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정] 손흥민 천금골의 가치, 이란 원정 압박감 확 낮췄다

서호정 기자 2021. 10. 10.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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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리스트] 서호정 기자 = 중동세에 둘려 쌓여 험난한 모래 사막을 걷게 될 거라던 최종예선 판도가 예상 밖의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란과 한국을 제외한 나머지 팀들 간의 맞대결에서 무승부가 속출하며 A조는 일찌감치 2강 체제가 형성되는 분위기다. 손흥민의 귀중한 결승골로 얻은 시리아전 승리의 가치가 승점 3점 이상이 됐다. 냉정한 시선으로 보면 오는 12일 이란전에서 패해도 월드컵 본선행에는 빨간불이 켜지지 않는다.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3라운드) 3차전을 마친 현재 A조는 이란(3전승, 승점 9점), 한국(2승 1무, 7점)이 양강 구도를 형성했다. 그 뒤를 쫓는 UAE, 레바논, 이라크 모두 2무 1패로 승점 2점에 그치고 있다. 후반 43분 터진 손흥민의 결승골에 패한 시리아는 1무 2패로 A조 최하위다. 


A조는 9경기 중 4경기가 무승부로 끝났다. 그 중 3경기가 무득점 무승부다. 승부가 갈린 5경기는 모두 이란과 한국의 승리였다. 뚜껑을 열고 보니 한국과 이란을 제외한 4개 팀이 전력이 엇비슷하고 공격력이 아쉬워 그들 간의 맞대결에서 무승부만 기록했다. 


딕 아드보카트 감독 체제의 이라크는 1차전이었던 한국전이 내용 면에서 가장 좋았다. 레바논과의 3차전도 비기며 3경기 모두 득점이 없었다. UAE는 볼 점유율은 상대팀과 동등하게 가져가지만 베테랑 공격수 알리 마브쿠트 외에는 해결을 할 선수가 없어 답답하다. 레바논은 수세적인 플레이로 이라크와 UAE의 발목을 잡았지만 역시 골이 없다. 오히려 이란과 한국을 상대로 접전 끝에 1골 차로 패한 시리아가 좋은 경기력에 비해 순위는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4년 전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 당시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3차전까지 마친 시점에서 이란과 한국은 나란히 7점(2승 1무), 우즈베키스탄 6점(2승 1패), 시리아는 1승 1무 1패(4점)로 1경기 상황에 따라 순위가 크게 요동칠 수 있는 빡빡한 분위기였다. 결국 한국이 이란 원정에서 패하는 결과로 4차전이 끝나면서 이란 10점, 우즈베키스탄 9점, 한국 7점으로 순위가 뒤집혔다. 그로 인해 매 경기 살얼음판 승부를 펼쳐야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4차전에서 한국이 이란에 패하고 나머지 4팀끼리 펼치는 맞대결이 결판나도 3위권과 2점에서 3점 차가 난다. 손흥민의 결승골로 거둔 시리아전 승리가 나머지 경기 결과와 맞물리며 한국에 2경기의 여유를 선사한 것이다. 천금골을 넘어 천만금골이라고 표현해도 과하지 않다. 


4차전에서 한국이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시나리오는 사상 최초로 원정에서 이란을 잡고 1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판세를 볼 때는 설령 패해도 이란의 독주 체제를 허용한 것 외에는 한국에 심각한 타격은 없다. 만일 이라크와 UAE, 시리아와 레바논의 경기가 모두 무승부로 끝난다면 이란에게 패해도 좋은 상황은 계속 이어진다. 한국이 이란전에서 승점을 못 쌓아도 3위권에 4점 차로 앞서기 때문이다.


아시아 최종예선은 A조와 B조 각 2위까지 본선 출전권이 주어진다. 한국에게는 아시아 최고 팀의 자존심과 조 1위가 걸린 이란전은 분명 중요하다. 그러나 실리로만 보면 11월 UAE(홈), 이라크(원정이지만 중립 경기 유력)와의 경기가 본선 진출의 가장 중요한 승부처가 됐다. 거기서 연승을 거둘 경우 잠재적 추격자들을 확실히 따돌릴 수 있다.


한국이 이란을 상대로 최근 늘 고전한 이유 중 하나는 '이번만큼은 이란 징크스를 깨야 한다'는 압박감을 크게 안아야 했던 상황 때문이었다. 지난 두 차례 월드컵 최종예선에서의 패배만 봐도 그렇다. 압도적인 경기력과 내용의 차이로 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심리적으로 쫓기는 한국의 다급함을 이란이 영악하게 공략, 초반 득점이나 결정적 실수를 역이용한 득점으로 이득을 봤다.


이란 원정을 무승부 같은 실리적인 전략으로 돌파해도 나쁘지 않다. 승점 3점차 이내의 가시권 안에서 이란을 추격하고 3위권과 격차를 점점 벌리는 전략이 월드컵 최종예선 통과라는 우선 목표 달성에 부합한다. 11월에 이라크, UAE를 모두 잡으면 내년 초 있는 레바논, 시리아전에서 본선행을 조기에 확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내년 3월 열리는 이란과의 홈 경기에서 자존심이라는 명분과 선두라는 실리, 두마리 토끼 사냥에 나설 때의 부담감은 더 준다.


설령 이란전에 패한다고 해도 A조 상황을 냉정하게 봐야 한다. 시리아전 내용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지점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승리로 얻은 여유가 훨씬 크다는 사실이다. 벤투 감독이 이란전보다 실질적 가치가 큰 11월의 중요한 2경기를 잘 잡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 


시리아전은 지난 9월 2경기에 비해 내용 면에서도 확실히 개선됐다. 2선에 공격적인 미드필더 2명을 배치했을 때 소유권을 지배할 뿐 박스 안에서는 답답했던 문제가 있었는데, 손흥민의 중앙 이동을 통한 투스트라이커 형성으로 상당 부분 해소됐다. 손흥민을 중앙에 세우면서 페널티박스 안에 공격 숫자를 확보했기 때문에 찬스를 잡는 빈도를 훨씬 많이 가져갔다. 결정력의 문제는 아쉬웠지만, 황인범을 이용한 빠른 공격 전환 과정과 황희찬과 송민규의 하프스페이스 침투가 더해지면서 큰 기회가 여러 번 쏟아졌다.


B조에서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는 일본의 상황과도 비교된다.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의 일본은 홈에서 오만에 패하는 충격을 극복하지 못하고 사우디아라비아 원정에서 패했다. 호주와의 4차전에서도 승리하지 못하면 플레이오프(4라운드) 진출도 장담할 수 없다. 모리야스 감독 경질론이 거센 이유다. 반면 벤투 감독은 9월의 아쉬운 내용과 유럽파의 컨디션 문제를 결국 시리아전에서 극복했고, 개선된 내용을 결과로 증명했다.


사진=풋볼리스트, 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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