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프리즘] 냉장고 밑 '현금 1억' 신고자의 슬픔
“노인이 혹시라도 보이스 피싱 같은 범죄에 연루된 게 아닐까 걱정됐습니다.”
최근 제주의 중고 김치냉장고에서 발견된 현금뭉치를 신고한 A씨(50대)가 6일 중앙일보 취재진에게 한 말이다. 그는 “꼬깃꼬깃한 현금이 든 봉투에 적힌 빼뚤거리는 글씨를 보곤 한눈에 노인이 평생 모은 돈임을 직감했다”고 한다. 경찰은 1억1000만원의 현금뭉치를 주저 없이 신고한 A씨에게 감사장을 주기로 했다.
전국을 놀라게 한 A씨의 신고는 지난 8월 6일 이뤄졌다. 그는 이날 112에 전화를 걸어 “현금뭉치를 발견했다”고 신고했다. “중고로 산 김치냉장고 밑바닥에 돈이 붙어있었다”는 말과 함께다. 이후 A씨 신원은 본인 요청에 따라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
제주 서부경찰서가 확인한 결과 냉장고에 붙어 있던 돈뭉치는 5만원권 2200장이었다. 비닐에 든 지폐는 100매와 200매씩 따로 포장된 상태였다. 당시 냉장고 바닥은 각각의 봉투에 담긴 돈뭉치 위에 장판이 붙여져 있었다.
경찰은 즉각 돈 주인을 찾아 나섰지만 곧장 난관에 부딪혔다. 현금이 붙어 있던 냉장고가 서울에서 1년여 돌아다니다가 제주로 팔려왔기 때문이다. 서울의 판매상조차 이 냉장고가 언제 들어온 것인지도 인식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이 사이 언론 보도를 보고 “자기 돈인 것 같다”고 우기는 신고가 10여 건 접수되기도 했다.
결국 경찰은 현금이 들어있던 대봉투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봉투에 자필로 적은 ‘보험’ ‘삼천만원’ 등의 글씨가 결정적이었다. 냉장고에서 함께 발견된 약봉투를 추적해 돈 주인이 다니던 병원과 약국을 특정한 후 필적 감정을 맡겼다.
수사 결과 돈 주인은 서울에 거주하던 60대 여성으로 파악됐다. 지병을 앓다 지난해 9월 세상을 떠난 사실도 확인했다. 유족들은 돈 주인이 김치냉장고에 현금 다발을 붙여둔 것을 전혀 몰랐다고 한다. A씨는 “우여곡절 끝에 돈 주인을 찾았다는 소식을 듣곤 내 일처럼 기뻤다”고 했다.
경찰은 유실물 처리 절차에 따라 발견된 현금을 유족 등 권리자에게 반환할 방침이다. 신고자인 A씨에게는 유실물 법에 따라 5~20%(550~2200만원)의 보상금이 주어진다.
신고자 A씨는 제주시내에서 형제들과 함께 PC방을 운영하고 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영업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도 돈 주인을 생각하는 마음이 더 컸다고 한다. 현금을 신고한 이유에 대해선 “우리가 힘든 만큼 돈의 무게감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고 했다.
A씨는 이날 인터뷰에서 감사장과 보상금을 받게 된 소감을 묻는 말에 외려 슬픔을 표현했다고 한다. “돈 주인 분이 이미 고인(故人)이 됐다는 소식을 듣곤 너무도 마음이 아팠다”는 취지였다. 현금이 발견됐다는 소식에 “내 돈”이라고 우겼던 이들이 더욱 을씨년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다.
최경호 내셔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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