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가 안전한 사회③] 환자 안전 행동 수칙이 되는 임상실무가이드라인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최지은 선임연구위원(대한환자안전학회 연구이사)​ 2021. 10. 15.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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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포퍼에 따르면 안전을 위해서라면 ‘최선의 선택보다 최악의 회피가 중요하다’고 한다. 예를 들어 해저터널에 선로를 설계할 때, 터널 속 탈선사고가 날 확률이 편도기준 1백만분의 1이라는 아주 작은 것이라고 해도 하루 평균 몇 십번의 기차가 운행하고 이 가능성이 10년 동안 쌓이게 되면 터널의 탈선사고가 날 확률은 상승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잘못될 가능성이 있는 일은 장기적으로 관찰하면 언젠가는 꼭 발생하고 만다는 것이 머피의 법칙이라고 한다. 그래서 칼 포퍼의 철학에 따라 미 항공우주국 나사(NASA)에서는 사업을 계획할 때 지금 당장 비용이 소요되더라도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면 몇십배의 비용이 소요될 것이므로 최악의 회피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설계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대형사고 건수를 급격히 줄일 수 있었다고 한다.

지난 7월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건통계 2021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대수명은 83.3년으로 OECD 국가 평균보다 2.3년 길어 중 상위권에 속하지만, 임상의사 및 간호 인력은 OECD 평균보다 작다. 동시에 병상수와 외래 진료횟수는 최상위를 차지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은 환자안전사건이 발생하기 쉬운 조건을 형성하게 되는데, 실제로 입원 환자들을 대상으로 언제 안전하지 못하다고 체감하는지에 대해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간호사가 너무 바빠 보여서 제대로 간호를 받지 못할까봐 걱정될 때, 직원이 바빠서 식판 처리가 제대로 안되거나 병원 내 이송 지원 등이 제때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 등이 환자가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게 되는 이유가 된다고 응답했다. 어쩌면 사소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토록 세밀한 부분이 환자의 안전체감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니 보건의료서비스의 엄중함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적정한 보건의료 인력을 당장 확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실질적인 문제해결의 대안은 무엇이 있을까? 

우리나라는 의료기관인증평가제 및 환자안전법제화 등을 통해 의료기관 별로 환자안전 전담간호사를 배치하고 의료종사자의 안전문화인식을 강조하는 등 적극적 환자안전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병원과 보건의료종사자의 환자안전문화가 점차 향상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활동이 환자들에게도 직접 체감되고 있을까? 환자가 안전하다고 체감하려면 의료종사자의 의지나 인식도 중요하지만 이것만 가지고 전달되지 않는다. 인간은 어떤 상황에 대해서 통제력과 예측력을 가질 때 안전하다고 느낀다고 한다. 즉 환자는 진료를 받으면서 통제력과 예측력을 가질 때 안전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보건의료분야는 흔히 정보의 비대칭성이 문제로 언급되는 분야이다. 의료종사자와 환자 간, 의료종사자간에도 정보의 비대칭성이 존재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침의 개발과 보급이 큰 도움이 된다. 특히 환자와 직접 대면하게 되는 환자안전활동에 대한 적절한 지침을 제공하여 환자에게 양질의 케어가 제공될 수 있게 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임상진료지침은 보편화되어있지만 환자에게 직접 전달되는 간호 및 돌봄 활동에 대한 지침은 아직 활발히 개발되어 있지 못하다. 예를 들어 낙상이나 욕창예방을 위한 의사결정에 환자가 어떻게 참여하고 치료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지 또는 만성질환 상태에서 자기관리(self management)를 어떻게 잘 할 수 있는지, 임종기 동안에는 어떤 간호를 받을 수 있는지 등이 환자가 처한 상황에 대한 통제력과 예측력을 가질 수 있는 정보인 것이다.

따라서 캐나다 온타리오 간호사협회(Registered Nurses’ Association of Ontario, RNAO)는 이러한 중요성을 인지하고 1999년부터 온타리오 보건부(Ontario Ministry of Health and Long Term Care, MOHLTC)와 파트너십을 맺고 MOHLTC의 재정지원 하에 임상실무 가이드라인(Best Practice Guidelines, BPG)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이는 철저한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약 50여개의 가이드라인을 개발하고 해당 가이드라인을 매 5년마다 업데이트하는 활동으로, 최신의 양질의 가이드라인을 제공함으로써 의료기관이 환자 돌봄과 진료의 질 향상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러한 임상실무 가이드라인 일반적으로 치료와 직접적 관련성이 없다고 여겨져 명문화되지 못했던 부분이지만 환자안전을 위해 직접적인 환자참여가 더욱 더 중요해지면서 그 중요성이 증가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환자안전보고학습시스템에 따르면 낙상, 투약, 검사, 진료재료 오염/불량, 환자확인 오류, 자가 발관, 탈원, 폭력, 화상, 욕창 원인미상의 골절 등이 병원 내 안전사건으로 보고되고 있는데, 이러한 사건에 대한 체계적이고 다학제적인 지침의 개발을 통해서 환자들의 통제력과 예측력을 키워주는 것이 중요한 방법 중에 하나일 것이다.

올해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은 국제적 가이드라인 개발 네트워크인 GRADE center로 지정받았다. 이와 더불어서 우리나라 보건의료분야의 근거기반의학 수준이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이러한 지침을 개발하는 것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된다. 어쩌면 지금 당장 안전사건을 예방하기 위해 비용이 투입되는 것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환자안전을 증진시키고 미래의 예견된 머피의 법칙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지금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근거기반 임상실무 가이드라인의 개발 및 보급은 환자가 안전한 우리나라를 더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대한환자안전학회는 2012년에 시작한 환자안전연구회의 활동을 바탕으로 2015년에 설립되어 우리나라 환자안전의 향상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환자안전에 대한 더 많은 정보와 학회 사업, 활동이 궁금하시다면 <대한환자안전학회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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