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위치 속 '3조원 핵잠기밀'..FBI에 걸린 美부부 은밀한 거래

박현영 2021. 10. 11.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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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 핵 잠수함 기술을 팔아넘기려다 붙잡힌 미 해군 핵 잠수함 엔지니어 조너선 토비 부부의 자택.FBI가 지난 9일 집을 수색했다. [AP=연합뉴스]


"이 편지를 당신의 군 정보기관에 전달해 주세요. 나는 이 정보가 당신 나라에 큰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건 장난질이 아닙니다."

지난 4월 미 해군 핵 추진 잠수함 엔지니어인 조너선 토비(42)는 해외로 이런 편지가 담긴 소포를 보냈다. 소포 안에는 미 해군 핵 잠수함 운영 매뉴얼과 기술적 세부 사항, 그리고 은밀한 거래를 하자는 제안도 들어 있었다.

한참 지나 답장이 왔다. 자신이 '지시'한 대로 암호화된 이메일로 상대방이 말을 걸어온 것이다. 몇 차례 교신 끝에 10만 달러(약 1억2000만원) 상당의 암호 화폐를 받는 대가로 해군 기밀을 제공하기로 했다.

지난 6월 착수금으로 1만 달러 상당 암호 화폐가 입금되자 토비 부부는 웨스트버지니아주로 가서 약속한 비밀 장소에 기밀을 담은 16GB 용량의 SD카드를 놔두고 떠났다. 부인 다이애나(45)는 남편이 SD카드를 놔둘 때 망을 봤다.

하지만 비닐에 싼 SD카드를 끼워 넣은 반쪽짜리 땅콩버터 샌드위치 봉투를 집어 든 사람은 외국 정부 대리인이 아니라 미 연방수사국(FBI) 요원이었다.

FBI 요원은 7월 추가로 2만 달러 상당 암호 화폐를 보내고 SD 카드 해독 키를 받았다. 8월엔 7만 달러를 건네고 SD카드를 하나 더 받았다. 물증을 확보하고 검증한 FBI는 지난 9일 토비 부부를 체포했다.

10일 미 법무부 보도자료와 공개된 법원 서류에 따르면 토비 부부는 핵 잠수함 기술을 해외로 팔아넘기려다 붙잡혔으며 원자력법 위반 등 혐의를 받고 있다.

FBI가 확보한 SD카드엔 최신형 미 해군 버지니아급 공격형 핵 추진 잠수함의 설계와 운용에 대한 자료가 들어있었다. 미국이 1958년 핵 잠수함 기술을 영국에 전수한 이후 63년 만에 처음으로 호주에 넘기겠다고 최근 발표한 그 기술이다.

미 해군 버지니아급 잠수함. 해군 소속 핵 잠수함 엔지니어 조너선 토비는 이 잠수함 기술을 해외로 팔아넘기려다 붙잡혔다. [AP=연합뉴스]


토비는 미 해군에서 2012년부터 잠수함의 소음과 진동을 줄이기 위한 기술을 포함, 핵 추진체에 대해 연구해왔다. 소음과 진동을 잡는 기술은 잠수함의 위치를 노출하지 않도록 하는 핵심 기술이다.

그는 높은 등급의 기밀 취급 권한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해군 예비군 소속으로 해군 최고 책임자인 '해군 작전 최고 사령관실'에서 15개월 동안 근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토비는 오랫동안 이번 일을 기획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상대국 요원으로 가장한 FBI와 주고받은 이메일에서 기밀 서류를 하루에 서너장씩만 가져나오는 방식으로 사무실 보안을 통과했다고 밝혔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했다.

발각될 위험이 있을 경우 자신의 가족을 해당 국가로 데려가 주길 바란다면서 여권과 현금도 준비해놨다고 밝히기도 했다.

사례금을 암호 화폐로 받고, 정교한 암호화 방법으로 교신했지만, 행동은 극히 엉성한 것으로 기소장에 묘사돼 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이를테면 SD카드를 놓고 갈 비밀 장소를 FBI가 관찰하기 편리하고 신분이 금세 탄로 날 수 있는 곳으로 정했다는 것이다.

법무부는 토비가 거래 대상으로 삼은 나라를 공개하지 않았다. 우방인지 적인지도 밝히지 않았지만, 적보다는 우방일 것으로 보인다고 NYT는 전했다.

또 법무부는 토비가 보낸 소포를 FBI 법률담당관(legal attache)이 지난해 12월 입수했다고만 밝혔을 뿐 상대국이 미국 측에 관련 정보를 넘겼는지, 미국이 정보원을 통해 독자적으로 얻은 것인지 공개하지 않았다.

NYT에 따르면 FBI는 63개국 주재 미국대사관에 법률담당관을 두고 있다. 소포 발송 이후 FBI가 입수하기까지 시간이 7개월가량 걸린 배경도 설명하지 않았다.

미 해군 버지니아급 잠수함은 한 척을 건조하는 데 30억 달러(약 3조5800억원)쯤 든다고 한다. 결국 토비는 10만 달러(1억2000만원)에 최고급 기밀정보를 넘기려 한 셈이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park.hy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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