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2035] 서울 전세에 대기업 다니는 김 대리 이야기
이렇게 열심히 일만 해도 괜찮은 걸까. 서울 전세에 살며 대기업에 다니는 김 대리는 오늘도 불안하다. 고객을 만나러 갈 때마다 보이는 고층 아파트가 눈에 거슬린다. 아파트값이 신고가를 찍었다는 뉴스를 보며 순댓국을 들이킨다. “아 샀어야 했는데.” 정시에 출퇴근해서는 해낼 수 없는 일을 해내라는 지시가 떨어진다. 그걸 기어코 해내고 칭찬을 받는 김 대리는 자신이 밉다. “이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는데.” 상사의 인정은 한순간뿐이란 걸 안다. 오늘 증명해내도, 내일 증명해내지 못하면 소용없다.
김 대리는 자신이 굴러가는 쳇바퀴 속에 갇힌 쥐 정도라 생각한다. 막 30대에 접어든 그는 퇴근할 때마다 수명이 조금씩 깎여나갔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잠시 스치는 월급 통장. 김 대리는 스무살 때 세상을 바꿔보겠다며 읽었던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노동의 배신』 속 한 구절을 떠올린다. “임대료가 시장의 움직임에 극심할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반면 임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는 매일 열심히 사는데 매일 가난해진다.
소설가 송희구의 화제작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를 읽고 써 본 ‘서울 전세에 대기업 다니는 김 대리 이야기’다. 김 부장 정도면 남부러울 것 없는 인생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책을 펼쳤는데 큰 착각이었다. 꽤 괜찮은 대학을 나와 대기업에 다니는 김 대리의 인생이 창창할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인 것처럼 말이다.
왜 일을 해야 하는가. 그것도 이렇게 힘들게. 요즘 많은 김 대리들이 출퇴근 버스에서 묻고 또 묻는 말이다. 내 월급은 빼고 다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 인생이다. 리셋 버튼이 있었다면 딱 5년 전으로 돌아가 70% 대출을 당겨 집을 샀을 것이다.
지난해 한 신문은 노동보다 투자를 선호하는 2030 세대를 ‘자낳세’(자본주의가 낳은 세대)라 표현했다. 비트코인과 주식으로 돈을 벌 확률이 5%라 해도 ‘노오력’ 해야 하는 ‘노오동’ 보다 가성비가 낫다는 것이다. 4개월 동안 주식매매방을 관찰하며 쓴 논문을 바탕으로 『개미는 왜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투자하는가』란 책을 펴낸 김수현씨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의) 청년세대는 돈을 우선시하고 집착적으로 경제적 가치를 추구해야만 하는 구조에 놓여있다. 근로소득만으론 더 이상 결혼-출산-양육-노후로 이어지는 생애주기를 준비하기 충분치 않은 사회를 방증한다.”
주말마다 아내와 근처 카페로 나와 계산기를 두드리고 아파트 청약 전략을 짠다. “여기서 이렇게 아끼고, 저렇게 아끼면”이란 말을 이어가다 도달한 결론은 오답, 아니 노답이다. 그리고 다시 월요일이 돌아와 출근한다. 쳇바퀴가 굴러간다. 옆을 돌아볼 시간은 없다. 나는 또 달리고 있다.
박태인 JTBC 기동이슈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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