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희의 시시각각] 변희수라는 이름

양성희 2021. 10. 13.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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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인권 보호 진일보한
성전환자 전역 처분 부당 판결
인권 의식 전환 계기 되기를
군복무중 성전환수술을 받고 강제전역 조치를 당했던 고 변희수 육군 하사. 지난해 기자회견장에서의 모습이다. 변 하사는 지난 3월 극단적 선택을 했고, 최근 법원은 전역 처분은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사진 뉴시스]

지난해 군복 차림의 앳된 얼굴로 울먹이며 기자회견을 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고 변희수 하사 얘기다. 군 복무 중 성전환 수술을 받은 그는 “여군으로 계속 복무하고 싶다”고 호소했지만 군은 ‘심신장애(성기 손상)’를 이유로 전역 조처했다. 법정 소송을 벌이던 변 하사는 지난 3월 돌연 스스로 세상을 버렸다. 너무도 안타까운 죽음이다.
지난주 변 하사에 대한 육군의 전역 처분이 부당하다는 판결(1심)이 나왔다. 성전환 수술 후 법원에 성별 정정 신청을 해 이미 여성이 된 변 하사를 남성으로 본 전역심사는 잘못이라고 판단했다. 성 소수자 인권 보호에 진일보한 판결이다. 법원은 그러나 성전환자(트랜스젠더)의 군 복무에 대해서는 “국가가 정책적으로 결정할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해외에서는 20여 개국이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를 허용하고 있다. 성 소수자 인권에 대한 인식 전환과 함께 ‘트랜스젠더 군인’이라는 존재 자체를 누락해온 징집ㆍ복무제도의 맹점을 돌아볼 때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트랜스젠더의 삶을 다룬 해외 다큐를 보다가 “어쩌다 트랜스젠더가 됐는지 가장 궁금한 내용이 빠져 아쉽다”고 하자 한 지인은 “그게 바로 트랜스젠더에 대한 편견”이라고 꼬집었다. “왜 장애인이 됐느냐고, 왜 여성이, 왜 흑인이, 왜 이성애자가 됐느냐고 묻지 않는 것처럼 성립하지 않는 질문”이라는 얘기다. 퀴어 예술가 이반지하도 퀴어란 “되는 게 아니라 많은 갈등과 트러블을 안고 태어나는 것, 폭탄처럼 탁 떨어지는 것”이라고 썼다. 마찬가지로 트랜스젠더를 싫어할 자유나 권리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장애인을, 여성을, 흑인을 차별하거나 혐오할 권리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트랜스젠더를 ‘성 주체성 장애’로 규정하던 미국 정신의학회는 2018년 이를 ‘성별 불일치’로 수정했다(세계보건기구). 타고난 성과 자신이 느끼는 성이 일치하면 ‘시스젠더’, 불일치하면 ‘트랜스젠더’다. 이은실 순천향대 병원 교수에 따르면 “이들의 정신적 문제는 성별 불일치감 자체가 아니라 성별 불일치감으로 인해 발생하는 제반 스트레스”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의하면 트랜스젠더의 60%가량이 우울증에 시달렸다. 김승섭 고려대 교수의 2018년 조사에서도 트랜스젠더의 극단적 선택 시도율은 40%에 달했다. 같은 해 전체 성인(0.5%)이나 청소년(3.1%)의 자살 시도율과 비교조차 되지 않는 수치다.
해외에서는 유명인들의 트랜스젠더 커밍아웃이 잇따른다. 할리우드 스타 엘런 페이지는 트랜스젠더임을 고백하고 엘리엇 페이지가 됐다. 영화 ‘매트릭스’의 워쇼스키 감독은 원래 형제에서 남매를 지나 지금은 워쇼스키 자매다. 배우 샤를리즈 테론은 자신의 자녀가 트랜스젠더임을 인정했고, 최근 독일에서는 두 명의 트랜스젠더 연방 의원이 탄생했다. 미국의 한 기독교 대형 교단에선 최초의 트랜스젠더 주교까지 나왔다.
며칠 전 서울에는 ‘랜스야 생일 축하해’라는 구호를 내건 차량이 등장했다. 다음 달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을 앞두고 열린 이벤트다. 더이상 변희수 하사처럼 죽음으로 기억되지 않고, 삶으로 기억되는 트랜스젠더가 많아지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트랜스젠더에게도 삶은 형벌이 아니라 축복이며, 어딘가에 있지만 잘 보이지 않아 늘 ‘없는 사람’ 취급 받는 그들을 당당한 사회 구성원으로 ‘가시화’하자는 의미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변희수 하사 직전에, 일부 재학생의 반대로 숙명여대 입학을 포기해야 했던 트랜스젠더가 기억에 남는다. 당시 일부 재학생은 전통적 성 역할ㆍ이미지를 고수하는 트랜스젠더에 반대하며 이들을 안전한 여성만의 공간(여대)에 들일 수 없다고 강력 반발했다. 요즘 레디컬 페미니스트 사이에 퍼진 ‘트랜스 혐오’ 정서다. 타고난 생물학적 성기중심주의로 페미니즘을 환원시키는, 대단히 우려되는 경향이다.
누군가가 죽어야 그 이름을 기억하는 사회는 얼마나 잔인한 사회인가. 다시 한번 변희수 하사의 명복을 빈다. 더는 그런 슬픈 이름이 없기 바란다.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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