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문화 없애 vs 싫으면 나가"..노벨상 '0', 韓 과학계 갈 길은?[과학을읽다]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1. 앨버트 아인슈타인은 20대 중반이었던 1905년 학계의 대세 '빛의 파동설'을 반박하고 입자로 구성됐다는 '광양자설'을 제시해 '미친 놈' 소리를 들었지만 이 공로로 1921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습니다. 불확정성의 원리와 양자물리학의 창시자인 베르너 하이젠베르크(1932년 노벨물리학상)도 25세 때인 1926년 스승인 닐스 보어와 함께 양자역학을 수학적으로 입증하고 '행렬 역학'을 발표했습니다.
2021년 노벨상 수상자가 마무리됐고 올해도 '무관'에 그친 한국 과학계에선 이런 저런 진단이 나옵니다. 오늘 얘기하기 싶은 것은 두 위대한 과학자들처럼 젊은 나이의 한국 과학자들로부터 창의·독창적 연구를 막고 있는 한국의 '후진적 연구 문화'입니다.
한국 대학의 연구실은 아직도 교수가 절대적 권위와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여기에 질식된 젊은 학생들의 창의적 아이디어와 열정이 노벨상을 받을 만한 위대한 연구 결과로 이어지기 힘들다는 지적입니다. 연구비 유용이나 횡령 등 비리가 속출하고 가끔 교수의 전횡ㆍ갑질로 학생들이 큰 고통을 당하는 경우도 있죠. 젊은 과학자들은 이런 연구실 문화를 개선해야 창의적ㆍ독창적 연구가 가능하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교수들은 전혀 다르더군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반응이었습니다.
◇'공장식' 연구실에 질식하는 젊은 과학자들
젊은 연구자들은 한국의 연구 문화의 후진성을 지적하며 개혁을 강력히 원하고 있었습니다. 김수지 한국과학기술원(KAISTㆍ카이스트) 대학원총학생회 부회장에 따르면, 한국의 연구실은 아직도 도제식 문화의 공장형 연구실 형태를 갖고 있는 곳이 많습니다. 공장형 연구실이란 대형 과제를 여럿 수주한 뒤, 몇 명의 고연차 박사학생이 과제별로 팀장을 맡아 운영하는 방식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이런 연구실은 체계적으로 운영되고 신입생이 들어오더라도 헤매지 않고 '시키는 데로' 하기만 하면 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단점도 분명합니다. 지도교수에 학생이 일방적으로 할당되는 방식이라 본인이 원하지 않는 학문 분야이거나 교수와 맞지 않을 경우 아예 과학자의 꿈을 포기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정부의 프로젝트를 따서 꾸려진 연구실이라 이미 주제, 방향, 방침이 다 정해져 있어 자유ㆍ창의ㆍ독창적 연구가 힘들죠. 또 팀장인 박사과정생들은 과도한 업무에 치어 정작 자신의 연구ㆍ공부는 뒷전이 됩니다. 지도교수의 방임, 즉 '무관심과 무지도' 현상도 나타납니다.
카이스트 대학원총학생회는 거대 연구실을 구성해 PBS(프로젝트 기반 시스템) 별로 뜻이 일치하는 교수와 학생들이 그때그때 팀을 이루는 방식의 개선책을 제시하고 있답니다. 김 부회장은 "교수들도 뜻이 맞는 학생들로 연구팀을 꾸릴 수 있어 좋고, 학생들 역시 다양한 분야와 다양한 스승으로부터 지도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날 수 있다"며 "이런 연구실의 경우, 현재 교수가 갖고 있는 학생에 대한 전권 (학생인건비, 졸업 기준) 역시 어느 정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준영 울산과학기술원(UNIST) 대학원총학생회장도 비슷한 답을 줬습니다. 그는 "현재 대학원 연구 문화는 지도 교수가 졸업이나 수업 등의 학사 업무부터 휴가나 병가 같은 행정 업무 그리고 학생의 연구까지 관리한다"며 "교수가 학생에게 위력을 가하기 쉬워 수직적 연구실 문화를 만들 뿐 아니라 교수에겐 업무의 부담을 늘리고 학생에게는 자유로운 연구를 하기 어렵게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 외부 공람 가능 행정시스템, ▲ 객관화된 졸업 기준 및 외부 위원을 포함하는 졸업 제도 ▲ 공동 연구ㆍ지도 활성화 등의 대안을 제시했죠.
◇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교수들
그런데 교수들의 의견은 뜻밖에도 정반대였습니다. 지난 4일 노벨 생리ㆍ의학상 수상자 발표 자리에서 교수들은 권위적 연구실 문화가 자유롭고 창의적인 연구를 제약한다는 주장에 대한 의견을 묻자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반응이었습니다.
A 교수는 "(교수의)전문 분야를 벗어난 연구를 하겠다고 하면 제대로 지도를 못하고 책임을 지지 못한다"며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를 찾아가면 되지 않냐"고 답했습니다. B 교수도 "교수가 주제를 갖고 연구를 하고 있는 데 학생이 흥미가 있다고 해서 거기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다. 자유 주제로 연구하는 제도가 있으면 모르겠지만 그땐 또 교수의 지도가 불가능하다"면서 "교수가 이리로 가려고 하는데 학생이 딴 데로 가려고 하면 연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반박했습니다.
문득 미국 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로 꼽히는 매사추세츠공대(MIT)가 매년 개최한다는 '피아노 부수기' 이벤트가 떠오릅니다. 오리엔테이션 강의 후 최종 수강 과목 확정 전에 벌어지는 이 이벤트는 실제로 건물 옥상에서 피아노를 던져 버리는 행사입니다. 오래전 한 학생이 듣고 싶은 강의가 없다며 장난삼아 피아노가 떨어져 부서지는 과정에 대해 연구하고 싶다는 제안을 했고, 학교 측이 대담하게 이를 수용하면서 생긴 행사랍니다. '어떤 주제든 하고 싶은 연구는 다 해보라'며 자유, 창의, 도전, 독창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미국식 연구 문화의 한 특성을 잘 보여줍니다.
반면 ICT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는 한국에선 아직도 실패를 두려워 하고 성과만 생각하는 연구 문화가 대학원은 물론 학부생까지 굳게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피아노가 아니라 더 비싼 샹들리에라도 던져 버릴 수 있도록 허용하는 한국 대학이 나오면 어떨까요? 쓸데없는 권위를 내려놓고, 나이, 세대, 기수 불문 평등한 토론을 통해 연구를 개척해가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노벨상, 아니 그것보다 더한 위대한 연구 업적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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