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주의 밥상+머리] 게임의 법칙

2021. 10. 9.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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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나는 어쩐 일인지 오징어놀이는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우리 동네에서 그냥 '뽑기'라고 부르던 그것은 어린 시절 나에게 상대 없는 승부욕을 발동하게 한 놀이였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덕분에 칼칼한 오징어 요리가 먹고 싶어졌다.

수십년 전 추억의 놀이를 사생결단 죽음의 게임으로 변환시킨 드라마는 말 그대로 드라마틱한데 이상하게도 현실과 큰 차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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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나는 어쩐 일인지 오징어놀이는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대신 ‘땅따먹기’나 ‘다방구’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는 틈틈이 했다. 인터넷도 없고 전자 게임도 없고 넷플릭스도 없던 시절, 간단한 규칙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저 몸만 있으면 되는 놀이. 기껏해야 땅에 선을 긋고 돌멩이를 주워와 던지며 놀던 쉽고 단출하고 가난한 놀이였다. 이상의 수필 ‘권태’만큼 권태로운 시절은 아니었지만, 시간은 많고 색다른 풍경과 완구는 없었다.

그러다 십원, 이십원 돈이 생기면 했던 놀이가 ‘뽑기’였다. ‘달고나’가 국자에 각설탕 같은 흰 덩어리를 녹여 소다를 섞어 가열해 노랗게 부풀어 오르는 캐러멜을 찍어 먹는 것이었다면, ‘뽑기’는 달랐다. 우리 동네에서 그냥 ‘뽑기’라고 부르던 그것은 어린 시절 나에게 상대 없는 승부욕을 발동하게 한 놀이였다. 단순히 노는 것이 아니라 당락이 있는 게임이었고, 자신과의 싸움이었으며, 운을 판단하는 시험이었다. 문방구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별이나 나무, 십자 형태를 깨뜨리지 않고 떼어내느라 코 묻은 돈을 쏟아부었다. ‘뽑기’는 내가 처음으로 빠졌던 중독이기도 했다.

며칠 전 동해안 여행을 다녀오며 사 온 반건조 오징어로 오징어 볶음을 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덕분에 칼칼한 오징어 요리가 먹고 싶어졌다. 고추장과 고춧가루를 쓰는 대신 중국식 양념을 썼다. 팬에 기름을 두르고 매콤한 베트남 고추나 페페론치노 등 마른 고추와 다진 마늘, 다진 파를 듬뿍 넣어 볶다가 간장과 굴 소스, 두반장을 넣는다. XO 소스를 약간 추가하면 매운맛과 향이 더 좋아진다. 그리고 적당한 크기로 썬 오징어를 넣고 센 불에 함께 볶는다. 여기에 작게 썬 양파와 파프리카를 넣고, 빵가루를 조금 넣어 물기를 잡아준다. 마지막으로 후추와 참기름을 두르고 입맛에 따라 큐민이나 다진 고수를 뿌려주면 끝이다.

수십년 전 추억의 놀이를 사생결단 죽음의 게임으로 변환시킨 드라마는 말 그대로 드라마틱한데 이상하게도 현실과 큰 차이가 없다. 한국과 세계 각국의 사정도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인지, 끔찍하고도 흥미진진한 이 드라마는 전 세계 시청자들을 몰입시켰다. 오징어 볶음을 먹는데, 2021년의 드라마 ‘오징어 게임’과 20세기의 수필 ‘권태’의 문장이 함께 떠올랐다. ‘개들은 너무나 오랫동안 짖는 버릇을 포기한 채 지내왔다. 몇 대를 두고 짖지 않은 이곳 견족(犬族)들은 드디어 짖는다는 본능을 상실하고 만 것이리라. 이제는 돌이나 나무토막으로 얻어맞아서 견딜 수 없을 만큼 아파야 겨우 짖는다.’

지금 우리는 짖을 줄 모르는 권태의 개가 아니다. 벼랑에 몰린 자들에게 자발성과 공평이라는 말로 강제한 게임이 진짜 자발적이고 공평할 것일 리가 없다. 가면을 쓴 자들의 가면은 벗겨져야 하고, 그들을 포함해서 게임은 처음부터 다시 설계돼야 한다. 그들의 놀이가 우리끼리 싸우고 죽이는 잔혹 게임이 되게 두어서는 안 된다. 그게 최소한의 공평한 룰이다.

최현주 카피라이터·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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