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 처벌하려는 특별법이 면죄부?..'5·18 망언' 형사고발 못 하는 속내

진창일 입력 2021. 10. 16. 06:00 수정 2021. 10. 16. 06:2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5·18 북한군 개입" 박훈탁 전 위덕대 교수

5·18 특별법에 따라 왜곡·허위사실 유포 처벌 1호 대상으로 거론되던 전직 교수에 대한 대응방안을 고심하던 5·18 기념재단이 형사고발을 할 것이라는 당초 예상과 달리 민사소송을 진행한다. 왜곡을 처벌하기 위해 신설된 조항이 오히려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다.


5·18 망언 교수 손해배상 소송 제기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내 5·18민중항쟁 추모탑. 프리랜서 장정필

15일 5·18 기념재단에 따르면 재단과 5월 단체는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이 북한군이 개입한 범죄”라는 주장을 한 박훈탁 전 위덕대 교수를 상대로 명예훼손 혐의 민사소송 신청서를 광주지법에 제출했다.

박 전 교수는 지난 3월 비대면 수업을 하던 중 “5월 18일 20사단이 광주 진입할 때 폭도들이 쫓아냈다”, “죽은 사람의 약 70%가 등에 카빈총을 맞아서 죽었다”, “폭도들이 교도소를 습격했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했다.

5·18 기념재단은 “박 전 교수의 주장은 5월 단체와 항쟁 참가자 등 전체를 비하하고 편견을 조장해 5·18 민주화운동의 사회적 가치와 평가를 저해하는 내용으로 5월 단체에 무형의 손해를 끼쳐 배상을 청구한다”고 밝혔다.


형사고발 아닌 민사소송 왜?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오른쪽 두 번째)와 원희룡(왼쪽부터), 유승민, 윤석열 대선 예비후보가 지난 11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월 5·18 민주화운동 특별법에 ‘5·18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조항이 신설됐었다. 5·18에 대한 왜곡과 폄훼를 끊기 위해 만들어진 직접적인 처벌 조항이다.

박 전 교수는 조항 신설 직후 망언을 했기 때문에 5·18 왜곡 시도에 대한 처벌이 이뤄지리라는 기대감 쏠렸다. 하지만 5·18 기념재단은 7개월의 고민 끝에 형사고발 대신 민사소송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5·18 특별법에 담긴 예외조항 때문이다. 처벌 조항에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학문 연구 등을 위한 목적이 있을 경우 처벌하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다. 박 전 교수가 비대면 수업에서 왜곡과 폄훼를 했기 때문에 학문 연구는 처벌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할 근거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 이유다.


녹취록에 담긴 5·18 망언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전경. 프리랜서 장정필

5·18 기념재단 관계자는 “첫 처벌 사례로 주목받을 재판이 될 텐데 예외조항을 들고나오면 면죄부를 줄 수 있는 맹점이 있다”며 “만약 무죄라도 받는다면 향후에 악용될 소지도 있다”고 설명했다.

5·18 기념재단은 박 전 교수 발언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1980년 5월 18일 20사단이 광주에 진입하려다 300~600명에 달하는 폭도에게 쫓겨났다’고 했지만, 20사단은 5월 20일 광주로 처음 진입하려다가 시민들의 대규모 시위에 길이 막혀 진입하지 못했다는 게 기념재단 측 설명이다.

기념재단은 또 20사단이 진입했다고 주장한 5월 18일은 공수부대가 투입돼 광주시민을 무참히 구타하고 연행하는 등 만행이 이뤄지고 있었다고 했다. ‘폭도가 광주교도소를 습격했다’는 주장은 신군부가 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날조하기 위해 꾸며낸 왜곡이라는 설명이다. 해당 내용들은 모두 2007년 국방부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거짓으로 드러난 바 있다.

5·18 기념재단 관계자는 “사망자의 70%가 카빈총에 맞아 죽었다는 것도 거짓”이라며 “당시 광주지검에서 사망자에 대한 검시가 이뤄졌는데 해당 문서만 보면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했다.


“면죄부 우려, 특별법 손봐야 하나”

5·18 기념재단은 박 전 교수처럼 5·18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하고도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사례들을 수집 중이다. 내년에는 법률 전문가들에게 현행 특별법 왜곡 처벌 조항에 대한 개선방향을 검토하는 용역도 의뢰할 계획이다.

5·18 기념재단 관계자는 “예외조항이 생긴 이유인 표현의 자유를 어떤 범위까지 왜곡으로 봐야 하는지 연구가 필요하다”며 “연구 결과를 가지고 법률 개정 추진도 검토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광역시=진창일 기자 jin.changil@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