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의 Mr.밀리터리] 북 핵무장 시간 벌어준 문재인 정부, 실책 반복 안해야
적대시정책 철회→한미연합 해체
이중기준 해소→북미사일 정당화
북, ICBM 등으로 미군 배제 노려
전술핵으로 우리 군 방어선 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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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매달리는 선결조건에 숨은 계략
최근 북한이 4종류의 새로운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한국과 미국에 ‘적대시 정책과 이중기준 철회’를 요구했다. 북한의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와 관련한 지난 3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에 대해 북한은 “명백한 이중기준”이라며 비난했다. 한국은 미사일을 발사해도 되는데 북한은 왜 문제냐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종전선언 촉구에 북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굉장히 의미 있다”면서도 “적대시 정책과 이중기준 철회가 선결조건”이라고 했다. 북한은 한ㆍ미 연합훈련에 반발해 단절했던 남북통신선을 지난 4일 복원했다. 그때도 북한은 중대 과제(대북 적대정책과 이중기준 철회) 해결을 요구했다. 북한이 갑자기 대북 적대정책과 이중기준 철회에 왜 매달리는 건가.
적대시정책 철회→한미연합 해체
이중기준 해소→북미사일 정당화
북, ICBM 등으로 미군 배제 노려
전술핵으로 우리 군 방어선 와해
어찌 보면 북한 주장이 일리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속엔 암호와 같은 계략이 숨어있다. 북한의 최근 주장은 올 1월 초 북한 8차 노동당대회에서부터 제기됐다. 당시 북한은 미국엔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를, 한국엔 조건부 관계 개선을 내놨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9월 29일 다시 강조했다. 그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종전선언과 남북관계 회복이 남한 당국에 달렸다”면서 “선결조건(적대시 정책과 이중기준 철회)을 해결하지 않으면 핵무장력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협박했다.
북, 핵 완성단계에 장애물 사전 제거
북한이 이렇게 나오는 이유는 핵ㆍ미사일 전략이 완성단계에 왔기 때문이다. 한반도와 일본, 주한 및 주일 미군기지, 오키나와 및 괌과 하와이, 나아가 미 본토까지 타격할 수 있는 핵무기 개발을 거의 완료하고 있다. 핵전략의 일종인 최소억제전략을 실현할 수 있는 수준까지 왔다. 북한은 핵전략을 완성하기 위해 미사일 발사 등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대신 한ㆍ미 연합방위체제는 약화하고 한국군의 전력증강을 늦추는 일이다. 북한의 핵전략 효과를 더 키우기 위해 한ㆍ미의 군사대응책을 취약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 첫 번째가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다. 여기엔 유사시에 대비한 한ㆍ미 연합훈련과 북핵 억제를 위한 미국 핵우산 및 전략자산 전개 중단이 포함된다. 두 번째는 이중기준 철회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두고 ‘도발’이라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북한의 발사는 정당하다는 주장이다. 북한의 군사적 활동을 ‘도발’이라고 규정하는 것 자체가 기분 나쁘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한국군에겐 F-35 스텔스 전투기와 같은 첨단무기와 미사일을 더는 갖지 말라고 요구한다. 한국이 첨단무기를 확보하면 한반도에서 군비경쟁을 부추긴다는 논리다. 반면 북한의 핵무장은 생존 차원이어서 문제가 안 된다고 주장한다.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면 어떻게 될까. 우선 한ㆍ미군이 연합훈련을 하지 않으면 전투력이 크게 떨어진다. 연습하지 않는 축구 대표선수가 시합에 나가는 것과 다름없다. 미국의 핵우산이나 전략자산 전개 중단도 그렇다. 미국의 핵우산이 제거되면 북핵을 억제할 수단이 없어진다. 그땐 한국 스스로 핵무장을 하지 않는 한 북핵 위협에 우리가 생존하기 어렵다.
우리 군(50만 명)이 128만 명의 북한군에 대응하려면 첨단ㆍ고성능 무기가 필수다. 더구나 F-35는 은밀한 침투가 가능한 대표적인 대북억제 수단이다. 북한은 이런 F-35를 갖지 말라고 한다. 북한은 한술 더 뜬다. “남조선이 북조선의 도발을 억제해야 한다는 망상과 위기의식, 피해의식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북한이 핵무장을 해도 남한을 공격하지 않으니 안심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을 담보로 믿을 수 있을까.
노동당 규약, 핵으로 한국군 제압
그런데 북한의 진짜 속내는 따로 있다. 북한의 목표는 핵무기로 한반도를 통일하는 것이다. 북한은 8차 당대회에서 헌법보다 상위에 있는 노동당 규약 서문을 “남조선에서 미제의 침략무력(주한미군)을 철거하고 (…) 강력한 국방력으로 근원적 위협(한국군)을 제압하겠다”고 수정했다. 말하자면 북한이 ICBM(대륙간탄도미사일)과 SLBM(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으로 미국을 압박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전술핵무기 등으로는 우리 군을 제압하겠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 북한은 핵무기 소형ㆍ경량화와 전술무기화를 완료했다고 선언했다. 또 초대형 핵탄두 생산, ICBM의 사정거리를 확장해 미국에 대한 핵 선제 및 보복타격능력을 고도화, 핵잠수함과 수중발사핵전략무기(SLBM) 보유를 과업으로 상정했다.
북한은 이런 통일 목표를 좀 더 수월하게 달성하기 위해 장애물을 미리 제거하려고 한다. 말하자면 한미동맹과 한국군을 약화하는 것이다. 그게 북한이 우리에게 요구한 선결조건이다. 손도 대지 않고 코를 풀려는 것이다.
한 가지 더. 북한이 한반도에서 미군을 배제하려는 데엔 해묵은 역사가 있다. 김일성의 한반도 적화통일 실패 교훈이다. 그는 한국전쟁을 일으켜 적화통일을 목전에 두었으나 미국의 참전으로 실패했다고 분석했다. 이후 김일성은 한반도에서 미국을 몰아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했다. 그 대안이 핵과 미사일이었다. 북한 입장에선 미국이 눈엣가시다. 핵무기로 북한 정권 생존을 보장하고, 나아가 미국을 압박해 유사시 한국을 돕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김일성은 1960년대부터 소련 드브나 연구소에서 원자력 기술을 습득했다. 또 이집트에서 도입한 스커드B 미사일을 역설계했다. 김일성의 유산을 물려받은 김정일은 핵ㆍ미사일 기반 능력을 확보했고, 김정은 시대에 와서 꽃을 피웠다.
김정은은 2017년 9월 수소탄 시험에 성공해 본격적인 핵무장에 들어갔다. 미사일은 중ㆍ장거리와 다양한 단거리까지 만들었다. 우리를 위협하는 단거리 유도무기 4종인 북한판 에이타킴스와 이스칸데르 미사일, 초대형 방사포 등은 실전 배치에 들어갔다. 최근에는 순항미사일과 극초음속 미사일, 러시아제 최신형 S-400과 유사한 대공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미국 본토에 닿는 ICBM과 SLBM 개발도 막바지 단계다.
북한 핵능력은 간단치 않다. 미국 랜드연구소 등에 따르면 북한은 현재 최대 100발의 핵탄두를 보유했고, 2027년엔 200발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한다. 여기에다 전술핵과 ICBM 및 SLBM까지 갖추면 인도ㆍ파키스탄 수준의 핵능력을 갖춘다. 북한이 유사시 전술핵으로 우리 전방을 공격하면 핵심 방어선이 뚫릴 수 있다. 동시에 ICBM과 SLBM으로 미국을, 중거리 핵미사일로는 일본을 위협해 미군과 유엔군의 한반도 증원을 지연 또는 차단할 수도 있다. 우리로선 최악의 시나리오다. 북한이 이런 자신감에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남북통신선 차단과 복원 반복, 문재인 대통령 비난 등에 거리낌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북핵 상쇄할 방안 강구할 때
이젠 북한과는 시간 싸움이다. 북한이 3대에 걸쳐 구축한 핵ㆍ미사일 전략은 김정은 정권의 DNA로 자리 잡았다. 포기가 매우 어렵다. 하지만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수렁에 빠진 경제 회복은 불가능하다. 서로 모순이다. 오랜 대북제재로 열악해진 북한 경제는 종국적으로 김정은 정권에 악재가 될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북한 정권이 위기에 몰리면 도발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물론 북한도 부담이다. 한국전쟁 때처럼 미국이 본격적으로 개입하면 북한은 필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은 내부 위기가 오기 전에 미국을 압박할 수 있는 ICBM과 SLBM을 완성하고, 문재인 정부로 하여금 한ㆍ미의 대북 적대정책과 이중기준을 철회시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섣부르게 북한의 선결조건을 받아들여 종전선언을 하거나 이를 위한 정상회담은 신중히 해야 한다. 문 정부는 2018년 북한 비핵화를 위한 정상회담 등을 했지만, 북한엔 핵무장할 공간을 열어줬다. 북한의 유화정책에 속아 실책의 반복은 곤란하다.
한ㆍ미 연합방위태세 훼손 행위는 더더욱 주의할 사안이다. 앞으로는 북핵 상쇄방안에 고민할 때다. 미국 핵우산 등 확장억제력의 신뢰도를 높이는 게 우선이다. 북한 김 위원장도 자가당착의 핵ㆍ미사일 유산에 대한 집착을 끊어야 한다. 핵무기가 없어도 생존할 수 있다는 점을 빨리 깨닫기 바란다.
☞최소억제전략=핵무기로 상대국의 도시 몇 개를 확실하게 파괴할 수 있는 보복능력을 갖추면 핵으로 공격받지 않는다는 핵전략. 프랑스가 핵개발 때 만든 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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