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의 추수감사절, 이 음식들을 빼놓으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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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아 기자]
캐나다 와서 결혼한 지 3년째인데, 나는 최근 처음으로 추수감사절을 맞이했다. 서양에서는 추수감사절이 크리스마스 못지않게 큰 행사라고 알고 있었는데, 우리 집에서는 늘 그냥 지나가는 날이었다. 남편에게 아픈 기억이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너무나 사랑하는 형님을 잃은 날이다.
그래서 남편은 그 이후로는 추수감사절을 한 번도 센 적이 없었다. 그렇게 십 년이 넘도록 묻혀서 흘러갔는데, 이번엔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았다. 이제는 놓아버릴 때가 되었다고 혼잣말을 하는 그에게, 나는 칠면조를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사실 꼭 그 고기가 먹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남편의 가슴에 있는 무거움을 이제는 놓아버리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내 그 말에 남편도 힘을 입어, 그러면 추수감사절 저녁을 차려 먹자고 했다. 갑자기 결정을 한지라, 바로 전날 슈퍼마켓에 나가서 칠면조를 사려니 모두 품절이었다. 결국 여기저기 발품을 팔아 간신히 구해왔다.
▲ 시어머니의 호박파이 레시피가 적힌 종이 |
ⓒ 김정아 |
남편이 호박파이를 먹었던 것은 평생 딱 한 번이라고 했다. 남편은 글루텐 불내증이 있기 때문에 밀가루 음식을 못 먹는데 아주 어릴 때, 모르고 한 번 먹어봤다고 했다. 남편이 늘 심하게 아프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였다.
▲ 방금 구워서 나온 호박파이 |
ⓒ 김정아 |
칠면조 손질은 남편이 알아서 했다. 칠면조에서 꺼낸 간과 심장도 삶아서 먹으면서 식사 준비를 했다. 처음 먹어보는 내장이었는데, 나름 맛이 있었다. 원래 칠면조를 구울 때에는 위에 한 번씩 기름을 끼얹어줘서 촉촉하게 굽는 것이 원칙이지만, 베이컨을 얹어서 구우면 베이컨의 기름이 배어들면서 번거로운 일을 줄일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구워진 베이컨은 너무 맛있다. 옛날에 이렇게 구울 때면, 아이들이 이 베이컨을 먹겠다고 모두 모여들었다고 한다.
▲ 베이컨으로 덮여서 오븐에 들어간 칠면조 |
ⓒ 김정아 |
나라마다 다른 추수감사절
조리를 하는 중에, 미국에 있는 딸아이한테서 전화가 왔다. 우리가 추수감사절 식사 준비를 하고 있다고 알려줬다. 미국은 추수감사절이 아직 한 달도 더 남았다. 그러고 보면 한국의 추석은 이미 지난달에 지났는데... 캐나다는 10월 둘째 월요일이고, 미국은 11월 넷째 목요일이다.
▲ 크랜베리 소스 만들기 |
ⓒ 김정아 |
전화를 끊고서 나는 크랜베리 소스를 만들었다. 미리 만들어서 실온의 상태로 서빙해야 하기 때문에 서둘러야 했다. 올해 나온 신선한 크렌베리에 오렌지 껍질을 다져 넣어 향을 더했다. 크랜베리는 끓이다가 보면 늘 빨간 보석처럼 보인다. 맛도 달지 않고 새콤하기만 한 것이 딱 취향에 맞는다.
칠면조를 마저 익히는 동안, 곁들일 것들을 준비했다.
▲ 서양호박 버터넛 스쿼시(왼쪽), 한국의 조선호박(가운데), 조선호박 단면(오른쪽) |
ⓒ 김정아 |
그 외에도 감자는 쪄서 오븐에 다시 구울 수 있도록 준비했고, 당근과 꼬마 양배추는 각각 삶은 후, 물을 따라내고 버터에 버무려서 완성할 수 있게 준비를 완료했다.
▲ 칠면조는 보통 집안의 가장이 자른다. |
ⓒ 김정아 |
식구들이 다 모여서 먹었다면 여러 가지를 상 위에 올려놓고 추가로 덜어가며 먹겠지만, 우리는 이번에 갑자기 차리면서 자식들도 부르지 않았기에, 거창하게 하지 않고 아주 큰 접시를 꺼내서 그냥 한꺼번에 모두 담아서 서빙을 하였다.
▲ 간단한 추수감사절 상차림. 깻잎 꽃대를 꽂아서 추수감사의 의미를 살렸다 |
ⓒ 김정아 |
접시 위에는 야채들을 색 맞춰 담았고, 칠면조는 크랜베리 소스를 찍어서 먹었다. 빨간색이 화려한 크랜베리 소스는 칠면조와 정말 찰떡궁합이라는 남편의 말을 듣고 조금 얹어서 먹어보았는데, 정말 잘 어울리는 맛이었다. 크리스마스 때 거위와 함께 먹어도 맛있을 것 같았고, 한국식이라면, 닭가슴살 같은 것에도 잘 어울릴 것 같았다.
▲ 크랜베리 소스를 얹어서 먹는 칠면조 요리 |
ⓒ 김정아 |
식사를 하면서 남편은 옛 어른들을 회상하는 이야기를 하였다. 사람들은 추억을 먹고 산다 했던가. 크리스마스 같이 왁자지껄하지 않은, 그저 조용한 우리의 추수감사절은, 한국의 추석과도 또 다른 모습으로 흘러갔다. 가끔 남편의 눈가에 스치는 눈물을 보며, 나는 그저 손을 꼭 잡아줄 뿐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고맙다고 말했다. 남편은 내 덕분에 드디어 추수감사절을 다시 맞이할 수 있어서 고맙다고 했고, 나는 이렇게 멋진 식사를 준비해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함께 가을의 수확을 일궈낸 것에 대해서도 감사를 나눴다.
▲ 호박파이 |
ⓒ 김정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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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https://brunch.co.kr/@lachouette/ 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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