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배 이상 투기 이득.. 그러나 떠돌이 신세가 된 집 [서울 근대건축 톺아보기]
역사에 '만약'이란 게 없겠지만, 1860년대 시작된 근대가 우리 힘으로 이뤄졌다면 어땠을까를 늘 생각합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 근대는 이식된 근대였습니다. 이식된 그 길을 서울에 남아있는 근대건축으로 찾아보려 합니다. <기자말>
[이영천 기자]
베네룩스(Benelux) 3국이라 배웠다. 벨기에·네덜란드·룩셈부르크를 부르는 통칭이다. 명칭은 1944년 9월 세 나라가 관세동맹을 맺으며 생겨난다. 이 동맹이 오늘날 유럽연합(EU)을 탄생시킨 기반이 되었다.
이들 모두는 한때 네덜란드에 속했었다. 가공 및 중계무역에 능한 나라들로 일찍이 교역을 통해 큰 부를 쌓는다. 한마디로 장사수완이 뛰어난 나라들이란 얘기다. 그중 벨기에 사람 레옹 벵카르트(Leon Vincart)가 1900년 한반도에 온다.
벨기에는 1830년 독립한다.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이 나라도 식민지와 신 시장개척에 혈안이다. 1878년 아프리카 콩고를 식민지 삼아, 헤아릴 수 없는 살상을 벌이기도 했다. 대한제국이 이들에겐 먹을 게 많은 신 시장으로 보였나 보다. 벵카르트라는 인물은 필시 수완이 능한 장사꾼이었을 개연성이 높다. 벨기에는 그에게 '전권대사' 자격을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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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벨기에 영사관 남현동으로 옮겨져 지금 미술관으로 사용 중인 옛 벨기에 영사관 입면. |
ⓒ 이영천 |
배편으로 인천에 당도한 그는, 곧장 한양에 입성한다. 그리곤 대한제국에게 통상을 요구한다. 후에 나라 팔아먹는데 앞장선 을사오적 중 하나인 박제순(朴齊純)과 협상을 벌여, 1901년 3월 '조백(朝白)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다. 내용은 오로지 상업 활동에 관한 규정들 일색이다. 벨기에는 공사관이나 대사관에는 관심이 없다. 오직 시장개척에 용이한 영사(대민업무) 업무면 족하다.
투자 가치가 높은 곳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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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1년 경 남산 사진 좌중앙에 경복궁과 광화문, 육조거리가 환하게 보임. 좌측 산자락 아래 하얀 건물이 명동성당. 창의문 부근에서 촬영된 남산 일대 풍경임. |
ⓒ 서울역사박물관(부분 편집) |
목멱산과 숭례문을 잇는 성벽 안쪽에서부터 종현성당과 진고개(泥峴)로 이어지는 드넓은 분지다. 먹고 살 만한 북촌 사람들은 잔치가 많아 떡 빚을 일이 잦다. 반대로 벼슬은 없으나 글줄이나 읽던 남산골 샌님들은 돈을 잘 벌지 못한다. 가난했으니 여인들이 바느질을 하거나 맑은 목멱산 물로 술을 빚어 생계를 이어가는 수밖엔 도리가 없다. 소위 남주북병(南酒北餠 : 청계천 남쪽은 술, 북쪽은 떡)의 유래다. 드넓은 남산기슭은 그런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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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2년 왜성대공원 일본인들이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 주둔지 근처에 조성한 공원. 남산 일원이 왜인들의 주된근거지가 되는 시발점이 되었음. |
ⓒ 서울역사아카이브 |
청일전쟁이 끝나자, 한양에 세거를 이루려는 일본인들 압력이 거세진다. 일본 거류민이 늘어나자 조선정부는 1897년 일본인들에게 왜장대 일원 땅 1만㎡를 조차(租借)해 준다. 그들은 그곳에 임진왜란 때 자국 군대가 주둔한 뜻을 기려 왜성대공원을 조성한다.
이런 움직임에 벵카르트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는 왜성대공원 서쪽 땅을 눈여겨보기 시작한다. 회현동 1가 부근에서 영사관 부지를 물색하던 벵카르트에게 희소식이 날아든다. 연산군에 반기를 든 정광필 이후 대대로 회현방에 세거를 형성하던 명문세가 동래 정씨 소유 토지가 싼 가격에 매물로 나온 것이다.
그는 '토지자본이득'을 셈한다. 건물규모에 상관없이 가급적 넓은 토지를 확보하려는 목적이다. 그래야 나중 매각차익을 톡톡히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투기전략'이다. 쇠락해 가는 정광필 후손들을 설득하자, 회현동 1가 14번지(지금의 우리은행 부지)가 1902년 벨기에 수중에 떨어진다.
회현동에 부지를 마련하여
벵카르트는 설계에 착수한다. 다시 주판알을 튀겨본다. 대한제국은 서양식 건물설계와 시공에 아무런 기술력도 경험도 부족하다. 한양에 들어와 있는 서양인 건축가들은 단가가 비싸다. 그렇다고 본국에 설계를 요청하기에도 시간과 비용측면에서 난망이다.
이제 막 신흥국으로 떠오르는 일본이 제격이다. 서구식 건축을 수업한 기술자들도 제법 포진해 있다. 벵가르트의 계산은 일본 기술진 선택으로 이어진다. 그리 큰 규모가 아니어서 설계는 일사천리다. 이듬해인 1903년 착공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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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벨기에 영사관 부분 고전주의 양식이 추구하는 장식 중 하나인 발코니. 이오니아식 기둥이 건물 좌측 1, 2층 발코니를 장식. |
ⓒ 이영천 |
옛(그리스·로마)것으로 돌아가자는 '고전주의' 양식이다. 이는 대칭형 평면에 이오니아식 장식의 채용, 모서리나 건물 측면에 발코니를 두는 특징에 정형화된 통일성을 강조함으로써 경직되어 보이기조차 한다. 이런 이유로 고전주의는 생명력이 길지 못했다.
주변은 온통 남산골을 장식하는 빈한한 초가집과 일본가옥 일색이다. 그곳에 정형의 상자 같은 빨간 벽돌 직육면체 건물이 양쪽에 각진 발코니를 달고 서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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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총독부(1911) 경복궁 전각을 헐어 1926년 총독부 신청사가 들어서기 전까지 식민지배 본산이던 총독부는 남산 자락에 있었음. 당초엔 조선통감부 청사였음. |
ⓒ 서울역사아카이브 |
구한말부터 왜장대 일원 남산골이 변모하기 시작한다. 갑신정변 이후 일본공사관이 이곳에 자리한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공사관 자리에 조선통감부 청사가 들어선다. 명실상부 조선을 강탈하려는 핵심지역으로 변모한 것이다. 1910년 강제병합 이후부터 1926년 경복궁에 신청사가 들어서기 전까지, 통감부를 조선총독부 청사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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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공로 경성우편국(현 중앙우체국)과 미츠코시(현 신세계)백화점이 있는 건물 사이로 옛 벨기에 영사관이 보임. 조선은행(현 한국은행) 앞 거리 풍경. |
ⓒ 서울역사아카이브 |
벨기에 영사관 주변은 일제 강점기에 들어 노른자위 땅으로 변모한다. 가히 벵카르트의 눈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다름 아니었다. 고종이 승하하고 3·1만세운동이 들불처럼 번지던 1919년. 벨기에는 영사관 건물과 부지를 일본 요코하마생명보험 회사에 팔아넘긴다. 10배 이상 차익을 남긴다. "겨우 10배야?"라고 요즘 투기꾼들이 코웃음 칠지 모르지만 막대한 차익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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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산골(1925년 이후) 남산신궁이 남산에 흉측한 상처를 낸 모습이 또렷함. |
ⓒ 서울역사박물관 |
이때에 이르러 일본인들 집단 거주지가 남산골 배후를 점령하고, 명동·충무로가 상권을 두고 종로와 맞설 때다. 이곳은 이후 식민도시 경성의 핵심 상권으로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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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0년대 회현동 일원 사진 좌측으로 총독부 및 경성부청 건물이, 사진 중앙에 조선은행, 우편국, 미츠코시 백화점 등이 보임. 네모난 선 안이 옛 벨기에 영사관으로 추정. |
ⓒ 서울역사아카이브 |
이후 집은 일본 해군성 무관부 관저로 사용되기에 이르나, 1930년대로 추정할 뿐 구체적인 자료는 없다. 군부대 입지로 집창촌이 들어서는 등 회현동이 슬럼화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해방 후엔 우리 해군 헌병대가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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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 분관 미술관으로 사용 중인 옛 벨기에 영사관. |
ⓒ 이영천 |
남현동에 자리한 집은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다. 은행이 이런 낡은 집에 관심을 둘 이유는 미약했다. 폐허가 되다시피 한 이 집을 2002년 서울시가 미술관으로 사용할 것을, 우리은행에 제안한다. 다행인지는 모르겠으되, 그래서 집은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 분관으로 재탄생한다.
당초 영사관이 보험회사 사옥이 되었고 군대 관사였다가 은행이 주인이 된다. 한강 건너 멀리까지 이사 와 결국 미술관이 되었다. 이곳에서 남태령을 넘으면 서울대공원이니 이 둘을 통틀어 '미술관 옆 동물원'이라 해야 하나?
집은 만들어진 의도와 무관하게 부침을 거듭했다. 집이 터 잡은 곳은 엄청난 투기이득을 창출해냈다. 하지만 집은 부랑자처럼 떠돌았고, 본디 태어난 운명으로 살지도 못했다. 누더기처럼 여기저기 생채기뿐이다. 이젠 그나마 문화 시설로 기품을 찾았으면 좋겠다. 동시대를 살아낸 1901년생 내 할머니의 생애도 이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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