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출 난민' 아우성에 한발 물러난 대출 규제

입력 2021. 10. 15. 00:10 수정 2021. 10. 15. 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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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서울의 한 시중은행 대출관련 현수막. 뉴스1


금융위원장 “전세 대출 중단 없도록 유연 관리”


빚투 땐 방치, 묻지마 규제로 실수요자만 피해


정부가 본격적인 대출 조이기에 나선 지 두 주 만에 사실상 백기를 들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어제 실수요자 보호를 위해 전세대출이 중단되지 않도록 유연하게 관리하겠다며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인 5~6%대를 초과하더라도 용인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달 30일 재정·통화·금융 당국 수장들은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을 6%대로 관리하겠다”며 강한 대출 규제책을 내놓은 바 있다.

실수요를 고려하지 않은 갑작스러운 대출 규제로 시장에선 부작용이 속출했다. 이미 6%를 넘어섰거나 한도에 다다른 은행들은 주택담보대출과 전세금대출을 아예 중단하거나 선착순 대출로 전환했고, 그 바람에 분양받은 아파트의 입주를 포기하거나 전세 계약을 파기하는 이른바 ‘전세 난민’ ‘월세 난민’이 속출했다. 총량 규제로 시중은행뿐 아니라 제2, 3 금융권까지 동시에 조이다 보니 실수요자들은 잔금을 치르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인터넷 전문은행 토스뱅크는 출범한 지 9일 만인 14일 올해 가계대출 한도 5000억원을 모두 소진해 신규 대출을 중단했다. 한도를 늘려 달라는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금융 당국이 이렇게 은행 문턱을 높여버리니 어쩔 수 없이 고금리 사채를 끌어다 쓴다는 사례가 부동산 커뮤니티에 넘쳐난다. 오죽하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대출 규제를 풀어 달라’는 청원으로 도배될 지경이었겠나.

불안정한 국내외 금융시장 흐름에 금리 인상이 불가피한 데다 지속적으로 폭증해 온 가계 빚을 고려하면 정부의 가계대출 규제 자체는 비판받을 일이 아니다. 하지만 시기나 방법 면에서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문재인 정부의 잘못된 부동산 정책 탓에 지난 4년간 집값·전셋값이 폭등해 2030을 중심으로 ‘영끌 투자’ 바람이 거세게 불 땐 손을 놓고 있다가 금리 인상에 따른 대출 시한폭탄이 터질 것 같은 임계치에 다다르자 뒤늦게 대출 제한에 나섰기 때문이다. 금융 당국은 매년 가계부채 총량 관리를 해왔다지만 정작 시중은행들이 목표치를 넘어 초과 대출을 해도 제재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과도한 대출 영업을 방치해 왔다. 그런데 대출을 끼지 않으면 부동산 거래가 불가능할 정도로 집값을 폭등시켜 놓고선 갑작스레 대출까지 막으니 무주택자인 실수요 서민들에게만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넘기는 꼴이 됐다. 정부가 주거 사다리를 끊다 못해 악성 빚까지 떠안긴 셈이다.

문 대통령은 작금의 사태를 불러온 잘못된 부동산 정책은 외면한 채 이날 “서민 실수요자에 대한 전세대출과 잔금 대출이 일선 은행 지점에서 차질없이 공급되도록 금융 당국은 세심하게 관리하라”고 뒤늦게 수습에 나섰다. 오락가락하는 부동산 정책으로 국민만 고통받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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