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 "성장보다 분배" 기시다노믹스..출발부터 막혔다

조현의 2021. 10. 12.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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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소득세 강화 약속했지만
증시하락에 일주일 만에 보류
내각 70% 가까이 새 인물
외교안보 핵심엔 아베 측근

[아시아경제 조현의 기자] "성장뿐이고 그 과실이 제대로 분배되지 않으면 소비나 수요가 활발해지지 않으며 다음 성장도 기대할 수 없다."

기시다 후미오 신임 일본 총리는 지난 4일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새로운 자본주의를 실현하겠다"며 분배를 간판 경제정책으로 내세웠다. 새로운 자본주의란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통해 중산층의 소득확대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이른바 ‘기시다노믹스’의 핵심 내용이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 8일 국회에서 한 첫 소신표명 연설에서도 이 단어를 12차례나 언급할 만큼 대표적 정책 구호로 내세우고 있다. 양적 완화를 기반으로 한 아베노믹스에서 탈피해 적극적인 분배 정책으로 이전 정권에서 심화된 부의 양극화를 해소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다.

◆경제는 탈아베, 인선은 그대로= 기시다 내각은 이 같은 노선 변경에도 앞선 정권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총리를 제외한 내각 구성원 20명 가운데 70% 가까이를 새 인물로 채웠지만 무늬만 쇄신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명 중 공명당 몫으로 내각에 참가한 사이토 데쓰오 국토교통상 한 자리를 제외하고는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이끄는 호소다파(4명),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이 이끄는 다케시타파(4명), 아소 다로 자민당 부총재가 수장인 아소파(3명)가 대거 차지했다.

특히 외교·안보 라인 등 핵심 자리는 아베 혹은 아베 정권을 계승한 스가 요시히데 정권에서 요직에 있던 파벌 수장이나 아베의 측근이 잇따라 올랐다. 우선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과 아베 전 총리의 동생인 기시 노부오 방위상을 유임시켰다. 이전 정권의 외교·안보 정책을 이어가겠다는 의미가 담긴 인선이다.

외무상과 방위상을 유임한 데 이어 경제산업상에는 아베 전 총리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하기우다 고이치 전 문부과학상이 임명됐다. 내각 2인자이자 정부 대변인 역할을 하는 관방장관에는 아베 전 총리가 이끄는 호소다파 소속인 마쓰노 히로카즈 전 문부과학상이 올랐다. ‘아베 키즈’로 통하는 3선의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방위성 정무관은 신설된 경제안보담당상에 임명됐다.

기시다 내각에선 처음 입각한 각료가 13명에 달한다. 직전 스가 요시히데 내각에선 5명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3배 가까운 수준이다. 아사히신문은 "쇄신 이미지를 내세우려는 목적이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새 인물 중에는 통상 내각에 입성하기엔 국회의원 경력이 짧다고 평가되는 중의원 3선도 고바야시 담당상을 포함해 3명이나 기용돼 눈길을 끌었다.

다만 평균연령은 만 61.8세로 ‘젊은 피’는 아니라는 지적이다. 새로운 인물을 내세웠음에도 스가 내각(60.4세)보다 1.4세 높은 수준이다. 이들 중에는 고령의 다선 의원들도 포함됐다. 올해 77세인 가네코 겐지로 농림수산상은 참의원 2선, 중의원 5선을 합쳐 도합 7선의 중진이다. 77세인 니노유 사토시 국가공안위원장도 참의원 3선 출신이다.

◆시작부터 삐걱…기시다노믹스 운명은= 기시다 총리는 그간 부의 쏠림현상을 줄일 방안으로 금융소득 과세를 꺼내왔다. 일본의 금융소득 세율은 일률적으로 20%로 정해져 있는데 금융소득 비율이 높은 부유층일 수록 세금부담이 오히려 낮아지는 문제를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자본주의가 아닌 새로운 사회주의"라는 논란이 일자 기시다 총리는 지난 10일 돌연 "당분간 (금융소득세 강화를) 건드릴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 4일 취임 기자 회견에서 금융소득 과세의 개편 필요성을 언급한 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보류 입장을 낸 것이다.

기시다 총리가 돌연 말을 바꾼 것은 이달 말 중의원 선거를 앞두고 증시 하락으로 인한 경제 불안을 막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실제로 시장은 새로운 내각의 등장에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니케이225지수는 기시다 취임 셋째 날인 지난 6일까지 8거래일 연속 하락 마감했다. 니케이 평균주가가 8거래일 연속 하락한 것은 2009년 7월9일 이후 약 12년3개월 만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성장의 열매를 국민에게 골고루 나눠준다는 생각에는 이론(異論)이 없지만 파이 확대가 기대되지 않는 채 분배 우선으로 재정 출동이 반복되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분배에 방점을 찍은 기시다 총리의 경제정책은 대기업의 하청기업 등에 대한 분배 강화, 중산층 확대, 육아 세대에 대한 지원 강화, 의료·돌봄·양육 등의 공적 서비스 가격 정책 재검토, 장기재정정책 등을 골자로 한다. 하지만 선심성 돈풀기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신임 내각 출범 직후임에도 당정이 벌써부터 충돌하고 있다.

야노 고지 재무성 사무차관은 지난 8일 발간된 월간지 문예춘추 11월 기고문에서 이 같은 분배 정책에 대해 "(선심성) 퍼주기 전투다. 국가 재정을 파탄 낼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일본이 엄청나게 많은 나랏빚을 안고 있다면서 재정건전성 문제가 뒷전으로 밀리는 현재 상황을 "타이태닉호가 빙산을 향해 돌진하는 것"으로 비유하기도 했다.

이에 자민당 정책 책임자인 다카이치 사나에 정조회장은 "매우 무례한 어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도 "다양한 논의가 이뤄지는 것은 좋지만 일단 방향이 정해지면 관계자(정부 공무원)는 확실하게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정책에 제동을 거는 것을 사실상 허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새 내각 출범 이후에도 한일관계에는 당분간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 8일 국회에서 한 첫 소신 표명 연설에서 한국 관련 언급은 단 두 문장에 마쳤다. 그는 "한국은 중요한 이웃 나라"라며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기 위해서라도 우리나라의 일관된 입장에 토대를 두고 한국 측에 적절한 대응을 강하게 요구하겠다"고 했다. 즉 일제 강점기 가해 행위와 관련된 양국 갈등을 대하는 일본 정부의 태도에 변화가 없을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주요 외교 상대국 가운데 한국을 미국, 북한, 중국, 러시아에 이어 가장 마지막에 거론하기도 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역대 최저 출범 지지율= 기시다 정권의 첫 시험대는 내각 출범 후 처음으로 치러지는 오는 24일 국회의원 보궐 선거다. 참의원(국회 상원) 2명을 뽑는 보궐선거로, 31일 예정된 중의원 선거(총선)의 전초전이다. 기시다 총리는 14일 중의원을 해산하고 31일에 총선거 투·개표를 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내각 출범 직후 기대감에 편승해 선거에서 유리한 국면을 점하겠다는 복안이지만 지지율이 예상보다 낮게 나오면서 결과를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

기시다 내각의 출범 직후 지지율은 최근 20년간 신임 내각 발족 직후 역대 최저치인 45%에 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아사히신문이 지난 4~5일 18세 이상 전국 유권자 97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5%가 ‘기시다 내각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기존 최저 기록이었던 2008년 아소 다로 내각의 48%보다 3%포인트 낮은 수준이다.

같은 기간 마이니치신문이 실시한 조사에서는 지지율 49%를, 요미우리신문의 조사에서는 56%를 기록했다. 기시다 내각의 저조한 지지율은 이전 정권의 적폐를 청산하지 못하는 행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아사히신문은 "신임 내각 출범 직후 지지율이 상승하는 컨벤션 효과와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조현의 기자 hone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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