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욱의 슬기로운 금융] 헝다 사태, 10여년 버블에 울리는 첫번째 경고음인가
지난 한 달여간 금융시장의 관심은 온통 중국 헝다그룹에 집중돼 있었다. 이 기업집단이 이자를 제때 낼 수 없는 형편이 되자 전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을 친 것이다. 헝다그룹의 부채는 2조 위안(약 340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만일 부도가 나기라도 한다면 엄청난 피해가 예상되기에 중국은 물론이고 미국, 유럽의 금융시장도 바짝 긴장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그리 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먼저 이 그룹에 대해 알아보자. 그룹 이름 헝다를 한자로 쓰면 항대(恒大)인데 ‘항상 크다’라는 의미가 되겠다. 이 회사는 건설업에서 시작했는데, 이름 그대로 매우 공격적인 경영 전략을 택해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땅을 사고 아파트를 지어 분양하고, 다시 돈을 빌려 땅을 사고 아파트를 짓고…. 1997년 설립돼 불과 20여년 만에 중국 건설회사 중 자산 규모 1위에 올라섰다. 그간 중국의 부동산 건설 붐을 제대로 타고 날아올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고는 본업을 넘어 테마파크, 프로축구, 심지어는 전기차에 이르기까지 문어발 확장을 계속했다.
하지만 지난해 8월 중국 정부가 건설업체에 대한 과다 대출을 규제하기 시작하자 헝다그룹은 자금난에 빠지고 만다. 지난달 말에 제시된 중국 채권에 대한 이자는 갚았지만, 외화이자는 지급유예하는 등 도산 위험에 처했다. 그 여파로 헝다그룹의 주가는 올해 들어 80%나 떨어졌다. 주주들은 물론 이 그룹이 발행한 채권을 가지고 있는 투자자들은 큰 손해를 보고 있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그도 그럴 것이 헝다그룹의 성장 비결은 빚이었기 때문이다. 이자를 못 갚는 기업에 선뜻 돈을 빌려줄 금융기관은 없으니 어쩌면 조만간 파산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그룹이 파산한다고 해서 중국은 물론이고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첫째, 헝다그룹은 중국 기업이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중국은 공산당이나 그의 지시를 받는 정부가 중요 사항을 결정한다. 그런 점에서 헝다그룹의 운명은 중국 당국의 손에 달려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내년 2월에는 중국 베이징에서 동계올림픽이 개최될 예정이다. 중국 당국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축제를 앞두고 대규모 경제 혼란이 일어나는 것을 방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만일 중국 당국이 헝다그룹이 파산해도 큰 영향이 없다고 판단한다면 당연히 파산시킬 것이다. 반대로 이 그룹의 파산으로 생기는 영향이 막대하다면 은행으로 하여금 긴급 자금을 지원하거나 국유기업 등이 헝다그룹 자산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재빨리 사태를 수습할 것이다. 어떤 경우라도 호떡집에 불이 나는 경우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둘째, 헝다그룹 채권을 매입한 글로벌 금융기업이 입게 될 손실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헝다그룹 파산으로 글로벌 기업이 돈을 떼이게 된다면 그 영향은 전 세계로 퍼져나갈 것이다. 세계 금융시장이 지난 한 달 동안 긴장했던 것도 이를 경계한 것이었다. 누가 얼마를 떼일지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9월 말에 유럽중앙은행의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는 “글로벌 금융시장이 서로 연결돼 있지만, 헝다그룹의 유럽 내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제롬 파월 의장도 “중국의 상황이 미국으로 퍼질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그 영향력을 일축했다. 결국 헝다그룹이 파산하더라도 중국을 포함한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로써 모든 걱정이 사라졌으면 좋으련만, 정작 중요한 것은 따로 있어 보인다. 헝다 사태를 보노라면 20년 전 미국에서 발생한 엔론 사태가 떠오른다. 엔론은 1996년부터 연속 6년간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선정되는 등 명성을 날리던 에너지 전문기업이었다. 그러다 당시 닷컴 버블(기업 이름에 .com이 붙으면 신기술을 영위하는 기업으로 간주해 주가가 치솟았던 현상)을 등에 업고 광통신망 등 인터넷 신사업에 공격적으로 진출했다. 이에 필요한 엄청난 자금은 빚으로 충당했지만, 엔론의 명성을 위해 이를 유령 자회사에 숨겼다. 2001년 초 이러한 사실이 밝혀지자 엔론은 곧바로 파산하고 만다.
이 사태를 계기로 회계 관련 법률이 강화되는 등 당시 미국 사회에 미친 영향은 엄청났다. 사람들은 엔론 하면 분식회계를 떠올리지만, 사실 사건의 근본 원인은 대규모 차입과 이를 가능케 한 시장 여건이었다. 그래서 엔론 사태는 기업 파산 자체로 끝나지 않고, 닷컴 버블이 본격 붕괴하는 계기로 작용하게 된다. 미국 주식시장은 엔론 사태 이후 40% 넘게 추가 폭락하고 말았다.
헝다와 엔론은 20년에 달하는 시차는 물론이고 중국과 미국, 부동산과 에너지라는 전혀 다른 영역의 기업들이지만 대규모 차입을 통해 공격적 확장을 도모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시장이 이를 부추겼다는, 즉 넘쳐나는 유동성과 신기술 또는 부동산에 대한 맹목적 믿음이 퍼져 있었다는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다. 유동성과 맹목적 믿음은 버블의 핵심 재료이다.
만일 지금이 코로나19 극복 과정에서 조성된 엄청난 유동성으로 말미암아 버블이 잉태되는 시기라면 역사는 헝다 사태를 이 버블을 알리는 첫 번째 경고로 기록할지 모른다. 버블은 터져야만 확인된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시장 상황이 버블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만일 버블이 터지는 때가 온다면 누군가에게는 큰 슬픔이 될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큰 기회가 될 수가 있다. 그때 우리는 맹목적으로 투자하지 않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건 그렇고 중국은 도대체 왜 부동산 억제 정책을 꺼내 들어서 평지풍파를 일으킨 것일까? 이웃인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타산지석으로 삼은 것인가, 아니면 부동산 투자에 기댄 성장은 허장성세라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일까….
한국은행 자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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