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언의 '더 모닝'] 권력을 불편하게 하는 BBC, 시청료가 9배입니다

이상언 입력 2021. 10. 13.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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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공영방송 수신료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12일 국회 국정감사장에 나온 양승동 KBS 사장. [연합뉴스]


3만원 vs 26만9000원(159파운드).

1년 치 한국과 영국의 TV 수신료입니다. 영국(12일 환율 기준)이 한국의 9배입니다. 한국에선 매달 전기요금 고지서에 2500원이 붙습니다. 영국에서는 해마다 한 차례 이만큼의 'TV 면허증 요금'을 내야 합니다. 제가 런던 특파원이었을 때 남의 나라 방송국을 위해 20만원이 넘는 돈을 내려니 속이 쓰렸습니다. 한국의 수신료는 KBS로(3%는 EBS로, 6%는 한전 수수료로) 가고, 영국의 수신료는 BBC로 갑니다.

원래 이 정도로 차이가 나지는 않았습니다. 1981년에 전두환 정부는 컬러 TV 수신료(당시의 공식 명칭은 ‘시청료’)를 한 달에 2500원으로 정했습니다. 지금의 2500원이 그때부터입니다. 그 전에는 한 달에 800원이었는데 컬러 방송 시작에 맞춰 컬러와 흑백(지금도 800원)의 요금을 분리하고 컬러 TV 소지자에게 약 세 배의 요금의 내게 한 것입니다. 당시 권력 실세가 신문 1개월 치 구독료에 맞춰 2500원으로 정했다는 이야기가 한국 언론계에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습니다.

검색해 보니 1981년 영국의 컬러 TV 수신료는 34파운드(5만5000원), 흑백 TV는 12파운드(1만9500원)였네요. 그때 두 나라 경제 수준 차이를 고려하면 컬러와 흑백 모두 한국의 수신료가 더 많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지금은 8배나 차이가 나게 됐을까요? 우선은 수신료 결정 체계가 달라서입니다. 영국은 정부가 인상을 결정합니다. 영국 하원에서 정부의 수신료 인상 방침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하는데 야당이 막지는 못합니다. 한국에선 방송법에 따라 KBS의 인상안을 국회가 승인하게 돼 있습니다. 야당은 늘 ‘어용 방송’에 정부가 선물을 주는 것이냐며 반대하고 나서고, 여당도 국민 눈치가 보여 인상에 찬성하지 않습니다. 여당이 야당이 되고, 야당이 여당이 돼도 상황은 똑같습니다.

더 근원적으로는 BBC와 KBS의 차이 때문입니다. 영국에도 수신료에 불만을 가진 사람이 많습니다. 안 내고 버티는 사람도 꽤 있습니다(그러면 법원 즉심에 회부돼 30만원 정도의 벌금을 부과받습니다). BBC 안 본다, TV가 있지만 공중파 방송은 안 본다고 주장합니다. 그렇긴 해도 BBC가 편파적이어서 문제라는 지적은 별로 없습니다.

BBC는 마거릿 대처의 보수당 정부 때는 ‘이적 행위’를 한다는 비판(포클랜드 전쟁 비판 관련)까지 정부로부터 들었습니다.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 정부도 BBC와의 관계가 편치 않았습니다. 집권당이 보수당이든, 노동당이든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공영방송의 역할에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영국의 모든 정권이 BBC를 마음에 안 들어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의 보리스 존슨 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BBC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유지됩니다. BBC의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이 교묘히 정권 편을 들고 있다고 의심하는 영국인은 드뭅니다. 이게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KBS가 수신료를 3800원으로 인상하는 안을 정부에 냈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승인하면 국회로 넘어갑니다. 고급 커피 한 잔 값도 안 됩니다. 1회 음식 배달료 수준입니다. 그런데도 국민 저항 수준이 높습니다. 제 주변에도 KBS 거의 안 본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한국의 대표 방송국인데 제대로 된 탐사보도 프로그램이 없습니다. 전에는 ‘추적 60분’이라는, BBC의 ‘파노라마’(영국 정부와 권력 층을 자주 괴롭히는 프로그램입니다)와 비슷한 게 있었는데 2년 전에 슬그머니 사라졌습니다.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볼 때마다 ‘KBS는 왜 이런 것을 만들지 못할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제 국회에서 양승동 KBS 사장에게 질타가 쏟아졌습니다. 관련 기사를 보시죠.

■ “KBS, 태극기집회 46건 민노총은 3건 보도…내용도 편파”

「 12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회 국정감사는 KBS를 향한 국민의힘 의원들의 성토장이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편파적인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주호영 의원)라며 맹공을 퍼부었다. 이날 국감은 KBS와 EBS를 상대로 실시됐다.

황보승희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4·7 재·보선 당시 부산시장 선거 등을 볼 때 야당에 대해선 검증 안 된 의혹에 대해 보도가 많이 됐지만 여당은 숫자상으로 볼 때 거의 보도가 안 됐다. 21대 총선에선 ‘야당 심판론’ 여론조사가 논란을 일으켰다”며 편파보도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양승동 KBS 사장은 “일부 논란이 된 부분도 있으나 과한 지적”이라고 맞섰다.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 역시 “지난해 8월 태극기 단체 집회는 7일간 46건을, 올해 7월 민주노총 집회는 6일간 3건을 보도했다. 내용도 보수 집회는 (코로나19) 전국 확산의 기폭제가 됐다고 한 반면, 민노총 집회는 주최 측이 방역 지침을 지켜달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는 식으로 보도했다”고 따졌다. 양 사장은 “의도를 가지고 보도를 하지는 않았다”고 답했다.

공정성에 대한 지적은 현재 KBS가 추진 중인 수신료 인상(2500원→3800원) 이슈로도 옮아갔다.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은 “넷플릭스 등은 한 달에 9500원을 받지만 국민들이 거부하지 않는데, KBS 수신료는 지탄받고 있다”며 “EBS의 경우 수신료 2500원 가운데 70원 정도 받는데도 원격강의 등 공영방송 가치를 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데, KBS는 뭘 했느냐”고 지적했다.

KBS가 수신료 인상을 위해 국회에 제출한 자구안에 대해서도 “그간 KBS에서 국회에 제출한 모든 자구책을 분석해 봤는데, 제대로 약속이 지켜진 적이 거의 없다”(허은아 국민의힘 의원)는 반응이 나왔다.

여당 의원들 역시 즉각적인 수신료 인상에 대해선 미온적이었다. 우상호 민주당 의원은 “KBS 수신료라고 이름이 지어진 것도 문제”라며 “EBS 배분율이 너무 낮은데, 타 공영매체에 혜택을 공유하도록 해야 국민 인식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에서는 이 밖에도 “40년째 제자리 걸음인 수신료 현실화에 원칙적으론 동의하지만, 적합하냐는 의견도 있다. KBS 2TV의 상업적 광고를 단계적으로 폐지해야 한다”(정필모 의원), “KBS의 문제점은 방만경영, 저효율 고비용 인력구조, 콘텐트 품질저하”(한준호 의원)라는 등의 지적이 나왔다. 양 사장은 이 같은 지적에 대해 2019년과 2020년 경영진 임금 일부를 반납했다고 강조했다.

한영익 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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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 기자 lee.sang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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