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사는 곳에서 떠나고 싶은가요
고향에 다녀왔다. 출판인으로서 고향에 빚진 게 많다. 학창 시절 학교 도서관에서 빌렸던 책들이 독서 근육을 만들어줬고, 그 힘으로 살아간다는 자각을 잊지 않는다. 고향의 독서대전 행사에 초대돼 내려간 김에 시골 언니네 집에도 들렀다. 연구자의 삶에서 은퇴하고 귀촌한 언니네 정원은 나무와 꽃으로 쓴 논문 같았다. 어떤 질서와 설득력 있는 나무 배열이 아름다운 귀결을 보여줬다. 몸으로 가꾼 정원이었다. 은퇴한 뒤 읽은 나무와 꽃에 대한 책들이 삶의 텍스트가 돼 줬다고 한다. 언니에게 지금 행복한지 묻지 않았다. 정원이 답을 해줬기 때문이다. 고향의 잔잔하고 여유로운 기운은 서울에 돌아와서도 생활 정서에 영향을 미쳤다.
이렇게까지 피곤하게 살 일인가 싶어 귀촌했다는 한 여성의 이야기에 마음이 닿았다. 7년 차 귀촌인이 쓴 ‘귀촌하는 법’의 이야기다. 서울에서 회사 생활하던 저자는 시골에서 농사 짓기 등 삶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떠난 것은 아니었다.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면서 정신없이 떠밀리듯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다고 한다. 귀촌 동기가 시골 삶의 낙관적 전망 때문이라기보다는 서울의 피로를 잠재우려는 소극적인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건 도피인가.
저자는 생활 중심에 자신을 세우고 싶어 했다. 조직 내 다른 사람의 지시나 이목을 의식하는 생활이 아니라 자신을 존중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의지였다. 그러니까 도피나 망했다는 심정으로 떠나는 삶이 아니라 자신을 찾아가는 일종의 생활 리셋이었다. 저자가 시골에 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월급 받는 일자리 구하기였다. 더욱 독립적으로 살기 위해 시골 생활에서 유용한 자격증을 두 개나 따기도 했다. 아름다운 전원 생활을 꿈꾼 것은 아니었지만 해가 뜨면 자연스럽게 깨고 해가 지면 잠드는 삶에는 자연이 함께했다. 귀촌인의 행복론은 특별하지 않다. 누구를 만나야 한다는 강박도, 빠른 성과를 내야만 하는 의무도 없는 삶은 행복하다고밖에 말 못할 것이다. 이 저자의 이야기가 특별한 것은 귀촌의 환상을 심어주지 않아서다.
“농촌 지역에서는 연령, 성별, 결혼 여부, 학력, 신체 등 ‘비정상성’에 대한 차별이 도시보다 심한데 귀농 귀촌인들조차도 전통문화 존중을 이유로 슬그머니 그 차별에 가세한다”는 저자의 인식은 체험에서 나왔다. 귀촌인 지원 정책에서도 출산 장려 방향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비혼 여성을 티 나게 배제하지는 않지만 환영하지도 않는다는 비판도 또렷하다. 귀촌 생활에서도 혼자서 잘 지내는 것과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것 사이의 균형감각을 찾는 게 필요하다는 것은 자명하다. 농촌 지역에 적응한다는 것은 동네 지리를 파악하고 문화와 정서를 이해하고 이웃을 늘리는 과정이면서 사람들 모이는 곳 어디에서나 발생하는 불편과 어색함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라는 것도.
귀촌은 생활 배경을 완전히 바꾸는 굉장한 사건이다. 생활권이 아주 다른 곳으로의 이주다. 동네 지리를 알아가는 것도, 동네 사람들과 친해지는 것도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든다는 귀촌 생활. 귀촌 뒤 현실이 역시 불만스럽다면 청산하고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것일까. 저자는 스스로 묻고 답한다. 아니다.
귀촌 이후에 잘 살기 위해서는 불안하고 외로운 삶의 진실을 이해해야 한다. 도시에 살든 시골에 살든 불안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그곳은 더 이상 행복한 주거지가 될 수 없다. 도시에서 누렸던 재미와 편리함 대신 시골의 새로운 가치를 갖게 된 것, 도시에서 절대 필 수 없었던 마음의 꽃을 잘 들여다보는 일이 자신의 삶에 제일 우선이 돼야 한다고 귀촌인은 강조한다.
사는 곳이 어디든 우리에게는 자신이 가장 원하는 삶을 선택하고 꾸려갈 용기가 필요하다. 귀촌이나 할까, 라는 가벼운 마음으로는 주거지가 바뀌어도 행복할 수 없다. 고향이 그리운 것은 그곳에서 살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대도시에서 고향의 힘을 느낀다. 지금 이곳에서 그리움을 동력으로 삼아 행복으로 나아간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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