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진의 차이나는차이나] 14억 조이는 中, 바닥부터 디지털 '풀뿌리 감시망'

신경진 2021. 10. 11.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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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을 사방 100m 바둑판 만들어
'격자망 관리' 활용 코로나19 방역
시진핑 "기층 튼튼해야 나라 안전"
習 측근 "안보환경 갈수록 불안정"
"진시황 시절 '디지털 법가' 부활"
지난 8일 찾아간 베이징 둥청구 “격자망화 서비스 관리센터”가 위치한 첸량후퉁 골목에 폐쇄회로카메라(CCTV)가 행인을 감시하고 있다. 중국 도시와 농촌을 사방 100m의 바둑판 격자로 나눠 관리원을 임명해 감시 통제하는 ‘격자망 관리센터’는 2004년 이곳에서 시작됐다. 신경진 기자

지난달 12일 중국 동남부 샤먼(廈門)시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1명이 확인됐다. 이튿날부터 확진자 숫자는 32→12→8→31→8→39→16→36→11→17명으로 확산세가 멈추지 않았다. 그러자 22일 샤먼 퉁안(同安)구 코로나 지휘본부는 “전 지역에 방역 ‘왕거화(網格化ㆍ격자망) 관리’를 시행한다”며 “관할 지역을 725개 격자로 나눠 마을을 봉쇄하고 인원 이동을 금지한다”고 긴급 통지했다.

지난달 22일 중국 샤먼시 퉁안구가 코로나19 봉쇄 긴급통지와 함께 발표한 ‘격자망 관리’를 활용한 지역 봉쇄 지도. 관할 지역을 총 795개 격자로 나눠 5인 1조로 책임자를 지정해 검사를 진행하고 물자를 전달했다. [사진=하문일보]

‘격자망 관리’는 중국 전역을 바둑판처럼 사방 100m, 1만㎡의 격자(gridㆍ網格)로 촘촘하게 나눠 주민을 관리하는 사회 치리(治理ㆍ거버넌스) 시스템을 말한다. 말단 행정단위인 가도(街道·한국의 ‘동’에 해당)를 넘어 14억 개개인까지 행정력을 침투시키는 장치다. ‘왕거위안(網格員)’으로 불리는 격자 관리자는 시시콜콜한 상황을 구(區) 정부에 설치된 “격자망화 관리센터”로 보고한다. 정책을 집행하면서 풀뿌리 기층 사회를 감시하는 두 기능을 수행한다.


5인 한 팀이 관리·감시


지난달 22일 샤먼시 퉁안구는 통지 즉시 왕거위안 725명에게 봉쇄를 맡겼다. 이들과 현장 간부+경찰+의료진+실무자까지 5인 한 팀을 구성해 ‘노크 행동’에 들어갔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각 팀별로 가가호호 방문해 핵산 검사를 하고, 먹거리를 배달하는 한편 24시간 주민의 이동을 감시했다. 위반자는 관련법 위반으로 처벌했다. 2주간의 봉쇄는 지난 7일 해제됐다. 중국 특유의 무관용 ‘제로 코로나’ 방역을 가능케 만든 수단이 ‘격자망 관리’임을 보여줬다.

지난 2004년 베이징 둥청(東城)구에서 시작된 ‘격자망 관리’를 최근 홍콩 명보는 송(宋)나라 보갑제(保甲制)에 비유했다. 당시 황제는 징세와 백성 감시를 위해 10호(戶)를 하나의 보(保)로, 열 개의 보를 하나의 갑(甲)으로 편성했다. 보와 갑마다 보장ㆍ갑장을 임명했다. 하나의 격자에 거주하는 수십, 수백 가구마다 한 명의 관리원을 두는 방식이 보갑제와 닮아서다.

중국 청두시의 IT 솔루션 업체인 샤오부촹샹(小步創想)이 지난해 초 개발한 코로나19 방역 시스템. [샤오부촹상 캡처]

현대판 보갑제는 정보통신(IT)과 인공지능, 빅데이터 기술로 무장했다. 안면 인식 등을 활용한 전문 솔루션 개발 업체가 성업 중이다. 서부 청두(成都)의 IT업체 샤오부촹샹(小步創想)은 그중 하나다. 코로나19가 발생하자 ‘격자망 방역 관리 플랫폼’을 출시했다. 단지 내 전자 통행증, 발열 체크, 핵산 검사, 확진자 추적, 봉쇄 감시까지 위성항법장치(GPS) 정보와 결합시켜 방역을 돕는다.

방역은 물론 집단민원 해결, 시위 방지로 활용할 수 있는 저인망식 관리인 ‘기층 거버넌스’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주요 관심사다. 지난해 2월 23일 시 주석은 베이징 차오양(朝陽)구의 방역 실태를 점검한 뒤 회의를 열고 “주택 단지별 통제망을 촘촘하게 짜고, 엄격한 ‘격자망 관리’를 실행하라”고 직접 언급했다. 지난해 7월 23일에는 지린(吉林)성을 시찰하며 “주택 단지는 기층의 기초다. 기초가 튼튼해야 국가라는 큰 건물이 안전하다”며 그물망 통치를 강조했다.
중국 동부 장쑤성 쉬저우시 윈룽구의 스난주택단지의 격자망 관리 담당자. 정보 채집과 보호, 갈등 해소, 안전 위협 요소 조사 등을 담당 직무로 열거했다. [웨이보 캡처]


인공지능, 주민 통제에 활용


구체적인 정책도 나왔다. 올해 1월 정치국회의는 “중공 중앙·국무원의 기층 거버넌스 체계와 능력 현대화 건설 강화에 관한 의견(이하 의견)”을 심의했다. 회의는 “당의 집권 기초를 공고히 하고, 정권의 안전을 수호한다는 입장에서 기층 거버넌스의 중요성을 심각하게 인식하라”고 결정했다. 관영 신화통신은 총 27개 조목으로 이뤄진 의견을 7월 11일 발표했다. 의견에는 ‘스마트 거버넌스’가 6차례 언급됐다. 안면 인식, 인공지능,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해 평소와 다른 징후를 발 빠르게 발견해 해결하라는 지침이다. 또 공산당이 영도하는 기층 거버넌스를 2025년까지 건립하고, 2035년까지 현대화하라는 달성 시간표도 제시했다.

시진핑 측근이 관리 총책


그물망 관리는 시 주석의 오랜 측근이자 치안 총책인 천이신(陳一新ㆍ62) 중앙정법위 비서장이 지휘한다. 천 비서장은 지난달 광둥(廣東)성을 시찰하며 “최근 중국 안팎의 안보 환경이 갈수록 복잡·불안정·불확실해지고 있다”며 “거버넌스의 기초를 다지고, 평안(平安) 건설의 기반을 튼튼히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특히 “화상 감시와 통제의 커버율을 높이고 빅데이터를 활용해 리스크와 잠복한 위험 요인을 감시하고 예측하라”고 지시했다. 폐쇄회로카메라(CCTV) 감시망을 더욱 조밀하게 늘리라는 지침이다. 사실상 범죄를 예측하는 공상과학(SF)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구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셈이다. 천 비서장은 또 여덟 글자로 압축한 기층 관리 업그레이드 방안도 내놨다.

중국의 기층 통제 강화에 대해 하남석 서울 시립대 교수는 “코로나19 방역 성공으로 자신감을 갖게 된 중국 지도부가 풀뿌리 감시 능력을 강화해 집권 불안정 요인을 초기에 발견ㆍ해결하려는 시도”라며 “과거 진(秦)나라 통일의 기반이 됐던 법가(法家)의 현대적 부활로 서구 학계가 말하는 ‘디지털 레닌주의’보다 ‘디지털 법가’가 더 적절한 해석”이라고 말했다.

기층 관리 강화 8항 조치.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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