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 호스피스 병동 의사가 들려주는 삶의 의미

김기진 2021. 10. 14.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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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레이첼 클라크 지음/ 박미경 옮김/ 메이븐/ 1만6800원
영국 공중보건 의사이자 완화 의료(신체·정신적 고통 완화를 위한 치료) 전문가 레이첼 클라크가 들려주는 호스피스 병동 이야기다. 레이첼 클라크는 영국 옥스퍼드대 졸업 이후 시사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저널리스트로 일했다. 1999년 런던 테러 현장에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뒤 의사가 되기로 마음먹고 20대 후반에 의대에 진학했다. 의사 면허를 딴 후 환자를 사람이 아닌, 고쳐야 할 장기나 부속품 정도로 대하는 현실에 직면했고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한다면 환자 중심의 의술을 펼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완화 의료를 전문으로 삼고 호스피스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흔히 임종을 앞둔 환자가 모인 호스피스 병동에서 근무하는 것이 힘들고 우울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레이첼 클라크는 정반대라고 답한다. 호스피스 병동에는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환자로 가득하다. 그들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간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저 없이 마음을 표현하고, 삶의 남은 순간을 음미한다. 용기와 연민, 사랑 등 인간의 선한 자질을 수시로 목격할 수 있다. 최악의 상황이지만 최선의 모습을 보이려는 사람이 대다수다. 저자가 오히려 임종을 앞둔 환자를 돌보며 제대로 사는 방법을 배우고 의사이자 인간으로서 성장했다고 말하는 이유다.

책에는 레이첼 클라크가 병동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자신의 아픈 심장보다 치매에 걸린 아내가 혼자 남겨질 것을 더 걱정하는 마이클, ‘내일 죽더라도 오늘은 브리지 게임을 즐기겠다’며 끝까지 일상을 이어간 도로시, 손자의 여섯 번째 생일까지 버티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이먼, 80년간 숨겨온 비밀을 마지막 순간에 털어놓고 떠난 아서, 연명 치료를 거부한 헨리 등 다양한 사람이 등장한다. 저자는 환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마지막을 받아들였는지, 이들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배웠는지 설명한다.

책에는 레이첼 클라크의 아버지 이야기도 포함됐다. 죽음은 누구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길이다. 환자는 물론 지켜보는 이들도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레이첼 클라크의 아버지는 ‘죽음의 문턱을 넘기 전까지는 여전히 살아 있다’며 여행을 떠나는 등 담담한 모습을 보인다. 저자는 죽음을 받아들이고 남은 나날을 더 깊이, 더 뜨겁게 즐기는 아버지를 지켜보며 조금이나마 더 나은 의사이자 인간이 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김기진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29호 (2021.10.13~2021.10.1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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