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명 이탈한 흥국생명, '역대급 추락' 막을까

양형석 2021. 10. 14.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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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드람 2021-2022 V리그 여자부 미리보기 ⑥]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양형석 기자]

지난 2000년대 초반 스페인 프리메 라리가의 레알 마드리드 CF는 소위 '갈락티코스 정책'으로 불리는 스타 선수 수집에 열을 올렸다. 그 결과, 그 시절 레알 마드리드에는 호나우두와 지네딘 지단, 루이스 피구, 데이비드 베컴, 라울 곤잘레스, 호베르투 카를로스, 이케르 카시야스, 마이클 오언 등 세계적인 스타선수들이 집결했다. 그야말로 '지구 방위대'라는 별명이 어색하지 않은 화려한 선수구성이었다.

그때부터 국내 스포츠에서도 특정 팀에 스타 선수들이 몰리면 팀 앞에 '레알'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게 유행했다. 그리고 지난 시즌 V리그에서는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가 '레알 흥국'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선수구성을 자랑했다. 기존 멤버로도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전력을 가진 흥국생명이 국가대표 주전세터 이다영(PAOK)과 해외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여제' 김연경(상하이 브라이트 유베스트)을 동시에 영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시즌 흥국생영은 축배를 들지 못했다. 외국인 선수 루시아 프레스코의 부상에 따른 조기 교체와 2월에 터진 쌍둥이 자매의 '학교폭력 폭로사건'이 결정적이었다. 여기에 시즌이 끝난 후 김연경이 중국리그로 떠나고 김세영마저 은퇴하면서 흥국생명의 전력은 더욱 약화됐다. 현재 대부분의 배구팬들은 지난 시즌 챔프전 준 우승팀 흥국생명이 이번 시즌에는 봄 배구 진출도 쉽지 않을 거라고 전망하고 있다.

쌍둥이 자매 이탈하며 '무관'으로 시즌 마감
 
 2019-2020 시즌이 끝난 후 은퇴를 선언했던 김해란 리베로는 출산 후 1년 만에 코트 복귀를 결정했다.
ⓒ 한국배구연맹
 
지난 2018-2019 시즌 김연경 없이 처음으로 통합 우승을 차지했던 흥국생명은 이듬해 이재영(PAOK)과 루시아 프레스코로 구성된 쌍포의 활약에도 정규리그 3위에 머물렀다. 루시아가 시즌 중반 도쿄 올림픽 예선에 참가하기 위해 팀을 이탈했고 이재영이 도쿄 올림픽 예선 직후 부상에 시달리면서 10경기나 결장한 것도 뼈아팠다. 흥국생명은 2019-2020 시즌의 전력으로는 우승에 도전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팀의 핵심선수이자 V리그 최고스타 중 한 명인 이재영을 3년 총액 18억 원으로 붙잡은 흥국생명은 국가대표 주전세터로 성장한 이다영을 3년 12억 원에 영입하며 '슈퍼 쌍둥이'를 합체시켰다. 여기에 11년의 해외리그 생활을 마치고 국내 복귀를 선언한 김연경까지 합류하면서 그야말로 적수가 보이지 않는 '역대급 슈퍼팀'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실제로 지난 시즌 흥국생명의 우승을 의심하는 배구팬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흥국생명은 컵대회 준우승을 시작으로 정규리그와 챔프전에서도 나란히 준우승을 차지하며 '무관'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시즌 개막 전부터 어깨 상태가 좋지 않았던 외국인선수 루시아의 조기 퇴출도 아쉬웠지만 지난 2월에 터졌던 이재영과 이다영의 학교폭력 폭로사건이 가장 치명적이었다. 팀 내 핵심 선수 2명이 동시에 전력에서 제외되자 흥국생명의 전력과 사기는 뚝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루시아의 대체 외국인 선수로 급하게 영입한 브라질 출신 브루나 모라이스의 기량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1999년생의 젊은 공격수 브루나는 외국인 선수로서 주공격수 역할을 해주긴커녕 김연경의 조력자 역할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축구선수로 활동하다 신장이 커지면서 뒤늦게 배구로 전향한 탓에 기본기가 부족했고 범실도 너무 많았다. 그렇다고 새로 주전을 맡게 된 김다솔 세터와의 호흡이 원만했던 것도 아니다.

4라운드까지 17승 3패로 독주체제를 달리던 흥국생명은 5, 6라운드에서 2승 8패로 추락했고 결국 GS칼텍스 KIXX에게 정규리그 1위 자리를 내줬다. 흥국생명은 플레이오프에서 IBK기업은행 알토스를 2승 1패로 꺾고 챔프전에 진출했지만 천하의 김연경이라도 메레타 러츠(쿠로베 아쿠아 페어리즈)와 이소영(KGC인삼공사), 강소휘로 구성된 GS칼텍스의 '삼각편대'에 대항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주전급 5명 이탈, 추락 막을 수 있을까
 
 흥국생명의 중앙을 책임져야 할 이주아는 지난 컵대회에서 블로킹 1위를 차지했다.
ⓒ 한국배구연맹
 
쌍둥이 자매가 시즌 후반 갑자기 팀을 이탈했지만 흥국생명의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흥국생명은 국내에선 FA까지 1년이 남았지만 해외진출에는 아무런 제약이 없었던 김연경이 중국리그로 진출했고 불혹의 '엄마센터' 김세영은 현역생활을 마감했다. 여기에 이재영 이탈 후 윙스파이커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던 이한비(AI페퍼스)마저 신생팀으로 이적하면서 흥국생명은 핵심선수가 무려 5명이나 이탈하는 최악의 오프시즌을 보냈다.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4순위 지명권을 얻은 흥국생명은 지난 2015-2016 시즌 GS칼텍스에서 활약했던 멀티 공격수 캐서린 벨(등록명 캣벨)을 지명했다. 캣벨은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의 켈시 페인과 함께 V리그 경험이 있는 2명 중 한 명이다. GS칼텍스 시절 득점 4위(607점)와 공격성공률 3위(37.59%)에 올랐던 캣벨의 공격력이 건재하다면 주공격수들이 대거 빠진 흥국생명의 공격력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흥국생명은 2019-2020 시즌이 끝난 후 출산을 위해 현역 은퇴를 선택했던 '미친 디그' 김해란 리베로가 코트 복귀를 결정했다. 지난 시즌 도수빈과 박상미를 함께 활용했던 흥국생명은 팀 리시브 효율 3위(34.50%)와 팀 디그 4위(세트당20.18개)를 기록하며 수비에서 썩 좋은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김해란의 복귀는 분명 흥국생명에게 큰 힘이 되겠지만 내년이면 한국나이로 39세가 되는 김해란이 전성기의 기량을 회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센터풍년'으로 불리던 201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쟁쟁한 선수들을 제치고 전체 1순위 지명을 받았던 이주아도 어느덧 프로 4년 차가 됐다. 고교 시절 라이벌이었던 박은진(인삼공사)과 정지윤(현대건설 힐스테이트)이 도쿄올림픽에 출전하며 큰 경험을 쌓은 것에 비해 이주아는 현 시점에서 한 발 뒤쳐진 게 사실이다. 따라서 이주아는 김세영이 없는 이번 시즌을 통해 흥국생명의 핵심 센터로 성장했다는 사실을 증명할 필요가 있다.

국가대표 주전으로 활약하던 스타선수 3명을 포함해 5명의 선수가 동시에 빠져나간 흥국생명은 이번 시즌 상위권 유지가 힘들 거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만약 외국인 선수 캣벨마저 부진하다면 흥국생명은 신인급 선수들로 구성된 신생구단 AI페퍼스의 경쟁상대가 될 수도 있다. '레알 흥국'으로 불리던 팀에서 1년 만에 전력이 크게 하락한 흥국생명이 이번 시즌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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