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대로에 좋은 건축 없다"던 세계적 건축가, 그가 지은 이 건물

이은주 2021. 10. 11.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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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문화재단 신사옥 설계한
세계적인 건축가 드 뫼롱
테이트 모던,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 등
"경험하고 발견하는 공간 돼야"
ST송은빌딩. 지하 2층에서 올려다본 천장의 모습. © Jihyun Jung [사진 송은문화재단]
ST송은빌딩. 1층 로비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다. © Jihyun Jung. [사진 송은문화재단]
헤르조그 앤 드 뫼롱이 설계한 ST송은빌딩 지하2층 전시장 ©Iwan Baan [사진 송은문화재단]
송은문화재단 신사옥 지하층 전시장. ©Iwan Baan [사진 송은문화재단]

"서울 도산대로에서 좋은 건축 찾아볼 수 없었다. 영감을 얻기 어려웠다."
3년 전 이렇게 직설적으로 한국 건축을 평가했던 세계적인 듀오 건축가 헤르조그 앤 드 뫼롱(Herzog & de Meuron·이하 HdM)의 피에르 드 뫼롱(71)이 한국을 다시 찾았다. 드 뫼롱은 자크 헤르조그(71)와 더불어 1978년 스위스 바젤에 건축설계사무소를 설립하고 세계 곳곳에 랜드마크가 된 건물을 설계해왔다. 2018년 자신들이 설계한 송은문화재단(이사장 유상덕) 신사옥 'ST송은 빌딩' 기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헤르조그와 함께 방한했던 그가 건물 개관에 맞춰 다시 왔다. 현재 이곳에선 개관전 1부로 HdM과 함께 기획한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지난달 30일 개관한 건물은 HdM의 한국 첫 프로젝트다. 이들이 누군가. 오래된 화력 발전소를 세계적 미술관으로 바꾼 런던 테이트모던을 비롯해 도쿄 아오야마 프라다 빌딩(2003),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2008), 함부르크 엘프필하모니 콘서트홀(2017) 등을 설계한 주역이다. 2001년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다.

현장을 둘러보니 그들이 이곳에 문화공간으로 제시한 '해답'은 주변의 건물들과 아주 달랐다. 외부 형태부터 내부 공간까지, 바깥 콘크리트 표면부터 뒷면에 감춘 '반전'의 뒷모습까지 깡그리 달랐다. 작지만 존재감이 뚜렷한 건물이다.

대로변에 자리한 날카로운 삼각형 모양의 콘크리트 건물은 지상 11층(57m), 지하 5층으로, 대지면적 1179㎡(약 357평)에 연면적 8151㎡(약 2466평) 규모다. 대로를 마주한 입면(파사드)엔 창문이라 부를 것이 두 개뿐이다. 그중 하나는 길이가 13m에 달하는 가느다란 직육면체다. 언뜻 폐쇄적으로 보이지만 이 건물엔 반전이 감춰져 있다. 건물의 뒷면은 사선으로 경사져 있고, 각 층엔 테라스가 있다.

이곳엔 '뻔하디뻔한' 공간은 없다. 1층 외부의 작은 정원, 로비에서 2층으로 이어지는 넓은 나선형 계단, 지하 2층부터 지상 1층까지 천장 가운데가 동굴처럼 뚫린 전시장 등이 눈길을 끈다. 여기서 만난 드 뫼롱은 "서울에서 가장 상업적인 동네에서 문화 공간을 만들어내는 일 자체가 도전이었다"며 "우리는 운이 좋았다. 이 자리에서 최적의 솔루션을 찾아냈다"고 말했다.

밖에서 바라본 ST송은 빌딩. 뾰족한 삼각형 건물이 눈에 띈다. ©Iwan Baan[사진 송은문화재단]
목판 거푸집을 사용해 소나무 질감을 살린 ST송은빌딩 콘크리트 외벽. © Jihyun Jung.[사진 송은문화재단]
ST송은빌딩의 내부 모습. ©Iwan Baan[사진 송은문화재단]

Q : 설계의 해답은 어떻게 찾았나.
A : "우리는 프로젝트마다 새로운 답을 찾으려 한다. 해답은 주로 건물이 지어질 지역의 문화를 공부하고 함께 협업하는 과정에서 나온다. 세계에서 일하며 얻은 결론은 현지 사람들과 협력할수록 건축이 풍부해진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관광객의 시선이 아니라 거주하는 사람의 시각으로 도시를 보고 경험하려 해왔다. 이 건물은 4년 반 넘게 걸린 긴 여정의 결과다."

Q : 테이트 모던 등 이전 프로젝트에 비해 규모가 작은데.
A : "맞다. 이것은 높은 건물도, 덩치가 큰 건물도 아니다. 하지만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 이곳은 작지만 주변의 사무실 건물이나 상업빌딩과 다르게 응축된 에너지를 갖고 있다. 작은 공간이어도 그 어느 곳보다 훨씬 더 집중된 에너지를 가질 수 있고 더 아름다울 수 있다. "
미술관은 단순히 작품만 보러 오는 곳이 아니라고 했다.
A : "그렇다. 미술관의 기능을 그렇게 단순하게 보면 안 된다. 미술관은 예술작품이 에너지를 뿜어내는 곳이고, 사람들은 이곳에서 고요한 시간을 누리며 작품과 에너지를 주고받는다. 이 교감이 방해받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건축물 자체가 너무 시끄러우면 안 된다. "
그는 "도시는 항상 분주하고 소음도 많고 정신없이 돌아간다"면서 "사람들이 바쁜 일상에서 한걸음 떨어져 예술을 바라보고 여유를 누리는 곳, 공원과 같은 곳이 되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드 뫼롱은 "예술은 시각, 촉각, 청각 등 온감각을 사용해 누리는 것"이라며 "건축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기능도 중요하지만, 건물 안에서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이 공간을 어떻게 보고 느끼고 누리냐도 중요하다. 건축은 기능(function)과 인지(perception), 표현(expression)이 동시에 충족돼야 편안하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ST송은빌딩1층 로비 .가운데 우물처럼 뚫린 공간은 지하층으로 이어진다. ©Iwan Baan[사진 송은문화재단]
ST송은빌딩 개관전이 열리고 있는 전시장. ©Iwan Baan [사진 송은문화재단]
전시장 외벽 모습. 개방감이 두드러진다. ©Iwan Baan [사진 송은미술문화재단]
멀리서 본 송은문화재단 신사옥 뒷면. ©Iwan Baan. [사진 송은미술문화재단]

Q : 반전의 건축이다. 앞면은 굉장히 폐쇄적으로 보이는데 뒷면엔 층층이 테라스다.
A : "입면(파사드)을 통해서 도시 안에서 유니크한 존재감을 보여주고 싶었다. 동시에 건물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생각했다. 수족관처럼 밀폐된 공간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뒤에 많은 열린 공간을 만들어 최대한 많은 것을 누리게 하고 싶었다."

Q : 로비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동선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A : "요즘 미술관을 설계하며 디렉터나 큐레이터로부터 공통적으로 요청받는 게 있다. 그곳만의 '파운드 스페이스(the found space)를 만들어달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공간을 말한다. 테이트 모던에서 터빈 홀이 파운드 스페이스라면, 이곳에선 2층으로 올라가는 나선형 계단이 그런 곳이다. 2층으로 걸어 올라가며 건축을 흥미롭게 경험할 수 있다."
소나무 결의 형태를 살린 콘크리트 외벽이 눈에 띈다.
A : "피부에 문신한 것처럼, 벽면을 하나의 회화처럼 부각하고 싶었다. 다양한 소나무 결의 패턴을 정교하게 살려 촉각적인 감성을 더했다. 건물은 하나의 육중한 덩어리이기도 하지만 그 부피와 대비되는 질감을 입고 도시 안에서 하나의 조각품이 되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며 건물은 낡아지겠지만 그 아름다움이 더해지리라 기대한다."
그는 "서울에는 짧은 시간에 지어진 건물들이 아주 많고 그것들이 그렇게 오래 지속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면서 "우리는 이 건물이 서울의 랜드마크가 되어 여러 세대에 걸쳐 지속되는 건물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개관전 1부 전시는 11월 20일까지.

스위스 출신 듀오 건축가 자크 헤르조그(왼쪽)과 피에르 드 뫼롱. ⓒ Lucian Hunziker [사진 송은문화재단]

◆헤르조그 & 드 뫼롱(HdM)= 자크 헤르조그와 피에르 드 뫼롱이 함께 이끄는 건축설계 사무소. 건축 전문 인력 40명과 지원인력 400명 등 약 500명이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스위스 바젤에 본사가 있으며 런던, 뉴욕, 홍콩, 베를린에 지사가 있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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