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구리구리 냄새 나는 은행, 누가 먹어 씨앗 옮길까

김현정 2021. 10. 1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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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도 지나고 10월이 되면서 한결 날씨가 쌀쌀해지고 가을이 완연해집니다. 10월에는 24절기 중 한로(寒露)와 상강(霜降)이 있죠. 각각 이슬(한로)이 차가워진 공기를 만나 서리로 변하기 직전의 시기와 말 그대로 서리가 내리는(상강) 시기를 뜻합니다. 이처럼 찬 기운과 관계된 말들이 있는 것도 겨울이 머지않음을 느끼게 해주죠.
식물들은 가을을 준비하기 위해 단풍이 들고 이윽고 낙엽으로 변해갑니다. 열매들도 한층 더 성숙해져서 저마다 멀리 이동하는 방법을 생각해내지요. 단풍나무나 소나무의 씨앗처럼 바람을 타고 이동하는 씨앗들은 날개를 달고 있습니다. 데굴데굴 굴러가는 밤이나 도토리는 크고 동그랗고 단단합니다. 새들이 먹고 멀리 이동시켜주길 바라는 팥배나무나 가막살나무 등의 열매들은 붉은색을 띠고 맛도 단맛이 납니다.

우리 주변 식물들의 비밀 이야기

가을이 오면 주변에서 우리의 눈에 쉽게 띄는 나무 중에 신기한 이야기를 가진 나무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은행나무입니다. 은행나무는 바늘잎나무(침엽수)일까요? 넓은잎나무(활엽수)일까요? 생김새로 보면 이파리가 넓적하니 활엽수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잎맥이 그물맥(물과 영양분이 이동하는 잎맥이 그물 모양을 이룸)이 아니고 나란히맥(세로로 긴 잎맥이 연속적으로 거의 평행하게 나란한 모양)입니다. 속씨식물이 아니라 겉씨식물에 속하고, 물이 이동하는 물관도 침엽수들이 가진 헛물관(일반적인 물관보다 덜 진화된 상태로 세포 사이 구멍(천공)이 없음)입니다. 여러 가지 특징이 침엽수의 성격을 따르고 있죠.

우리 주변 식물들의 비밀 이야기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은행나무를 침엽수로 분류합니다. 최근에 와서는 둘 중 하나로 나누지 말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침엽수에 분류하는 경우가 많은 편이죠. 침엽수는 주로 솔방울을 닮은 열매를 갖고 있는데 은행나무 열매는 일반 활엽수들이 만들어내는 열매와 닮았습니다. 열매가 살구 비슷하게 생기고 껍질 안쪽 두꺼운 육질 부분이 은빛이라 은색 살구라는 뜻의 은행(銀杏)이란 이름이 붙여졌죠. 열매 또한 곧바로 열리는 게 아니고 심은 지 15~20년은 지나야 꽃을 피우고 열매도 맺습니다. 꽃 역시 암수가 따로 피는데요. 한 나무에서 암수 꽃이 다 피는 게 아니고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있습니다. 암수딴그루라고 해요. 정말 재미난 이야기를 많이 안고 있는 나무죠?
그중 제일 신기한 것은 따로 있습니다. 앞서 말한 열매 이야기인데요. 길가에 떨어진 살구색 열매들은 지나가는 사람의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바로 열매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 때문이지요. 밟는 순간 열매에서 피어오르는 냄새에 서로 밟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마치 지뢰라도 되는 듯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져요.

우리 주변 식물들의 비밀 이야기

어떤 열매라도 멀리 이동시켜줄 대상이 필요합니다. 바람이거나 동물이거나 물이거나 다양한 주변 환경을 활용해 식물들은 씨앗을 멀리 보낼 작전을 짜요. 은행의 경우 과육이 있고 안에 핵과로 씨앗이 들어있습니다. 이 씨앗 크기도 크거니와 과육이 있어서 바람이나 물을 이용할 수도 없죠. 과육은 새가 먹기에도 맛이 없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은행나무는 2억 년도 더 전부터 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2억7000만 년 전의 화석이 발견된 바 있죠. 지금은 사람들이 옮겨준다고 할 수 있지만 당시 인간은커녕 우리가 아는 포유류도 존재하지 않을 때입니다.
그렇다면 당시에 누가 은행나무 열매를 먹어서 옮겨줬을까요? 아마도 공룡일 것이라고 학자들은 추측합니다. 초식공룡 중에 어떤 개체가 이 은행을 먹어서 번식에 도움을 줬을 거라고 해요. 특히, 구린내 나는 은행 열매가 소화를 돕는 작용을 했을 것이라고 추측하죠.
요즘의 숲에서는 너구리가 은행 열매를 먹는 것이 종종 관찰됩니다. 숲속에서 무더기로 모여 있는 은행 열매를 본다면 너구리가 먹고 싼 똥일 확률이 높아요.
누군가가 분명히 씨앗을 옮겨주어야 식물은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도저히 짝이 없을 것 같은 은행나무에게도 과거엔 공룡이 지금은 너구리 같은 동물이 씨앗을 옮겨주는 역할을 해주니 정말 신기하지요. 우리 주변에서도 뭔가 해결책이 보이지 않거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생겨도 언젠가는 의문이 풀릴 것이고 해결책도 나타날 것입니다. 단, 그것에 대한 관심은 유지하고 있어야겠죠. 깊어가는 가을,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 같은 문제가 있다면 포기하지 않고 좀 더 관심을 갖고 해답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글·그림=황경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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