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민주주의의 죽음?

2021. 10. 7.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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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륭 한림대 명예교수·전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


요즘 여야의 각 정당에서는 20대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는 경선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여러 학자는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라고 하는데, 경선 과정을 지켜보고 있으면 많은 국민의 참여와 박수 속에 민주주의가 활짝 꽃피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민주주의가 빠르게 죽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더 많이 든다.

각 당 후보들은 자신이 그동안 준비한 정책 공약을 열심히 설명하고 상이한 정책 대안을 중심으로 활발한 토론을 벌이기보다 상대의 흠을 잡는 데 더 치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내 경선 토론에서는 준비된 정책 공약을 연설을 통해 제시하고는 있으나 토론 과정에서는 타 후보의 가정사나 앉는 자세, 말실수나 손글씨 등 사소한 약점을 잡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

언론도 이런 상황을 부추기는 데 일조하고 있다. 우선 많은 언론이 한국 사회의 핵심 문제가 무엇인지, 어느 후보가 그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지 제대로 따지지 않는다. 그 대신 언론은 후보들을 둘러싼 여러 의혹을 찾아내 그것을 집중적으로 부각하고 논쟁을 유발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 같다. 이러니 국민은 현 시기에 한국이 직면하고 있는 중요한 문제와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효과적인 정책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후보들의 말투 같은 사소한 사안을 중심으로 각자의 감정을 고조시키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 경선 과정에서 민주시민이 물어야 할 ‘사소하지 않은 질문’은 무엇인가. 세 가지를 제시할 수 있다. 첫째, 국민이 낸 세금과 국가 자산에 손을 대 부정부패를 범할 후보가 누구인가. 둘째, 추진해서는 안 될 정책을 추진해 중장기적으로 국가에 커다란 손실을 초래할 후보는 누구인가. 셋째, 충분한 연구와 검증을 거친 좋은 정책을 개발해 성장, 고용, 소득, 삶의 질 향상, 기후변화 대응 등에 큰 성과를 가져올 후보는 누구인가.

이런 관점에서 당내 경선 과정과 언론의 보도를 지켜보고 있으면 34년의 긴 민주화 역사를 가진 한국 민주주의의 수준 또는 질이 상당히 우려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정치 리더들과 언론, 나아가 국민이 이와 같은 핵심적인 질문에 눈감은 결과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서는 농업의 비중이 축소되는 상황 속에서도 대규모 간척사업을 추진해 제 용도를 찾지 못하는 땅이 곳곳에 널려 있는 사례, 과도한 개방 정책을 추진해 외환위기를 자초한 사례, 녹색성장을 주장하면서도 녹색의 정신에 배치되는 4대강 개발사업을 추진해 엄청난 예산을 낭비하고 수질을 악화시킨 사례가 부지기수다.

지금이라도 한국 민주주의의 쇠퇴를 막기 위해서는 각 당 대선 후보들에게 세 가지 질문을 정확하게 던질 수 있도록 국민과 언론이 더욱 분발해야 한다. 장차 누가 사사롭게 국고에 손댈 사람인가, 누가 엉성한 정책으로 큰 국가적 손실을 초래할 사람인가, 누가 제대로 설계된 정책으로 국민의 생활상 고통을 해소하고 미래를 준비할 사람인가를 정확하게 분별해야 한다.

이런 노력을 게을리할 경우 포퓰리즘이나 권위주의의 발흥에 따라 한국에도 민주주의의 죽음이 도래할 가능성이 크다. 공산권이 붕괴해 세계적 수준의 체제 경쟁이 사라지고 미국의 단일 헤게모니가 확립된 1990년대 초부터 최근까지 세계 곳곳에서는 오래된 민주주의 국가나 신생 민주주의 국가 할 것 없이 국수주의와 반세계화, 반이민과 반민주를 추구하는 포퓰리즘과 권위주의가 우후죽순처럼 등장했다. 미국의 트럼프 정부, 이탈리아의 오성운동 정부,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정부, 일본의 아베 정부를 비롯해 브라질의 보우소나루 정부, 필리핀의 두테르테 정부, 터키의 에르도안 정부, 러시아의 푸틴 정부는 모두 민주주의의 외피를 둘러쓰고 나타난 포퓰리즘 또는 권위주의 정부다.

한국 민주주의가 이런 나라들처럼 퇴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우리 정치인과 정당들이 정책 학습을 게을리한 채 쉽게 대중의 요구와 국수주의에 영합해 집권하려고 하면 할수록, 또 언론과 국민이 그런 시도에 쉽게 동조하면 할수록 민주주의는 빠른 속도로 사망에 이를지도 모른다. 최근 20대 대선을 앞두고 진행되고 있는 각 정당의 당내 경선과 언론의 보도 태도가 한국 민주주의의 장래에 던지는 경고에 눈감으면 우리 모두의 희망이 사라진다.

성경륭 한림대 명예교수·전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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