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식의 이코노믹스] "이번엔 괜찮다" 방심하면 퍼펙트 스톰 못 막아

입력 2021. 10. 12. 00:29 수정 2021. 10. 12.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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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부채위기 닥쳐오나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한국사회과학협의회장
최근 경제부처 수장들이 일제히 부채위기의 가능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위기의 신호인 회색 코뿔소의 등장을 언급했고,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가계대출 총량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정은보 금융감독원장 또한 미국 금리 인상과 인플레이션, 그리고 중국 경기침체가 함께 오는 퍼펙트 스톰의 가능성을 우려하면서 리스크 점검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하고 있다. 과거의 경험을 보면 경제전문가들이 위기를 먼저 전망하고 정부는 국민의 불안 심리를 안정시키기 위해 위기 가능성을 부인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부가 먼저 부채위기의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태의 심각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중국 최대 기업인 헝다 그룹이 과도한 부채로 부실징후를 보이면서 세계 금융시장의 혼란이 우려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경고등이 켜지고 있는가. 그렇다면 한국경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 정부가 먼저 부채위기 가능성 경고
헝다그룹, 금융위기 촉발할지 촉각
대부분 경제위기, 부채 때문에 터져
일자리 늘려 가계부채 악화 막아야

경제위기를 연구한 하버드 대학의 카르멘 라인하트와 케네스 로고프 교수는 저서 『이번엔 다르다』(원제: This time is different)에서 대부분의 경제위기는 부채위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충분히 위기에 대비했기 때문에 “이번엔 괜찮다”하고 방심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저금리 여파로 주가·집값 너무 올라

김정식의 이코노믹스

퍼펙트 스톰은 올 것인가. 그리고 한국경제는 과연 부채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있는가.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신흥시장국은 미국의 금리 인상 시기에 위기를 경험했던 사실에서 위기의 가능성은 크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은 항상 글로벌 경제보다 미국 국내 경제를 우선해 금리정책을 수행하며 단기간에 큰 폭으로 금리를 높였기 때문이다. 또한 최근 한국의 부동산 및 주가 버블과 가계부채의 증가세를 고려해도 가능성은 크다.

코로나 사태로 경제 성장률은 0%대를 기록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저금리와 과잉유동성으로 최근 4년간 주택가격은 2배 이상 상승했고, 종합주가지수(KOSPI) 또한 최근 1년 동안 60% 가까이 급등했다. 코로나 사태 이후 한국의 가계부채의 증가율은 8%로 그 전의 4%에 비해 2배 높아졌으며 가계신용 잔액 또한 1800조원으로 4년 전보다 30%나 증가했다. 이러한 자산가격 버블과 과도하게 늘어난 가계부채는 금리가 높아지거나 경기침체가 심화할 경우 버블붕괴와 부실화로 금융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종합주가지수 추이

미국은 현재 원유가격 상승과 글로벌공급망 붕괴로 인한 부품가격 인상으로 인플레이션이 급속히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1.2%였던 인플레이션은 최근 5.4%로 높아졌으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자산매입 축소, 즉 테이퍼링(tapering)과 내년 말로 예상되었던 금리 인상을 앞당길 것을 시사하고 있다. 여기에 미국 의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부채한도 협상으로 과거와 같은 재정지출 확대정책을 사용하기는 어려워지고 있다. 미·중 무역분쟁에 이어 중국의 전력난과 부동산 버블붕괴로 중국경제에 대한 불확실성도 금융시장의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요인이다. 퍼펙트 스톰, 대외적 다중 충격이 몰려오고 있다.

인플레까지 꿈틀대며 부채위기 증폭

한국의 국내 여건 또한 어려워지고 있다. 먼저 최근 2년 동안 0.5% 수준에 머물러 있던 인플레이션이 올해 2%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면서 한국은행은 공격적으로 금리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 내년 이후 미국이 금리를 큰 폭으로 높일 경우 한국 또한 자본유출을 피하기 위해 추가로 금리를 인상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기준금리 추이

헬렌 레이(Helene Rey) 런던경영대학원 교수는 국제 자본시장에는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선진국과 신흥시장국 사이를 이동하는 글로벌 금융 사이클(GFC)이 존재하며 미국 금리 인상은 신흥시장국에서 선진국으로 자본유출을 발생시킨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테이퍼링과 금리 인상이 전망되는 지금 한국경제는 글로벌 금융 사이클 속으로 들어가면서 자본유출과 주가 등 자산가격 버블붕괴로 부채위기에 노출될 것이 우려된다.

퍼펙트 스톰으로 인한 부채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헬렌 레이 교수는 금융회사의 건전성을 높이는 금융감독을 통해서 신흥시장국은 위기를 피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또한 카르멘 라인하트 교수는 국제통화를 가진 일본과 미국과 같은 선진국은 국가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100%를 넘어도 국가 신뢰도에 큰 문제가 없지만, 국제통화를 가지지 않은 신흥시장국은 선진국과 다른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사례로 멕시코는 1982년 국가부채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2% 수준에서 위기가 발생했으며 아르헨티나는 2001년 50%를 약간 상회하는 수준에서 부도가 발생했다고 지적한다.

주택 문제는 교통인프라 통해 풀어야

이렇게 보면 부채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해법은 먼저 거시건전성 금융감독을 강화하는 동시에 단기간에 급속하게 금리를 높이거나 과도한 가계대출 회수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 최근 연구기관에서는 한국의 정책금리 적정수준을 3.5~4%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2008년 서브 프라임 사태와 1990년대 초 일본의 부동산 버블붕괴 경험을 보면 1~2년 사이에 금리를 3~4% 포인트 높일 경우 부동산 버블이 붕괴되면서 부채위기가 오는 경우가 많았다. 가계부채를 줄이기 위한 급속한 금리 인상은 주가와 부동산 버블을 붕괴시켜 금융부실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할 필요가 있다.

서울지역 아파트 실거래 가격 추이

가계부채가 늘어나는 원인을 제거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일자리를 만들어 생계형 가계부채 증가를 막는 것이 중요하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일자리는 더욱 줄어들 것이 우려된다. 비대면 거래와 혁신으로 서비스 일자리가 크게 줄어들고 있으며 중국의 추격으로 주력산업의 경쟁력이 약화하면서 제조업 일자리 또한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책당국은 중국의 추격에 대응해 산업경쟁력을 제고시킬 수 있는 신산업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기술개발과 신산업에 대한 전문인력 양성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신산업정책으로 산업경쟁력을 높일 때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가계부채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주택 관련 가계부채를 줄이기 위해서는 징벌적 조세정책에 의한 주택 수요억제책보다 수도권에서 서울로 진입하는 교통인프라를 구축해 서울의 주택 수요를 분산시켜야 한다. 올바른 부동산 정책이 시행돼 주택가격 상승의 원인을 제거할 때 주택가격과 전셋값이 안정되면서 가계부채 또한 그 증가세를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 재정 건전성 악화 막아야 부채위기도 대응

「 재정 건전성을 높여 금융부실과 경기침체에 대응할 수 있는 정책수단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재정 건전성이 악화하여 재정지출을 늘릴 수 없는 경우 정책수단이 제약되면서 위기극복은 어려워지게 된다.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의 제프리 프랑켈(Jeffrey Frankel) 교수는 한국이 남미와 달리 1997년 외환위기를 빨리 극복했던 배경을 당시 한국의 재정 건전성이 양호했던 데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최근 우리는 선심성 재정지출로 대표되는 경제적 포퓰리즘으로 재정적자와 국가부채가 크게 늘고 있다. 재정적자는 코로나 사태 이전에는 GDP의 3% 이내에서 관리되었으나 최근에는 6%를 넘어서고 있다. 국가채무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 또한 2025년에는 국제기구에서 위험 수준으로 경고하는 60%에 근접할 것이 전망된다. 이러한 비중은 앞으로 경제적 포퓰리즘이 늘어나면서 더욱 빠르게 악화할 것이 우려된다. 한국경제가 부채위기를 피하기 위해서는 정치논리에 의해서 재정정책이 영향을 받는 것을 최소화하고 재정준칙을 강화해 재정 건전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한국경제는 코로나 사태에도 불구하고 경상수지 흑자와 미국과의 600억 달러 통화스와프로 국가 신뢰도를 높게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금리를 높이고 중국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퍼펙트 스톰이 올 경우 위기를 겪을 수 있다. 다가오는 퍼펙트 스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산업경쟁력을 확보하고 내년 3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논리에 의해 경제가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1997년 외환위기도 그랬지만 대부분의 위기는 선거가 있는 해에 발생했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한국사회과학협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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