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다 아는 이야기

박상은 2021. 10. 16.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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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은 온라인뉴스부 기자


지난 5월 ‘에코노트’라는 온라인 뉴스 코너를 시작했다. 환경과 관련된 생활 속 궁금증을 쉽게 풀어주는 코너다. 주로 올바른 재활용 방법이나 친환경 소비에 대해 다룬다. ‘화장품 제대로 버리는 법’ ‘의류 분리배출 팁’ ‘생분해 플라스틱 Q&A’ 같은 기사를 벌써 20회 넘게 연재했다.

기사를 쓰는 입장이지만 유달리 친환경적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처럼 ‘환경이 중요한 건 알겠는데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정보를 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몰랐던 부분을 새롭게 알게 됐다거나 직접 실천해 보겠다는 댓글을 보면 동지를 만난 듯 반갑다. 관심을 행동으로 옮기는 작은 계기가 됐다면 그만한 보람이 없을 것이다.

물론 마음에 걸리는 댓글도 있다. ‘기업이 바뀌어야지 소비자가 고생해야 하나’ ‘재활용 열심히 해도 소용없더라’는 식의 반응이다. ‘이런 것까지 신경 쓰고 살기에는 삶이 너무 힘들다’는 문장을 발견했을 땐 서글픈 기분도 들었다. 맞다. 이런 일까지 신경 쓰기에 우리가 감내하는 오늘이 너무 팍팍하다. 하지만 그러한 오늘이 어제 누렸던 편리함의 대가라는 걸 더는 부정할 수 없다.

우리 소비의 대부분은 플라스틱과 연결돼 있다. 나일론이나 폴리에스터 같은 의류 섬유도, 택배상자에 붙은 테이프도, 물건을 포장한 용기와 비닐도 모두 플라스틱이다. 티백이나 종이컵, 우유팩에도 플라스틱이 코팅돼 있다. 이제는 안 쓰면 허전해진 마스크, 당연히 플라스틱이다.

왜 하필 플라스틱이 세상을 뒤덮어버렸을까. 가볍고 저렴하기 때문이다. 싸게 만들고 쉽게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쓰레기센터의 이동학 대표는 저서 ‘쓰레기책’에서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가 자본주의와 깊은 연관이 있다고 지적한다. “플라스틱이 판매상품 그 자체가 될 수도 있지만, 판매하고자 하는 상품의 포장이 되기도 하고 상품의 일부가 되기도 합니다. 더 팔아야만 하는 자본주의의 속성상 플라스틱 생산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고 이는 최종적으로 쓰레기화됩니다.”

그런데 수백년 동안 썩지 않는다는 점 외에도 플라스틱이 최악의 물질인 이유가 있다. 유리나 철, 알루미늄은 무한정 녹여서 같은 품질의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지만 플라스틱은 다르다. 재활용할수록 품질이 크게 떨어진다. 전 면역학 연구원이자 환경·과학 전문 작가인 스티븐 부라니는 “재활용된 플라스틱은 의류용 섬유나 가구용 슬레이트가 되고 그런 다음에는 도로 충전재나 플라스틱 절연재가 될 텐데, 여기까지 오면 더 이상은 재활용되지 않는다”면서 “(플라스틱 재활용의) 각 단계는 본질적으로 매립지 아니면 바다 쪽으로만 회전하는 톱니바퀴”라고 표현했다.

생분해 플라스틱이 많아지면 문제가 해결될까. 획기적인 대안은 맞지만 아직은 한계가 뚜렷하다. 생분해는 미생물이 플라스틱을 쪼개고 먹어치우는 것인데, 이러한 미생물 활동이 일어나려면 토양과 특정한 온도(58도)가 필요하다. 생분해 플라스틱을 위한 전문 퇴비화 시설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생분해 플라스틱을 수거·분류하는 시스템도 뒷받침돼야 한다. 언젠가 자연환경에서 플라스틱을 먹어치우는 미생물이 발견된다 해도 대량 생산해 상용화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플라스틱을 생산하는 단계부터 회수까지 생각하는 순환경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새로운 내용은 없다. 플라스틱이 지구를 파괴한다는 건 어린아이도 알 만큼 공론화됐다. 그럼에도 이 문제를 지루하게 나열한 까닭은 눈앞에 다가온 ‘위드 코로나’가 ‘위드 플라스틱’의 다른 말이 될까 두려워서다. 언택트 시대에 적응한다는 건 거의 모든 종류의 음식과 물건이 집 앞까지 배달되는 편의에 익숙해지는 일이었다. 위생을 명목으로 주어지는 일회용품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 바이러스를 이기기 위해 그동안 벌여온 플라스틱과의 전쟁은 잠시 미뤄지거나 잊혀졌다. 식당에서 다회용기에 밥을 먹고 카페에서는 일회용컵을 사용하는 모순을 우리는 1년9개월이나 참아왔다.

그래서 다 알고 있는 이야기를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 약간의 번거로움을 감수하자고, 조금만 불편해지자고, 한번만 더 환경을 생각해보자고 말한다. 지금 이 순간의 싸움이 앞으로 상영될 재난영화의 속편이 되지 않길 바란다. 잃어버린 일상을 그리워하는 경험은, 정말 한번으로 족하다.

박상은 온라인뉴스부 기자 pse021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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