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리유저블 컵

이경희 입력 2021. 10. 12. 00:18 수정 2021. 10. 12.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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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유저블 컵

이경희 이노베이션랩장

몇 해 전 어느 비 오던 날. 회사 동료가 우산 비닐을 벗기더니 잘 털어 주머니에 넣었다. 다시 실내로 들어갈 때 재사용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환경을 지키려는 그의 실천에 감동해 나도 우산 커버를 챙기기 시작했다. 얼마 뒤엔 더 막강한 환경 지킴이를 만났다. 그는 스타벅스에 개인용 텀블러를 가져가 음료를 받았다. 매번 텀블러를 설거지해 들고 다닐 자신은 없었던지라 그건 따라 하지 못했다. 가급적 매장용 머그잔에 음료를 받으며 죄책감을 달랬다.

코로나 19 이후 개인 텀블러와 머그잔 사용을 중단하는 카페가 늘었다. 일회용 컵에 다시 익숙해지던 차에 스타벅스 리유저블 컵 대란이 일어났다. 추가 비용 없이 음료를 플라스틱 다회용 컵에 담아 주는 이벤트에 사람들이 몰린 것이다. 끝도 없이 음료를 제조하던 스타벅스 직원들은 고질적인 인력난 등을 호소하며 지난 7, 8일 트럭 시위에 나섰다. 1999년 스타벅스 한국 진출 이후 첫 집단행동이다. 시위 트럭에선 “플라스틱 대량생산하는 과도한 마케팅, 중단하는 게 환경보호입니다” 등의 메시지가 나왔다.

7일 오전 서울 마포구 중앙일보 본사 앞에서 진행 중인 스타벅스 트럭시위 모습. [사진=오원석 기자]


스타벅스는 친환경 마케팅에 능하다. 개인용 텀블러를 가져가면 ‘에코별’을 적립해준다.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 업계에서 가장 먼저 종이 빨대를 도입했다. 금세 눅눅해지고 음료에서 종이 맛이 느껴지지만 환경을 위해서라니 감내할 수밖에. 폐플라스틱으로 만든 재활용 상품, 일회용 컵을 대신할 예쁜 텀블러 등은 마음 편히 구매할 명분을 줬다.

스타벅스의 마케팅은 매력적이지만 과했다. 음료 구매 횟수 목표를 채우면 MD 상품을 주는 행사 기간엔 먹지도 않을 음료를 구매한다는 증언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다. 친환경을 내세운 리유저블 컵 이벤트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국제 환경보호 연구그룹 CIRAI는 재사용 컵의 재질 등에 따라 최소 20회, 많게는 1000회 이상 써야 일회용 컵보다 환경에 낫다는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재사용 컵을 생산하고 버릴 때 드는 에너지, 운송 과정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 세척에 필요한 물과 세제로 인한 환경 오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해서다. 제아무리 친환경 제품이어도 많이 생산하거나 소유하는 건 결코 친환경일 수 없다. 이번 대란 덕에 소비자도 친환경의 진실을 더 잘 알게 됐을 터다.

이경희 이노베이션랩장 dung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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