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으로 읽는 책] 강진아 『미러볼 아래서』
그리고 2년 전, 치니를 만났다. 아엽은 고해성사를 하듯 자신이 했던 모든 거짓말을 치니에게 들려주었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 깨달았다. 이거 별로구나. 그럴 필요 없구나. 새로운 누군가가 되어 보는 쾌락의 순간만 넘기면 되는구나. (…) 여의치 않을 때는 아예 말을 하지 않으면 되는구나. 이제껏 아엽에게 불가능했던 것이 가능해졌다. 그 후, 원래도 말수가 적던 아엽은 더욱 말이 없어졌다. 강진아 『미러볼 아래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크고 작은 거짓말을 해야 했던 아엽은, 고양이 치니를 만나며 비로소 거짓말이 필요 없는 새로운 관계를 알게 된다. 그렇다고 아엽이 거짓말쟁이거나 현실 부적응자는 아니다. 소설 뒷부분 작가는 치니를 떠나보내고 만난 새 고양이와의 교감을 이렇게 묘사했다. “까만 고양이가 뒷발로 서서 몸을 일으켰다가, 성한 왼발을 아엽의 팔에 댔다. 턱 왼쪽 앞발의 젤리가 아엽의 피부에 닿자 온몸의 신경이 섰다. 아엽이 놀라서 까만 고양이의 눈을 바라보자, 청록색 홍채 안의 길쭉한 동공이 천천히 아엽에게로 향했다. 아엽은 숨까지 참으며 까만 고양이의 동공을 바라봤다. 팔에 닿은 젤리는 촉촉하고 뜨뜻했다. 아엽은 자신의 육체가 젤리에 닿은 부위만 남고 모두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다.
이제는 반려동물이 진짜 식구, ‘반려자’가 되는 시대다. “이제 인류는 아이를 만드는 대신 거대한 생태계 안에서 비인간 동물을 포함한 친척(kin)을 만들며 관계망을 확장시켜 나가야 하는 상황”이라는 페미니스트 생물학자 도나 해러웨이의 말이 떠오른다.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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