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50년.. 계속 바느질 하며 살고 싶어요"
1일부터 10일까지 서울 성수동 오매갤러리에서 열리는 <자수살롱>展은 조금 특별한 전시다. 2019년 <자수신세계>展으로 <자수공간> <자수잔치> 그리고 외전격인 <안녕! 바다 씨!>까지 네 번에 걸쳐 꾸준히 변화하고 성장해 현재 2021년 <자수살롱>展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살롱에 참여한 열 명의 작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기자말>
[원동업 기자]
사람에서 사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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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수살롱 전시장에서의 오정민 바느질작가 뒤에 보이는 작품은 용환천 작가와의 콜라보다. 용환천의 회화 작업을 바느질 작업을 통해 다시 지었다. |
| ⓒ 원동업 |
오정민 작가가 삼성에 입사한 것은 갓 스무살 때였다. 일년 후, 회장 비서실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다. 정민이 접하는 이들 중 제일 말단이 과장. 일반의 사회라면 뵙지도 못할 분들을 많이 뵈었다. 그들에게 사람 공부를 했다. 남편과 열애를 하게 된 곳도 그곳. 그의 족집게 과외를 통해 늦은 공부도 했다. 의류학. 퇴직 후, '인생2막'을 위하여.
"결혼하면 비서를 그만 두는 게 '전통'이었어요. 저는 큰 아이 출산 후 생명으로 발령났죠. 보험지급 담당 계장. 각 지점에서 보험금 지급이 거부되면 싸움을 하려고 오시는 분들이죠. 지급여부는 제가 할 수 없는 일이니까 제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들어드리고' '공감하는 일' 밖엔 없었죠. 그분들을 뵈며 상황이 사람을 만든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인생을 배웠던 시간이었죠. 둘째 만삭이 되기까지 거기서 일했어요. 십수년여의 회사 생활도 끝났죠."
첫째가 학교 입학하면서 아이의 사생활이 시작되고 있었다. 엄마로서의 몰입이 시작됐고, 아이는 빤히 엄마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 엄마가 나한테 왜 이러시나? 갑자기!' 바로 현타가 왔다. 아이만 바라보고 살 수는 없다는 게 금세 분명해졌다. 그럼 무엇을 해야 하나? 그때 수년 전 고마운 분께 정성이 깃든 조각보를 선물했던 일이 떠올랐고, 바로 조각보를 배울 수 있는 곳을 검색하여 등록했다.
"인사동서 바느질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 처음, 저만의 시간이 생겼어요. 그간 늘 상대에게 맞추어 왔다는 걸 알게 됐죠.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아무것도 몰랐어요. 애들 재우면 아홉 시. 새벽 두 시까지 매일매일 바느질 했는데, 그 시간이 저에겐 천국이었어요. 바느질을 하며 나 자신에 대해 하나하나 알아가는 시간이었구요.
그 무렵 SNS에 제가 만들어 올린 작품을 보고, 옛 동료들이 배우고 싶다고 요청이 왔고, '삼성규방동호회'가 결성되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점심시간 동안이었는데, 그 시간이 너무 힐링된다고 하셨어요. 저에게도 큰 공부였습니다. 그로부터 7년간 동호회 수업이 진행됐어요. 그 후 손바느질이 아닌 미싱을 다루는 소잉디자이너 자격증에도 도전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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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른하늘마눌 작업공방에서 오정민 작가 많은 바느질 자수 작가들은 작업실 겸 공방을 갖는다. 공방은 또다른 공동체 문화를 만드는 곳이다. |
| ⓒ 원동업 |
'과정' 안에서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해리포터가 들어간 호그와트 학교 같은 곳이었다. 마녀들의 연합, 마술사들의 동네, 혹은 양산박!? 자수과 미싱을 가볍게 섭렵해주고, 함께 일본여행도 갔다. 바느질을 주제로 하는 그네들만의 세계였다. 바깥에선 아이들이 쑥쑥 크고 있는데, 이곳에선 시간이 더디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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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정 마당이 있는 오정민 작가의 작업실 합정동과 망원동 사이에 있다. 작업 공간의 지리적 위치와 풍경은 그곳 공동체의 성격을 보여준다 |
| ⓒ 원동업 |
푸른하늘마눌바느질공방. 정민이 자신의 작업실(겸 교육장)을 열게 된 건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바느질은 정민이 가르치지만, 그 외의 모든 것들은 그들에게서 배운다. 어느새 의젓하게 자란 아이들은 엄마가 말하는 만큼의 세상사 이치를 다시 정민에게 돌려준다. 그 아이들에게서 '걱정 없이 밝게 사는 삶' '힘든 중에도 아무것 아닌 것처럼 사는 삶' '나쁜 게 꼭 나쁜 일이 아니고, 좋은 일이 꼭 좋은 일이 아니라는 진리'를 배운다.
"자수공방을 운영하시는 지인이 제게 일주일에 하루 정도 수업을 맡아 해보라고 말씀 하셨죠. 경험 삼아 수업 공지를 했는데 먼 곳에서도 오시는 거예요. 그러다 지난해 7월경 사정이 생겨 저는 이 공간으로 왔죠. 요가 선생님이 사시던 이 집은 들어올 때부터 좋은 기운이 느껴졌어요. 2층인데 중정 마당이 있고 하늘이 훤히 보여요, 옥상에 빨랫줄도 있어요. 이웃들도 오랜 동안 사신 정다운 분들이고요. 비 오면 빨랫감도 걷어주시고, 부침개도 부쳐 주시고."
정민이 지금 작업실로 쓰고 있는 이곳은 합정동 영진시장 상가. 합정역과 망원역 사이 한적한 주택가의 이면도로에 아주 오래된 동네 주차장 옆에 있다. 한강 아랫 마을인 이곳 근처엔 카페가 많은 동네 상수동도 있고, 시장이 가까운 동네 연남동도 있는데, 이곳은 그 모든 걸 합쳐놓은 동네 같다. "필요한 게 생겼는데, 그런 가게가 없으려나?" 하고 나서면 "모든 게 걸어갈 만한 거리에 다 있는" 동네였다. 카페며 작은 식당이며 꽃가게며 철물점이며. 이웃들이 고스란히 가게의 주인들인 곳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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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환천 작가와의 콜라보 작업 오정민_겹(Layer) 1, 2, 3, 각 옥사,노방,항라,모시_170x105cm_2021.회화 작품은 바느질작가와의 협업을 통해 보자기 패치워크 작업이 됐다. |
| ⓒ 오정민 |
"공방을 오픈한 게 2020년 7월이었어요. 1년이 되던 올해 7월 처음으로 월세를 못 냈어요. 그간 '이렇게 쉬워도 되나?' 할 만큼 순탄한 시간들이었는데, 급 반성을 했어요. 교만하지 말자. 그리고 의미있는 일 한 가지는 하자. 합정에 홀트아동복지회가 있어요. 인연이 닿아서 입양 가는 아이들 겉싸개를 만드는 봉사를 하게 됐죠. 아이가 한국적인 문양의 겉싸개에 안겨 입양된 후 모국에 대해 생각할 때 아름다운 싸게과 함께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반복된 추상적 구획 컬러풀한 겹침의 색미학을 보여주는 용환천 작가와의 콜라보. 매일매일의 뒷산 산행서 보는 달과 별과 하늘을 옮긴 보자기. 자연속에서 선물처럼 주어지는 다양한 영감들. 그것이 정민을 자꾸 작업대로 부른다.
"제 꿈은 '앞으로 50년 좋은 분들과 바느질하자' 입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심신이 건강해야 합니다. 제게 맞는 루틴을 만들고 그걸 지켜야죠. 혼자 또 같이 바느질과 함께 즐겁게, 또 의미있는 일을 하면서..."
[관련기사 : 천 위에 펼쳐진 무한한 세계... 이런 자수 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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