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따라 민주당 갈 뻔? 홍준표의 결정적 순간 셋 [조은산이 말한다]

김태호 입력 2021. 10. 1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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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의힘 경선주자 4人의 3가지 결정적 순간들

「 지난 8일 국민의힘 대선 경선 주자 4명이 결정됐습니다. 중앙일보는 논객 '조은산'의 목소리를 영상에 담아, 국민의힘 경선 주자들의 오늘을 있게 한 3가지 결정적 순간을 살펴봅니다. 윤석열-홍준표-유승민-원희룡 후보 순으로 싣습니다.

지난 12일 중앙일보 상암사옥을 찾은 논객 '조은산'은 국민의힘 경선주자 홍준표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1 홍준표, 노무현 대신 김영삼의 손을 잡다.
1996년 1월 25일 늦은 밤, 노무현과 유인태 등 민주당 전·현직 의원들이 홍준표의 집을 찾습니다. ‘모래시계’ 검사로 이름 날린 홍준표를 당에 데려오기 위해서였죠. 그런데 민주당이 한발 늦었습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홍준표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보수 여당인 민자당 입당 약속을 받아냈던 겁니다. 홍준표가 민자당을 택한 것은 지금의 보수 거물 홍준표를 만든 첫 번째 결정적인 순간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는 최근 낸
「THE 인물과 사상 2」

에서 당시 민자당을 택한 홍준표에 대해 “운명의 장난을 떠올리곤 한다”고 했습니다. “홍준표가 민주당에 갔다면, 진보의 대표 전사가 됐을 텐데…”라면서요. 그의 드라마틱한 인생사를 보면 진보 진영이 탐낼 만했죠.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지만 열심히 공부해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검사가 된 다음에는 권력의 압박을 이겨냈으니까요.

십수 년 전 홍준표가 냈던 ‘반값아파트법’이나 ‘취약계층 등록금 면제법’ 같은 법안에는 “가진 것 없이, 평생 일만 해온 내 어머니 같은 분들이 잘사는 세상을 만들겠다”던 그의 결심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힘없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정치’를 펼쳐보겠다는 홍준표는 또 다른 ‘노무현의 길’을 걷고자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홍준표가 원치 않던 보수 정치인의 길을 마지못해 걸었던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좌와 우는 가치관이 아닌 타고난 기질”이라는 김어준 말처럼 홍준표는 어쩌면 보수의 피를 갖고 태어났을지도 모릅니다.
2013년 경남도지사 시절, 그는 “공공의료 확충과 공공병원 확충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저소득층에 실질적인 도움 주는 의료정책을 시행하겠다”며 진주의료원을 폐쇄했습니다. 2014년엔 “학교에 공부하러 가지 공짜 밥 먹으러 가느냐”며 무상급식 예산지원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진보 진영에선 “애들 밥 가지고 장난하지 말라”(강수돌 전 고려대 교수)는 비판도 많았지만, 홍준표는 “정책 선택 기준은 좌파냐 우파냐가 아니다. 국익에 맞으면 좌파정책도, 우파정책도 할 수 있다”라며 밀어붙였습니다.

홍준표는 경남도지사 재직 시절인 2013년 3월 진주의료원 강제 폐쇄결정을 내렸다. 다음 해 11월엔 무상급식 예산지원 중단을 선언했다.

정치인이 양쪽에서 욕먹는 일을 밀고 나간 건 사실 득 될 게 없습니다. 홍준표는 정말 진영과 계파의 눈치를 안 보는 정치를 자랑스럽게 여겼던 것 같습니다. “수십 년 정치하며 계파를 만들거나, 속해본 적이 없다. 헌법상 독립기관인 국회의원이 계파 보스의 부하 노릇을 하는 건 자존심 상한다”라고 한 걸 보면요.

#2. ‘아싸’ 기질이 키운 모래시계 검사
홍준표의 이런 ‘아웃사이더’ 기질은 검사 시절부터 비롯됐습니다. 그는 “독고다이 정신으로 강인함 없이 살았다면, 검사 때 이미 한국사회에서 매장됐을 것”이라고 했으니까요. 그는 학벌 따지고, 출신 따졌던 당시 검찰에서 “주류로 살기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이런 ‘아웃사이더’라서 ‘모래시계 검사’의 실제 모델로 이름을 날린 검사가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주류였으면 눈치 보여서 어려운 수사는 못 했을 겁니다.

1982년 사법시험 합격 후 청주지검에서 검사를 시작한 홍준표가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1988년부터입니다. 당시 그는 전두환 형 전기환을 비롯해 권력자들이 줄줄이 엮인 ‘노량진수산시장 운영권 강탈’ 사건을 맡아 수사합니다. 홍준표는 윗선 제동에도 브레이크가 안 걸리는 ‘꼴통’ 검사였습니다. 또 1993년 정관계 유력 인사들이 연루된 ‘슬롯머신’ 사건을 수사하며 6공 ‘황태자’로 불린 박철언을 비롯해 엄삼탁 전 안기부 기조실장, 이건개 전 대전고검장 등을 잡아넣습니다. 이후 홍준표는 안기부에 파견 나갔다가 검찰로 돌아오려는데 여의치 않자, 1995년 검찰을 떠납니다.

1993년 검사 홍준표는 ‘슬롯머신’ 사건을 수사해 엄삼탁(왼쪽) 전 안기부 기조실장, 이건개 전 대전고검장, 6공 ‘황태자’로 불린 박철언(오른쪽) 등 정관계 유력 인사들을 잡아들였다.


민주당 대선후보 이재명 경기지사와 고 노무현 대통령이 모두 인권변호사 출신인 건, 약자의 편에 섰던 그들의 모습에 국민이 기대를 걸었기 때문일 겁니다. 야권에서도 검사 출신 후보들이 선전하고 있습니다. 공정과 정의를 열망하는 대중들의 열망이 반영된 게 아닐까 싶습니다.
#3 보수의 거물이 된 ‘아웃사이더’, 대선에 두번 나설 수 있던 이유
홍준표는 1996년 송파 갑에서 첫 국회의원 배지를 답니다. 이후 국회의원 5선, 도지사 2번, 원내대표와 당 대표 등을 거치며 보수 거물 정치인으로 성장합니다.

2011년 한나라당 대표 시절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통과를 이끌었습니다. 당시 야당에선 ‘날치기’, ’을사늑약’이라 비판했지만 지금은 이를 비판하는 이가 드물죠.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시절 TV토론에서 한미 FTA를 “민주당의 성과”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경남 도지사 시절엔 1조 3500억원 채무를 갚아 재정을 흑자로 돌렸습니다. 경남을 청렴도 전국 1위 지자체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앞서 말한 ‘무상급식 예산 지원 중단’이나 ‘진주의료원 폐쇄’ 사건도 홍준표의 정치 스타일이 그대로 드러난 경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2017년 대선에 보수의 ‘소방수’로 나가 야권의 명맥을 이어갔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죠.

물론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는 식의 홍준표 정치 스타일이 긍정적인 평가만 받는 건 아닙니다. 때론 리더십 부족이나 소신을 내팽개쳤다는 지적도 받았습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당 대표 홍준표가 이끌던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이 참패를 맛봤습니다. 지난 21대 총선에선 공천을 못 받자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을 탈당했습니다. 이어 대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자 “쉬운 길을 간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는 식의 홍준표만의 정치스타일은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다.


최근 경선과정에선 조국사태와 관련해 “가족 전체를 수사한 건 비겁했다”고 말해 야권 지지자들에게 ‘조국수홍’이란 비판을 받았습니다. 비판이 거세자 “국민이 아니라고 하면 제 생각을 바꾸겠다”며 한발 물러서기도 했습니다.

홍준표의 이런 자극적인 말들은 늘 쉽게 화젯거리가 됐습니다. ‘충동적’, ‘즉흥적’이란 비판도 많은데 본인 생각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그는 “난 그저 말을 좀 세게 할 뿐인데, 전부 막말로 취급해서 말하기도 힘들다”, “노무현이나 트럼프가 품격이 있어서 대통령이 됐느냐”라고 항변하기도 했죠. 또 “충동적이고 즉흥적인 사람이 검사, 국회의원, 도지사, 대선후보가 될 수 있었냐”며 반박하기도 했죠. 최근 20·30세대는 이런 홍준표의 직설적인 스타일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홍준표에게 ‘무야홍(무조건 야권 후보는 홍준표)’, ‘홍카콜라(홍준표+코카콜라)’란 별명도 붙여줬습니다.

검사에서 거물 정치인, 대선 후보까지 홍준표는 일관되고 뚜렷한 행보를 보였습니다. 그의 정치적 역량도 이런 모습에서 비롯됐습니다. 물론 언어를 정제하고, 중도층 흡수를 위한 정치를 펼칠 필요가 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당내 경선 주자들을 공격하는 대신 대여 투쟁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보수 지지층의 지적도 있습니다. 이런 요구들 앞에 그는 과연 어떻게 화답할지, 앞으로 펼쳐질 대선 경선과정에서 한번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김태호 기자 kim.taeho@joongang.co.kr, 영상=정수경·조은재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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