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미래에는 어떤 인재가 필요할까
지난주에 발표된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은 신경 자극을 통해 온도와 압력을 감지하는 방법을 발견한 데이비드 줄리어스 교수와 아르뎀 파타푸티언 교수에게 돌아갔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올해도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했지만, 고려대 이호왕 명예교수가 마지막까지 유력한 후보로 거명되었다. 그는 유행성 출혈열의 원인인 한타바이러스를 세계 최초로 발견한 분이다. 한타바이러스의 중간 매개체가 한탄강 주변에 서식하는 등줄쥐인 것을 확인하고 자신이 발견한 바이러스의 이름을 한타바이러스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올해 93세인 이 교수는 한국전쟁이 끝나던 해에 의대를 졸업하고 임상의사의 길 대신 70여 년을 바이러스 연구와 함께한 기초의학자다.
이스라엘 테크니언 공대의 아론 치카노버 박사는 단백질의 분해 과정을 규명해 2004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훌륭한 외과 의사였지만 기초의학 연구가 좋아서 메스를 버리고 단백질 분해 연구에 빠져서 결국 노벨상을 받은 분이다. 한국에 올 때마다 고등학교를 방문해서 기초의학 연구자로 성공한 자신의 경험을 얘기하고 우리 학생들에게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라고 조언한다.
■
「 노벨상 수상자, 한 우물 판 사람들
이호왕·이종욱 박사도 평생 한길
인성 갖추고, 하고 싶은 일 해야
대학도 선발·교육과정 바꿀 필요
」
노벨 생리의학상은 평생 한 우물을 파면서 의학 발전에 크게 기여한 사람에게 수여한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몰입한 의학 연구자의 평생 성과인 것이다. 우리나라도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기 위해서는 논문 편수를 중시하는 정량적인 업적 평가에 의존하기보다 긴 호흡으로 평생 역작을 만들기 위한 여건을 확립해야한다.
지난주부터 국내 주요 대학의 입시가 시작되었다. 어떤 전공을 선택할지, 어떤 대학에 진학할지 수험생과 학부모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올해도 의대, 치대, 약대 등 의료 분야에 대한 입학 경쟁은 아주 치열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미래에는 어떤 인재가 필요할까? 학문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인간과 사물, 인간과 컴퓨터와의 인터페이스가 심화되는 미래에도 지금과 같은 전공의 인기가 과연 지속될까?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인공지능(AI)이다. 인공지능은 컴퓨터가 인간의 지능적인 행동을 모방하는 것이다. IBM 왓슨은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영상 진단과 맞춤 치료의 정확성을 높여준다. 국내에서 최근 창업한 엔도아이는 대장경 검사와 판독에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용종과 암을 보다 정확하게 구분하는 상품을 개발 중이다. 이렇듯 인공지능은 이미 의료 현장에서 사용되고 있고 가까운 미래에 훨씬 많은 분야에서 적용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선마이크로 시스템의 설립자인 비노드 코슬라 박사는 미래에는 현재 의사의 80%는 필요 없을 것이라는 도발적인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미래에는 과연 의사가 필요 없어질 것인가? 의사가 필요 없어지기보다 의사의 역할이 달라질 것이고 그에 따라서 의대생의 선발이나 의학 교육 또한 달라져야 한다.
서울대 의대는 수년 전 신입생 선발에 인성평가를 도입했고 의학교육 과정을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면접으로 인성을 평가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의사가 되려는 학생은 최소한의 공감 능력과 앞으로 만나게 될 수많은 환자에 대한 배려심을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도입되었다. 수능 만점을 받은 학생이 면접을 통과하지 못해서 탈락한 경우도 있었다. 2016년에 도입한 새 교육과정은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직을 수행하다가 순직한 이종욱 박사의 이름을 따서 ‘이종욱 의학교육과정’으로 명명하였다. 이 박사는 의대를 졸업하고 피지에서 열대의학 연구와 현지인들의 보건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한 덕분에 세계보건기구의 수장까지 되신 분이다. ‘행동하는 자’(man of action)로 불렸던 그의 신념과 실천 의지를 교육 철학에 담은 것이 ‘이종욱 교육과정’이다.
이종욱 교육과정의 핵심은 사회와 소통하는 의사, 그리고 연구하는 의사의 양성이다. 인공지능과 신의료 기술의 도입으로 미래에는 환자와 공감하고 사회와 소통하는 마음이 따뜻한 의사가 필요하다. 이런 이유로 환자와 의사 관계, 사회 속의 의사 역할 등에 대한 과목이 추가되었다. 환자의 아픔을 들어주고 이해하는 의사를 육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한 상위 1%에 속하는 훌륭한 학생들을 기초의학을 전공하거나 의료 산업을 이끌어갈 리더로 키우는 것이 사회에 더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의학연구 과정을 도입했다. 의예과 시절부터 의학 연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본과에 진급해서는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연구를 진행하도록 디자인되었다. 우리나라에 의사가 몇 명이 적정한지는 전문가들이 깊이 있게 논의해 봐야겠지만 연구하는 의사, 특히 다학제간 융합 연구를 하는 의사는 국가 장래를 위해서 더욱 많이 양성해야될 것으로 생각한다. 이호왕 교수나 치카노버 박사 같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신이 나서 하고, 이종욱 박사같이 남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남을 배려하는 인재가 바로 미래가 필요로 하는 인재일 것이다.
강대희 서울대 예방의학 교수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술자리서 짓밟히는 여성, 외면한 남성들…CCTV 다 찍혔다
- 의사인 척 대학병원 돌아다녔다...수십 명과 데이트까지 한 男
- "광어값 250% 올라…대출도 이젠 안돼" 횟집들 셔터 내린다
- "모자이크라도 하지"...김의겸, 국감서 19금 그대로 노출
- 인터넷 글보고 복권 샀더니…"긁다보니 10억 나오고 또 10억"
- LA 앞바다에 화물선 100척 둥둥…다급한 바이든, 삼성 불렀다
- 고졸 '미스 김' 사표 던졌다...'도가니 변호사'의 아픈 과거
- 이재명 9분, 송영길 11분 연설…"후보보다 대표가 나설까 우려"
- 재명공자 "나는 만독불침, 어떤 독공도 나를 쓰러뜨릴 수 없다"[이정재의 대권무림⑤]
- "두테르테는 히틀러, 페북이 키워" 노벨상 수상자 둘다 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