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 세상] 불안에 머물러라

2021. 10. 15.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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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는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이다.

엄마는 티를 안내려 노력했지만 H도 느끼고 있었다.

H와 같은 강박증을 가진 사람에게 '언니가 만진 물건을 만진다고 절대 병이 생기진 않아'하는 설명이나 '불안해하지 말고, 그런 생각은 잊어버려'라고 충고해 주는 것은 의미가 없고 그런 노력도 무용하다.

인간은 H처럼 불안한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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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부림을 치면 칠수록 점점 더 늪으로 빠져든다


H는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이다. 손을 원래 자주 씻는 편이다. 이제는 그 정도가 심해져 손이 트고 피가 날 정도로 씻는다. 특히 언니가 만진 물건을 만지지 못하고, 혹시 언니 손이 닿았다는 느낌이 들면 화장실에 들어가서 손을 씻어 댄다.

하지만 이제는 학교서도 싫어하는 친구의 손이 닿았다는 생각이 들기만 해도 손을 씻느라 수업시간에도 늦을 정도이다. 이러니 학교, 학원 지각도 부지기수다. 어려서부터 키우기에 까다로웠던 H에 비해 성격이 무난한 언니와 엄마는 친밀했다. 엄마는 요구가 많은 H에게 신경이 쓰이지만 부담스러움도 있어 사랑스러움은 덜 느끼게 되었다. 엄마는 티를 안내려 노력했지만 H도 느끼고 있었다. 엄마와 언니가 까르르 웃으며 재미있게 대화하는 소리를 들으며 소외감을 느낀 적이 많았지만 이런 마음을 한 번도 표현해 본적은 없다.

“언니는 어려서부터 더러웠어요. 콧구멍을 후비던 손으로 물건을 만지고..... 더러운 게 손을 타고 내게 들어오면 나쁜 병에 걸릴 것 같아요”

논리적으로는 물건을 만진다고 나쁜 병에 걸리는 것이 아님을 H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든 이후로는 떨쳐내기가 힘들었다. 가족들이 아무리 설명을 해도 알고 있다고는 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우리의 경험은 오감으로 하는 외적 경험과 생각, 감정, 기억, 신체 감각 등의 내적 경험으로 나뉜다. 오감 경험과 내적 경험에 대해서 다른 방법으로 대해야 하지만, 이러지 못할 때가 많다. 오감 경험은 우리가 차단하고 싶으며 통제가 가능하다. 하지만 생각, 감정, 기억, 신체 감각 등은 통제가 불가능하다. 아니 통제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심해진다.

통제가 불가능한 것을 통제하려고 할 때 ‘마음’은 말썽을 일으킨다. 상처받은 아픈 기억을 가지고 힘들어 하는 사람이‘안 좋은 기억은 이제 잊어버리자’라고 노력하지만 그게 가능 하던가? ‘아 이제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꿔보자’라고 결심한다고 되지 않는다. 한번 경험해 보자. 앞으로 5분 동안 분홍 유니콘을 생각하지 마세요‘라고 말한 후 5분 후에 ’분홍 유니콘을 생각 안하셨죠?‘물어 봤을 때 ’네 생각이 안 났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나? 오히려 그전에는 생각지도 않던 분홍 유니콘에 대해’분홍 유니콘이 뭘까?‘라든가’유니콘은 상상의 동물이야‘, ’분홍색 유니콘 독특한데?‘ 등등 더 많은 생각이 오고 갔을 거다.

H와 같은 강박증을 가진 사람에게 ‘언니가 만진 물건을 만진다고 절대 병이 생기진 않아’하는 설명이나 ‘불안해하지 말고, 그런 생각은 잊어버려’라고 충고해 주는 것은 의미가 없고 그런 노력도 무용하다. ‘오히려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이나 생각을 통제하려고 지나치게 노력하는 것이 강박증의 특징이므로 생각을 안 하려고 통제하는 것은 강박증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H는 병에 걸릴 것 같은 불안감을 제거하고 통제하려고 손을 피가 나도록 씻었던 거다. 하지만 이게 효용성이 없었던 거고, 또다시 통제하려는 생각 때문에 손 씻기를 반복 한 거다. 이런 통제 노력이 무용하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물론 강한 불안을 느낄 때 도망치고 벗어나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손 씻기를 반복한다.

단기적으로는 순간의 불안함에서는 벗어 날수 있지만 장기적으론 더 큰 불안의 늪에 빠져드는 것이란 걸 알아차려야 한다. 모래 늪에 빠졌다고 상상해보자.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것이 인지사정이지만, 실제로는 몸부림을 치면 칠수록 점점 더 모래 늪으로 빠져들 것이다. 오히려 가만히 몸부림을 멈추고 있을 때 비로소 탈출이 가능하다.

강박증은 불안을 제거하고 통제하려는 시도에서 발생한다. 인간은 H처럼 불안한 존재이다.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느낌으로, ‘언젠가 겪을 죽음이 다가 올까봐’등등 각자 나름의 불안을 가지고 있다. 이것에서 너무 벗어나려고 발버둥 칠 때 문제는 깊어진다. 오히려 자신의 불안을 알아차리고 거기서 머물러보라. 단기적으로는 힘이 들겠지만 차츰 모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발버둥치고 도망가려 할수록 빠져든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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