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이런 대통령 계속 뽑아야 하나
신망 높은 선배 한 사람이 내년 대통령선거에 투표하지 않겠다고 한다. 지금 거론되는 유력 후보 중에 도무지 찍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30여년 동안 한 번도 투표에 빠진 적이 없었다. 그런 그가 내년에는 안 하겠다, 아니 못 하겠다고 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나라의 운명을 맡겨야 한다는 사실이 화가 나다 못해 서글프기까지 하다고 장탄식을 한다.
2022년 선거는 희한한 선거가 될 모양이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양대 정당의 상위권 후보 4명 중 호감도가 40%를 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전원 호감도보다 비호감도가 더 높다. 국민 눈에 모두 ‘아니올시다’인 것이다. 도덕적 하자가 가장 큰 이유이다. 2017년 대선 때는 호감도가 40% 이상인 후보가 네 명 있었고 그중 두 명은 50%를 넘었다. 이 추세대로라면 내년 선거는 사상 유례가 없는 ‘비호감 선거’가 될 것이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아니라 차악 후보를 뽑아야 한다니, 대한민국의 팔자가 참으로 신산하다.
딱하게도 지금 국민은 대통령 후보의 능력과 자질을 따질 계제가 못 된다. 선두권 후보들이 하나같이 도덕적 치명상을 안고 있어 ‘사람다운 사람’을 찾는 것이 급선무가 돼버렸다. 도덕적 추문과 의혹이 범람하고, 같은 당 경쟁자 입에서 ‘감옥 운운’ 하는 소리까지 들어야 하는 이런 역대급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진실 따위가 뭐 그리 중요해’라는 시대 풍조 때문일까. ‘꿩 잡는 게 매’라고 일만 잘하면 도덕적 흠결은 대수가 아닐까. 이 대목에서 마키아벨리에 대한 오해를 바로 고쳐야 할 것 같다. 그는 ‘군주론’에서 분명 ‘필요하다면’ 군주가 도덕이나 윤리를 무시해도 된다고 했다. 그런데 그 필요가 정치 지도자 개인의 이익과 영달을 위한 것이 아니다. 국가 통합과 발전을 위해 불가피하다면 권모술수도 용인돼야 한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도덕적으로 당당한 사람만이 강력한 군주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수신제가’도 안 된 사람이 ‘치국평천하’를 할 수 있다면 그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
지금 거론되는 유력 후보자들의 면면은 화려하기 이를 데 없다. 전원이 서울대 등 명문대학 졸업자들이다. 고시 합격자, 도지사 출신, 국회의원과 장관 경력 등은 단연 대한민국 최상위급 스펙이다. 이런 사람들이 비호감이라면 어디에서 괜찮은 후보를 찾을 수 있을까. 정치인도 국민 중에서 뽑힌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을 배출하고 키워준 국민은 책임이 없을까. 대한민국의 모집단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은 임기 마지막 무렵 지지율 75%라는 전설적인 기록을 남기고 역사의 뒤로 사라진다. 메르켈도 훌륭하지만 그런 지도자를 16년 동안 지켜준 독일의 합리적 정치문화도 대단하고 부럽다. 우리는 어떤가. 아무리 ‘내 편’이고 같은 진영 후보라 해도 도덕적 기본이 안 되면 과감하게 내칠 수 있어야 한다. 비호감 후보가 난립하는 작금의 사태에 대해 국민은 깊이 성찰해야 한다. 사람은 잘 바뀌지 않는다. 그렇다면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 제도를 변경하는 것이 사람들의 인식이 변화하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물리적·시간적으로 더 효율적이다.
우리나라 16대 대통령은 퇴임 후 검찰 조사를 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7대, 18대 대통령은 지금 몇 년째 감옥에 있다. 현직 19대 대통령의 앞날도 순탄하지 않을 것 같다. 20대 대통령은 출범도 하기 전에 비관적 전망이 우세하다. 그렇다면 이제 제왕적 대통령제를 용도폐기해야 마땅하다. 대한민국은 국가 경쟁력과 신용도, 1인당 국내총생산(GDP) 부문에서 일본을 제칠 정도이다. 그런 선진 대한민국을 대통령 한 사람의 수중에 맡긴다는 것은 무모하고 무책임하다. 시대에 맞게 권력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 당장 대통령제를 없애기 어렵다면 최소한 분권화라도 확실하게 실행해야 한다.
카를 마르크스는 비극이 되풀이되면 희극이 된다고 했다.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하지만 지금보다 더 나은 정부를 세울 수 있다는 희망이 살아있을 때나 가능한 이야기다. 지난 4년 반 세월 동안 많은 국민이 문재인 대통령의 무능과 편벽증 때문에 진절머리를 냈다. 과연 다음 대통령이 그보다 더 잘할 수 있을까. 그런 확신도 없이 투표하러 나가야 한다면, 이것은 비극일까 희극일까. 이제 결단할 때가 됐다.
서병훈(숭실대 명예교수·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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