나님의 창조물에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비를 받는다’는 것이다. 누구라도 생명이 위험에 처했을 때 유대인이 가장 먼저 그를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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