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 경영 실험' SK 분석해보니..사외이사 59%, 여성 11%

백일현 입력 2021. 10. 16. 09:00 수정 2021. 10. 16.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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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경영자(CEO) 후보 추천 등 선임 단계부터 평가·보상까지 이사회가 관여하게 하겠다. 당장 올 연말부터 CEO 평가와 보상을 각 사 이사회에서 결정한다.”
SK그룹이 지난 11일 선언한 ‘이사회 중심 경영’의 핵심이다. 그간 계열사 사장 내정자를 그룹 차원에서 내려보내거나, 이사회가 총수와 경영진이 내린 결정을 거의 그대로 통과시키는 ‘거수기’ 역할에 그치던 관행을 바꾸겠다는 취지다.

그러면서 지난 8월 SK㈜ 이사회에서 사내이사인 최태원 회장이 외국기업 H사에 추가로 직접 투자하는 안건을 반대했지만 7명의 이사가 찬성해 해당 안건이 가결된 사례 등을 제시했다. 현재 17개 관계사 중 증시에 상장된 10개사 이사회의 사외이사 비중이 높고, 이 중 7개사는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SK그룹 계열 10개 사 이사회 구성 현황.


본지가 한국CXO연구소 등과 SK그룹 10개사 이사회 구성을 살펴본 결과, 사외이사 비중은 평균 59%였다.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은 계열사는 SK㈜(염재호 전 고려대 총장), SK이노베이션(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 SK텔레콤(김용학 전 연세대 총장), SK하이닉스(하영구 전 씨티은행장), SK네트웍스(하영원 서강대 명예교수), SK가스(정종호 서울대 교수), SK케미칼(문성환 삼양사 비상근 고문) 등이다.

그러나 SK머티리얼즈의 사외이사 비중은 25%에 그쳤다. SK 관계자는 “코스닥 상장 기업이라 다른 계열사와 달리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상법상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는 사외이사 비중이 절반 이상이어야 하지만, 그 미만 상장사는 25%만 충족하면 된다. 하지만 기준은 충족했더라도 사외이사 비율이 낮으면 경영진 결정에 다른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여성 비율도 11%에 그쳤다. 지난해 1월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의 경우 남성 또는 여성만으로 이사회를 구성하지 못하게 명시한 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여성 이사가 최근 잇따라 선임되긴 했지만, 여전히 낮은 비율이다.

특히 경제개혁연구소가 지난해 8월 대기업 사외이사와 감사의 독립성을 분석한 보고서를 발표할 때 SK와 이해관계가 있는 사외이사로 분류했던 인사 중 8명이 지금도 사외이사직을 맡고 있다. 오너 일가와 고교 학연이 있거나 과거 오너가의 소송 대리 등을 맡았던 인사 등이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장은 “SK가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하기 위해 다른 그룹보다 먼저 이사회 중심의 경영을 펼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다”면서도 “총수 중심 경영이 강한 한국에서는 오너가와 관련 있는 인사의 이사회 진출 비율을 낮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도 “SK의 선언을 실행하기도 전부터 폄훼할 이유는 없다”면서도 “상장사의 이사회 구성 자체가 지배주주 의사에 벗어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형식적으로 될 수 있는 만큼 향후 보이는 모습이 관건”이라고 내다봤다.

[자료 한국CXO연구소]


김우찬 고려대 교수(경영학)는 “이사회 중심 경영이 제대로 되려면 대주주로부터 독립적인 사외이사를 선임해야 하고, 그러려면 사외이사 선임에도 대주주가 아닌 소액주주 등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며 올해부터 적용된 감사위원 분리 선출 제도를 언급했다.

지난해 말 개정된 상법은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사에 ‘감사위원 1인 이상 분리 선출’을 의무화(자산 2조원 이하 회사는 자율 도입)했다. 대주주가 뽑은 이사 중에서 감사위원을 선출하지 않고, 대주주로부터 독립적인 지위를 갖도록 감사위원을 별도로 선임하는 제도다. 3% 이상 지분을 가져도 의결권은 3%로 제한된다.

주주들의 목소리가 좀 더 반영될 통로가 생겼다는 평가지만, 최소 3인 이상으로 구성된 감사위원회에서 감사위원 1명이 발휘할 수 있는 영향력은 제한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 교수는 “SK가 감사위원 1명 아닌 전원을 분리 선출하겠다고 하면 진정한 의지를 보여주는 일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사들의 CEO 후보 추천에 우려도


재계에선 SK가 CEO 후보 추천부터 평가 보상까지 이사회가 관여하겠다고 발표한 데 주목하고 있다. SK㈜는 올해 들어 이사회 산하에 ‘인사위원회’와 ‘ESG 위원회’를 신설해 대표이사 평가와 후보 추천, 사내이사 보수 적정성 검토, 중장기 성장전략 검토 등을 이사회에 맡기고 있는데 다른 관계사에도 이를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SK 관계자는 “일부 대기업은 CEO의 보수 한도와 방향을 다 정해준 상태에서 이사회에 안건을 상정해 주총에서 승인받는 식이지만 SK는 이사회가 CEO의 핵심성과지표(KPI)와 보상액을
정하는 것이니 훨씬 앞서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CEO 평가와 보상을 결정하는 인사위원회 위원장이 10개사 모두 사외이사라는 점도 의미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과연 교수·관료 출신 사외이사들이 합당한 CEO 후보군을 끌어오고 판단할 수 있을지 우려하기도 한다. 윤진수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사업본부장은 “SK그룹의 선언은 긍정적인 변화지만 이사회의 전문성이 없거나 정보가 충분히 제공되지 않은 상황에서 권한이 강화되면 잘못된 결정을 할 수 있는 만큼 이사회가 잘 구성돼야 한다”며 “이사회가 할 CEO 평가 기준이 명확해야 하고, 우리는 이런 기준으로 평가하겠다 등을 주주에게 공개한다면 결과에 대해 좀 더 책임지는 모습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선 좀 더 지속적인 CEO 승계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달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기업과 시장을 위한 10대 개혁과제’ 중 하나로 ‘임원 자격 기준 마련과 최고경영자 승계 시스템 정착’을 내놓았다. 실제 미국의 시스코 등 일부 기업은 경영권 승계 프로그램을 운영해 이사회가 분기마다 잠재적 후보들의 성적을 평가한다. CEO 임기 종료 시점이 임박할 때 하는 게 아닌 연속된 과정이 필요하고, CEO 후보군과 자주 접촉하며 회사의 지적유산이 승계되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지배구조, 글로벌 수준으로 올라갈까


SK가 이처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서도 G에 해당하는 지배구조를 글로벌 최고 수준으로 혁신하겠다고 나섰지만,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는 아시아 지역에서조차 하위권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5월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ACGA)의 보고서 ‘CG Watch 2020’에 따르면 기업지배제도 구조와 관행에서 지난 2년간 한국의 종합 점수는 53점으로 호주를 포함한 아시아 12개국 중 9위를 기록했다. 올해 12개국 중 한국보다 낮은 국가는 중국(43점), 필리핀(39점), 인도네시아(34점)뿐이다.

보고서는 한국이 지배구조공시 의무화 대상 범위와 내용, 사내이사를 포함한 이사회 교육 등에서 미흡했다고 평가했다. 개선이 필요한 과제로는 중장기(향후 3년) 기업지배구조 로드맵의 마련 등을 제시했다.

김우찬 교수는 “SK가 이사회를 중심으로 운영하겠다고 하는 건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안 하고 있는 다른 회사들이 이상한 것”이라며 “제대로만 한다면 국내뿐 아니라 해외 주주들이 SK를 더 높게 평가하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한국 기업에 대한 인식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SK서린사옥에서 화상으로 열린 ‘제3차 거버넌스 스토리 워크숍’에 참석해 마무리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SK]

백일현 기자 baek.il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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