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쪘네? 운동장 돌아"..법망 피한 5인 미만 직장 갑질 '심각'

한영혜 입력 2021. 10. 11. 22:04 수정 2021. 10. 12.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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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장이 폭언을 일삼았고, 살이 쪘다는 이유로 운동장을 돌게 했습니다. 과도한 업무 지시도 했습니다. 사장에게 전화가 걸려오면 두려워 공포에 떨 정도였습니다. 두통, 구역질 등 스트레스로 인한 고통이 너무나 심했습니다. 노동청에 진정을 제기했지만 5인 미만 사업장이라 직장 내 괴롭힘은 다뤄지지 못했습니다.”

#. “구두로 당일 해고 통보를 받았습니다. 상호 논의 없이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대표가 고함을 치며 해고 통지했습니다.”

#. “근로계약서에 하루 8시간 일하게 돼 있지만 매일 야근과 휴일 근무를 했습니다. 새벽까지 근무한 적도 많았지만, 야근 수당을 지급받지 못했습니다. 월급이 250만원이 넘지 않았습니다. 입사할 때 사장님이 빨간 날은 휴일로 쉰다고 했는데 추석과 설날을 제외하고 빨간 날에도 출근해 일했습니다. 역시 수당은 없었습니다. 출퇴근 지문이 없는데 야근 수당이나 휴일수당을 받을 수 있을까요.”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11일 ‘5인 미만 갑질 실태 보고서’를 공개하며 관련법 개정을 촉구했다. 중앙포토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11일 ‘5인 미만 갑질 실태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9월부터 올해 8월까지 직장갑질119에 접수된 상담 이메일 가운데 5인 미만 사업장 소속 직원의 상담 신청은 총 71건이었다. 내용 유형별로는 ‘직장 내 괴롭힘’이 43.7%로 가장 많았고, 이어 임금(42.3%), 징계·해고(35.2%) 등 순이었다.

지난 6월 이 단체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이 심각하다’고 답한 응답자 비율은 5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52.1%로, 다른 사업장이 30% 수준인 데 비해 훨씬 높았다.

그러나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근로기준법은 이 법의 적용 범위를 ‘상시 5명 이상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으로 규정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적용 예외 개정해야”


직장갑질119는 해외에서는 국내와 같이 ‘노동자 수’를 기준으로 획일적으로 노동법의 적용을 예외로 하는 입법례는 찾아볼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고용노동부의 ‘직장 내 괴롭힘 사건 연도별 처리현황’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중 5인 미만 사업장 등을 이유로 법 적용 제외 처리가 된 사례는 지난해 268건, 올해 8월까지 312건”이라며 “전체 신고의 40%를 넘는 취하 사건에도 5인 미만 사업장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고 전했다.

경영상의 이유로 휴업을 하는 경우 평균 임금의 70%를 지급해야 한다는 규정과 공휴일·대체휴일 등을 유급휴일로 보장해야 한다는 규정도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또 5인 미만 사업장은 해고를 30일 전에 예고하거나 서면으로 통지할 의무도 없다.

심준형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국제노동기구(ILO)는 노동시간, 휴일, 해고 등 모든 조항에서 모든 형태의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며 “5인 미만 사업장이라는 이유만으로 노동법 조항 대부분을 적용하지 않는 근로기준법은 세계적 추세에 반하는 반인권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근로기준법 시행령을 개정해 해고, 직장 갑질, 휴일 등 기본적인 인권에 관한 조항은 전체 노동자에게 적용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영혜 기자 han.youngh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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