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방역 연구개발 속도전, 체계 효율화로 대처해야

입력 2021. 10. 11. 00:42 수정 2021. 10. 11. 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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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자 서울국제포럼 회장·한국과총 명예회장·전 환경부장관

팬데믹은 기후변화와 얽혀 있다. 급격한 기온 강하나 상승은 흉작·기근·역병(疫病)의 3종 세트로 사회붕괴와 전쟁까지 유발했다. 기온이 온화하던 900~1300년 사이 유럽 인구는 4배로 늘었다. 그 뒤 가뭄과 홍수, 한파와 폭염 등 극한 기상현상의 소빙하기로 진입하자 팬데믹이 유럽을 강타했다. 인구 대비 최대 사망자를 낸 페스트였다.

중화제국의 위세를 떨친 명나라(1368~1644년)도 1641년 페스트 창궐에다 가뭄과 메뚜기 떼 공격에 농작물 씨가 마른다. 높은 의료 수준에도 불구하고 부정부패로 기아와 질병을 다스리지 못한 명 왕조는 청나라 침략에 무너지고 만다. 기온 강하가 최고치(약 2도)였던 1644년의 일이었다.

「 기후변화로 흉작·기근·역병 반복
역병 대응, 미신에서 과학으로
연구개발, 속도전과 강자독식
분산형 체제 협력·효율화 절실

역사상 최단 기간에 최대 피해를 준 1918년 독감도 이전 3년간의 이상저온과 1차 세계대전이라는 악재 탓에 팬데믹이 됐다. 인체 면역력이 약해진 데다 쥐떼 등 매개체는 기승을 부리고, 처참한 참호전과 병사들의 귀환이 바이러스 전파를 가속시킨 것이다.

17세기 과학혁명 이후까지도 역병에 대한 이해는 미신(현재의 기준으로는)과 주술에 머물렀다. 원인을 몰랐으니 모조리 역병이었다. 1743년 영국에 등장한 인플루엔자(influenza, 이탈리아어) 용어는 천상계 행성들의 특정 배열이 지상에 저주스런 ‘영향’을 미친다는 믿음의 유산이다. 재난(disaster)의 어원도 ‘나쁜 별’(Bad Star)이다.

19세기 후반 역병에 대한 대응은 과학과 의술로 올라선다. 로베르토 코흐는 결핵균(1882년)과 콜레라균(1883년)을 발견했고, 열대지방 감염병 연구로 노벨 생리의학상(1905년)을 받았다. ‘바이러스(poison)’는 감염성 용액을 걸러낸 뒤 여과액에 ‘독소’가 남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최초 발견은 담배모자이크 바이러스(1892년)였다. 인체 바이러스로는 황열병 바이러스(1901년)가 최초였다. 1933년 전자현미경 출현으로 실물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알렉산더 플레밍의 페니실린 개발(1928년)은 박테리아 감염병 치료의 기념비적 사건이었다. 1945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 인터뷰에서 그는 페니실린을 과다사용하면 항생제 내성 박테리아가 출현할 것이라 예언했다. 1939년 술폰아미드계 항생물질 연구로 게르하르트 도마크는 노벨 생리의학상, 1952년 스트렙토마이신 개발로 셀먼 왁스먼은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는다. 이들 항생제와 이후의 항바이러스제 개발로 감염병은 퇴치되는 듯했으나,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의 변이로 미생물이 다시 인간을 앞질렀다.

지난 30년 동안 나타난 신종 감염병은 30여 종이다. 특히 인수공통 감염병이 걱정거리다. 기후변화로 야생동물 서식지가 파괴되는 데다 항생제 내성, 면역력 약화, 공중보건체계 미흡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1918년 독감에 대한 책(『The Great Influenza』 2004)을 쓴 존 배리는 21세기 초연결 세상에서 팬데믹은 불가피하다면서 1918년 재앙보다 더 심각할 것이라 경고한다.

또 오게 돼 있는 ‘팬데믹 X’에 대비하려면 연구개발 기반의 방역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2020년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NIAID)의 연구전략은 사스-코브-2 바이러스 특성 분석과 면역반응의 기초연구, 검사·진단 장비 개발, 치료제 효능 검사, 안전하고 효과적인 백신 개발의 순으로 기초와 응용을 아울렀고, 2020년 코로나 연구비만 12억5000만 달러였다.

우리도 움직였다. 2020년 질병관리본부는 질병관리청으로 확대됐다. 국립보건연구원 감염병연구센터는 질병관리청 산하 국립감염병연구소로 개편돼 신종바이러스연구센터를 운영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최근 IBS(기초과학연구원)에 한국바이러스기초연구소 간판을 걸었다. 기초·원천연구에 주력하되 그 성과를 백신·치료제 개발의 응용연구로 연계하는 협력 생태계 구축이 목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에는 한국화학연구원의 신종바이러스융합연구단,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감염병연구센터 등이 있다. IBS의 RNA연구단도 있다. 보건복지부 등 7개 부처 공동운영의 한시적 방역연계범부처감염병연구개발사업단도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축산검역본부, 야생동물질병관리원도 인수공통 감염병 때문에 협력이 중요하다. 분산형 기관 간의 협력과 민간부문과의 협력이 열쇠다.

과학기술혁신 시스템은 기초-응용-개발의 선형주기 모델에서 벗어나 연구계-산업계-정부가 한데 엮인 3중 나선 모델로 진화한 지 오래다. 백신 연구개발은 10년에서 1년으로 압축된 속도전에다 강자 독식의 경쟁 마당이 됐다. NIH의 내년 예산은 올해보다 21% 오른 520억 달러,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예산은 역대 최고인 950억 달러 수준이다.

우리는 예산 투입 대비 성과를 높이는 거버넌스 효율화가 절실하다. 정부 간섭을 최소화해서 연구계의 자율성을 극대화하고, 공공부문의 연구성과를 민간부문으로 최대한 이전토록 하고, 실적평가에서 기관간 협력에 의한 성과를 주요항목으로 설계하는 등 질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그런 통합조정 역량이 있다는 신뢰를 줄 때 소기의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김명자 서울국제포럼 회장·한국과총 명예회장·전 환경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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