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호의 퍼스펙티브] 허 찌른 극초음속 무기, 방심하면 방공망 뚫린다
극초음속 무기 성공 시 MD 뚫려
저공 비행으로 레이더 탐지 불가
17조 쏟는 킬체인, KAMD 힘 못써
북한의 '게임 체인저' 미사일, 왜 위험한가
남북 회담 때 남측에서 비핵화를 요구하면 북측 대표가 노상 하는 말이 있다고 한다. "핵무기와 미사일 모두 미국을 겨냥한 건데 뭘 걱정하느냐"고. 진보 성향의 인사 중 상당수는 이런 주장에 동조하는 듯하다. 북한의 핵 개발은 혹시 모를 미국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만든 자위용이라는 것이다. 이들이 내세우는 논리적 근거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이다. 김정은 정권이 미국 아닌 남측을 목표로 했다면 왜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으며 ICBM을 발사하겠느냐고 이들은 반문한다. 사거리 1000km 이하의 단거리 탄도 미사일(SRBM) 정도면 충분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런 주장이 쑥 들어가게 됐다. 북한이 ICBM 외에 첨단 중·단거리 미사일의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한은 올 들어 중·단거리 위주로 7번이나 신형 미사일 발사 시험을 실시했다. 특히 9월 들어서는 4번이나 집중적으로 감행한 데다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까지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북한 측은 주장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미국 등 국제사회는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에 성공할 경우 안보 지형을 흔들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고 믿는 까닭이다. 올 들어 새로운 양상을 띠고 있는 북한의 첨단무기 개발의 실태와 함께 한반도 안보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짚어본다.
김정은 언급한 첨단무기 현실로
지난 1월 초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평소와는 다른 내용을 발표한다. 올 한해 개발을 끝내겠다는 첨단무기를 구체적으로 밝힌 것이다. 그는 “핵기술을 더욱 고도화하는 한편 핵무기의 소형 경량화, 전술 무기화를 보다 발전시켜야 한다”면서 개발 중인 기술과 무기들을 밝혔다.
그가 언급한 것들은 ▲ 다탄두 유도기술 ▲ 정찰위성 운용 기술 ▲ 극초음속 무기 ▲ 수중 및 지상 발사 고체엔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 핵잠수함 ▲ 수중발사 핵전략 무기 등 6가지. 북한은 이 중 2~3개 분야와 관련된 시험을 실시했다. 지난 3월 말에는 2기의 신형 탄도미사일 발사 시험을 했는데 이때 북한 측은 "핵심 기술을 개량한 고체 연료 엔진이 탑재됐으며 2.5t에 달하는 탄두가 실린 채 600km를 비행했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액체 대신 고체 연료를 사용하는 무수단(화성 10호) 미사일을 처음 쏴 올린 것은 2016년. 그 이후에도 북한은 다른 미사일에서도 고체연료를 사용할 수 있도록 개량을 거듭해왔다. 올 3월에 실시한 단거리 미사일 시험도 고체연료 기술을 고도화하기 위한 노력으로 분석되고 있다.
북한이 지난달 15일 실시했다고 밝힌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은 고체연료 고도화와는 차원이 다른 파문을 낳고 있다. 제대로 된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에 성공한다면 미국의 방어체계인 MD를 무력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극초음속 미사일이란 음속의 5배 이상인 빠른 속도로 날아가면서도 탄도미사일과는 달리 원하는 방향으로 비행할 수 있는 무기다. 종류는 두 가지로 '극초음속 비행체(HGV)'와 '극초음속 순항미사일(HCM)' 로 나뉜다. 극초음속 비행체는 탄도미사일처럼 로켓에 실려 대기권 밖으로 비행하는 것은 같다. 하지만 일반 미사일은 대기권 진입 후 탄두가 분리돼 중력의 힘으로 표적을 향해 날아가는 반면, 극초음속 비행체는 자유 기동이 가능한 별도의 장치에 탄두가 실려 목표물로 비행한다. 극초음속 비행체는 발사체의 성능에 따라 최고 마하 20까지의 속도를 낼 수 있다.
극초음속 순항미사일은 공기흡입식 스크램제트엔진을 장착해 초음속으로 날아간다. 기존의 순항미사일처럼 낮은 고도로 비행할 수 있어 적의 레이더망에 거의 잡히지 않는다. 다른 점이라면 음속보다 느리게 비행하는 기존의 순항미사일과는 비교할 수 없게 빠르게 난다는 거다. 1970년대 개발된 미국의 대표적 순항미사일 토마호크의 속도는 시속 880km (마하 0.72). 웬만한 전투기보다도 느려 쉽게 요격당할 수 있다. 이에 비해 극초음속 순항미사일은 이론적으로 최고 마하 15까지 낼 수 있다. 하지만 현재는 기술상 문제로 마하 10이 한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 MD 계획으로 촉발
극초음속 무기가 각광을 받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미국의 '미사일방어(MD)' 계획이었다. 1980년대부터 극초음속 무기에 관심을 두었던 러시아는 2001년 당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탄도탄 요격미사일 규제조약(Anti-Ballistic Missile Treaty:ABM협정)에서 탈퇴하겠다고 선언하자 본격 개발에 나선다. 미국의 기술적 우월성을 확신했던 부시 정권은 미사일 요격시스템을 갖추면 러시아에 대해 군사적으로도 압도적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러시아도 앉아서 당하고 있진 않았다. MD라는 강력한 첨단 방패를 뚫을 수 있는 최신형 창인 극초음속 무기를 만들기 시작한 셈이다. 러시아는 결국 최신형 ICBM인 사르맛(Sarmat)에서 발사되는 초음속 비행체 '아방가르드(Avangard)'와 극초음속 순항미사일 지르콘을 개발하는 데 성공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2019년 12월 공식적으로 아방가르드 배치를 밝히기도 했다.
미국의 가장 강력한 경쟁국으로 부상한 중국도 러시아와 똑같은 상황이었다. 미국의 MD를 무력화시킬 첨단 무기가 없는 한 일방적으로 공격받을 궁지에 몰리게 된 것이었다. 이때문에 중국 역시 본격적인 개발에 나서 2014년 이래 최소 9차례에 걸친 DF-ZF 극초음속 비행체 시험을 실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미국은 2000년대 초부터 일찌감치 극초음속 무기 개발을 추진했으나 자금 지원이 충분치 않아 지지부진했었다. 그러다 최근 중·러가 극초음속 무기 개발에 성공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요즘 들어 또다시 본격적인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특히 중국이 본토 수호를 위해 구사 중인 '반접근/지역거부(A2/AD) 전략'을 극초음속 무기로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사일 방어체계 무력화 위험
이 두 가지 극초음속 미사일이 게임 체인저로 불리는 것은 무엇보다 미국과 한국이 구축해온 미사일 방어체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1980년대 레이건 정권 때 세운 '전략방위구상(SDI)'을 시작으로 날아오는 적의 미사일을 중간에 요격시켜 미 본토를 방위한다는 MD 계획을 추진해왔다. MD의 궁극적 목표는 ICBM뿐 아니라 크루즈, 공대지 미사일까지 막는다는 것. 따라서 MD는 패트리엇 미사일,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 공중레이저시스템(ABL) 등 여러 요격용 무기를 활용해 구축하는 다층 방어시스템이다. 이를 구축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이 투여됨은 물론이다. 하지만 극초음속 미사일은 이런 값비싼 첨단 장비를 뚫고 목표물을 정확히 타격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 탄도 미사일은 높은 고도까지 올라갔다 예상할 수 있는 궤도를 따라 떨어지게 돼 있다. 반면 극초음속 무기들은 불규칙하게 비행해 요격하기 어렵거나 아주 낮은 높이로 날아 타격 직전까지 탐지가 불가능하다. 이때문에 극초음속 무기들은 미국이 구상해온 미사일 방어계획을 토대부터 흔드는 가공할 비장의 카드인 셈이다.
가공할 북한의 극초음속 무기
북한이 극초음속 미사일이라고 밝히며 지난달 28일 쏘아 올린 화성 8형의 추정 비행속도는 마하 3 안팎. 기존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의 4배 이상 빠른 속도이지만 합동참모본부 측은 "현 한·미 연합 자산으로 충분히 탐지와 요격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번이 첫 발사시험으로 앞으로 속도 및 정확성 면에서 계속 개선될 거라는 점이다. 북한의 초음속 무기가 마하 5 이상으로 비행할 경우에도 떨어뜨릴 수 있을지는 의문인 것이다. 기존 기술로 요격이 불가능해질 경우 17조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으며 개발 중인 '킬 체인(Kill Chain)'과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가 무용지물로 전락하게 된다.
국내에서 북한이 극초음속 무기를 개발할 거로 예상한 전문가는 거의 없었던 듯하다. 올 초까지 극초음속 무기와 관련된 연구 자료들이 적잖게 나왔다. 그러나 거의 모두가 미·중·러 그리고 호주·인도·프랑스·독일 등의 개발 상황만 조사했을 뿐 북한은 전혀 다루지 않았다. 때로는 예상을 앞지르는 북한이기에 김정은 정권의 극초음속 무기 개선 역시 예의 주시해야 한다.
남정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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