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동의 축적의 시간] 한국 첨단기술 40년 쌓인 누리호, 모두가 격려할 때
‘우주로, 미래로 …’ 누리호 발사 D-10
우리에게도 그런 장면이 탄생할 기회가 왔다. 예정대로라면 오는 21일 오후, 한국 기술자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자체 제작한 누리호가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된다. 1.5톤 무게의 위성을 지구 저궤로도 쏘아 올릴 수 있는 로켓이 16분간 비행할 것이다. 발사 후 40~50분이 지나면 성공 여부가 판명 날 텐데, 성공한다면 액체로켓 기술로 1톤 이상의 실용급 위성을 궤도에 올릴 수 있는 일곱 번째 나라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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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3년 소규모 과학로켓 첫 발사
2013년 나로호, 러시아 도움 받아
우주산업 국가인프라 구축 의미
성공하면 세계 7번째 국가 선언
기계·전자·화학 등 극한기술 집적
실패해도 혁신적 경험·지식 남아
」
자체 발사체 기술을 갖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무엇보다 우주산업시대, 우리가 발사하게 될 많은 위성을 다른 나라에 위탁할 필요 없이 스스로 올려보낼 수 있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막 싹트고 있는 민간 우주산업을 기술적으로 뒷받침할 국가적 인프라도 갖추게 된다. 스페이스X의 핵심기술도 알고 보면 대부분 미 항공우주국(NASA)이 축적한 기술이 전수된 것들이다.
37만 개 부품 오차없이 작동해야
전략적 가치도 상당하다. 자체 발사체가 있으면, 군사목적이나 항법시스템용 위성 등 국가적 목적을 가진 위성들을 정보유출 없이 원하는 때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산업에 파급효과가 큰 극한기술의 노하우를 갖게 되는 효과도 있다. 하나의 로켓이 발사된다는 것은 극저온(-183도)과 초고온(3300도) 사이를 순식간에 오가는 환경에서 37만 개 부품이 수십 분의 일초 오차도 없이 조화롭게 작동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극한 환경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본 경험은 우리나라 과학과 산업기술 수준을 한층 끌어올리는 기폭제가 될 것이다. 우리 힘으로 우주의 변경에 다가간다는 국가적 자부심은 말할 것도 없다.
누리호가 현재 모습으로 발사장에 서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1993년 작은 크기의 과학1호 로켓을 쏜 이후 근 40년이 돼간다. 2013년 최초의 우주발사체 나로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했으나 핵심인 1단 추진체를 러시아에 의존하면서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확인했다. 나로호가 뜨기도 전인 2010년 이미 자체기술 확보를 목표로 누리호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무려 10년이 지나 마침내 그 결실을 확인하는 순간에 온 것이다.
발사체 기술은 안보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국가 간 기술이전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자체 기술개발에 나선다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기어 올라갈 각오를 한다는 뜻이다. 게다가 명시적인 과학지식뿐 아니라 직접 만들 때 필요한 암묵적인 엔지니어링 노하우도 수없이 많다. 이를테면 암중모색인데, 곳곳이 진창인 격이다. 다행히 나로호의 경험이 큰 자산이 됐다. 로켓 발사의 전 과정을 체험하면서 우리의 출발선이 어디인지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추진체·연료탱크 등 난제 수두룩
누리호 독자기술의 첫번 째 관문은 추진체다. 터보펌프·연소기 등 개발해야 할 핵심기술이 한가득인데, 게다가 만들어본 적이 없으니 시험설비조차 제대로 있을 리 없었다. 2007년 러시아 시험시설에서 실시한 첫 연소실험은 폭발음과 함께 실패로 끝났다. 까맣게 타버린 잔해를 바라보고 있던 연구원들의 심정도 숯검정 같았을 것이다. 그런 실패를 딛고 한발씩 나아갔다. 마침내 2016년, 75톤의 추력을 가진 엔진을 완성하고 이런 엔진 4개를 묶어 300톤급 누리호의 1단 추진체를 올 3월 완성했다.
연료를 담는 탱크를 만드는 일도 큰 장벽이다. 3.5m 직경에 높이가 10m가 넘는 거대한 규모이지만 두께는 겨우 2~3㎜ 정도로 얇아야 한다. 금속판을 만드는 것도, 둥근 덮개를 만드는 것도, 이것들을 용접해서 이어붙이는 것도 모두 교과서가 없는 난관의 연속이었다. 만들어보고, 테스트하고 다시 만들어보는 집요한 시행착오의 축적이 유일한 해법이었다. 그뿐이 아니다. 발사장 설치나 위성을 보호하는 페어링 제작까지 하는 일마다 갖가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해법을 만들었다. 이제 우리 고유의 경험으로 쌓아 올린 이 기술은 남들에게 쉽게 가르쳐줄 수 없는 한국의 핵심자산이 됐다.
누리호 발사는 우리 과학기술과 산업의 전반적인 수준을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적 사건이다. 기초과학뿐 아니라 기계·전자·화학·소재 등 각 분야 과학지식과 정밀용접 등 엔지니어링 경험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극한기술인 로켓 분야에서 볼트 하나도 제대로 만들 수 없다. 따지고 보면 자동차와 반도체, 해양플랜트와 전투기, 그리고 이제 발사체까지 자체적으로 설계하고 만들 수 있는 나라가 됐다. 모두 여러 산업 분야의 수준이 골고루 글로벌 수준에 이르렀을 때라야 독자적으로 완성할 수 있는 기술들이기 때문에, 이 수준에 이른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서너곳 뿐이다. 우리 산업도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연구원·엔지니어들의 노고 빛나
누리호 발사는 그 끈질김으로 또 다른 감동을 준다. 1993년 과학1호 로켓을 발사할 때부터 대전의 연구원과 우주센터의 발사장, 전국의 여러 기업에서 수천 명 사람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꾸준히 기술을 축적해왔다. 그동안 IMF 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가 쓰나미처럼 지나갔고, 장관이 수십 번 바뀌었으며, 여러 대통령이 현장을 방문했다. 그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우리 사회 어느 한 곳에서는 발사체 기술이라는 목표 하나를 염두에 두고 묵묵하고 끈질기게 시행착오를 버텨내는 연구자, 엔지니어 집단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누리호 발사로부터 자부심을 느끼는 만큼 꼭 다짐해야 할 일도 있다. 정책의 일관성은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기술혁신의 생태계를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일이 지원했다가 말았다가 하는 것이다. 우선 지금 누리호가 우리 눈앞에 있지만, 다음 단계 기술에 대한 도전을 병행해서 출발해야 한다.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꾸준히 사람을 키우고 유지하는 데 투자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귀한 시행착오의 경험은 매뉴얼이 아니라 결국 사람에게 축적되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실패에 대한 우리 사회의 태도다. 로켓 발사는 실패가 많은 대표적인 분야다. 1950년대부터 위성을 발사해 가장 많은 경험을 축적한 미국이지만 지금도 스페이스X·로켓랩 등의 발사 실패 소식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언론과 정부의 반응에서 비판은 볼 수 없다. 오히려 실패를 통해 중요한 학습을 한 것으로 보여 기업가치가 올라갔다는 보도가 있을 정도다. 일본의 첫 우주 발사체인 람다도 4번 실패하고 나서 5번째 가서야 겨우 성공했다. 20년 동안 발사 경험을 축적해왔던 중국의 창정3B 로켓도 작년에 추락하는 대형사고를 냈다. 각국의 언론 반응은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제 기술이 발전하여 실패율이 10% 미만이라고 하지만, 처음 개발한 로켓모델의 첫 발사 실패율은 30%에 육박한다. 게다가 누리호는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만든 로켓이니 그 실패 가능성은 절대 낮지 않다. 그러나 실패가 없이는 단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다. 실패로부터 무엇을 배우느냐가 더 중요하다. 실패가 없다면 충분히 혁신적인 시도가 아니라는 일론 머스크의 말도 있지 않은가.
숱한 시행착오 끝에 오는 환호성
스페이스X 직원들이 그렇게 환호했던 것은 그들이 버텨냈던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기 때문이다. 창립 이래 13년 동안의 수많은 실패, 특히나 바로 직전의 3번 시도 모두에서 재활용 로켓의 착륙 순간 대폭발했기에 간절함이 더해졌다.
누리호가 발사장에서 떠나는 순간도 그러할 것이다. 1000여 명의 연구자와 개발에 참여한 기업의 엔지니어들은 지난 10여년 간의 힘겨웠던 시행착오 시간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환호의 순간을 간절히 기다릴 것이다.
올해 도쿄 올림픽을 기억해보자. 4위를 하고도 활짝 웃으면서 “자신감을 얻었으니 다시 도전하겠다”는 우리 선수들이 인기 스타로 떠올랐다. 국민의 인식 수준이 몰라보게 높아졌다. 더는 메달이라는 결과가 아니라 과감한 도전 자체에 가치를 두게 됐다.
누리호는 모든 이의 바람대로 멋지게 날아오를 것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로 실패할 수도 있다. 성공했다면 격려를, 실패했다면 더 큰 격려를 보내주자. 특히 손에 땀을 쥐고 발사 장면을 바라볼 젊은 연구원들과 엔지니어들이 어떤 경우에라도 더 신나서 도전할 수 있도록 응원하자.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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