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준의 의학노트] 사랑이 답이다

2021. 10. 7.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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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준 서울대 의대교수 의학교육실장

우리가 살아가며 가장 많이 듣는 단어 중 하나가 ‘사랑’이다. 수많은 노래와 시, 소설, 그림의 영감과 소재가 된 것은 물론이고 사람들의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의 근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사랑’이라는 현상을 의학적으로 분석한 연구는 없을까? 물론 있다.

지난 2011년 이스라엘 바일란대학 심리학과 루스 펠드먼 교수팀은 감정에 대한 우리 몸의 반응에 사랑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 참여자로 17~32세 남녀 112명를 모았는데 이들 중 55명은 최근 4개월 이내에 연인을 만나 사랑에 빠진 상태였고, 다른 사람들은 사귀는 사람이 없었다.

「 사랑을 분석한 여러 의학연구
스트레스 줄고 마음도 넓어져
연인이나 자식이 아니더라도
서로 사랑스럽게 바라봤으면…

연구진은 기쁜 장면, 슬픈 장면,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장면을 담은 영상을 준비해 참여자들에게 보여주며 ‘호흡성 동성부정맥’을 측정하여 사랑에 빠진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비교했다. ‘호흡성 동성부정맥’은 미주신경의 활성도를 반영하는데, 이것이 유지되면 부교감신경계가 활동하는 편안한 상태이고, 줄어들면 교감신경계가 흥분하는 스트레스 상황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결과는 이랬다. 기쁘고 신나는 장면을 볼 때나 중립적인 장면을 볼 때 ‘호흡성 동성부정맥’은 사랑에 빠진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슬픈 장면을 볼 때는 확연히 달랐다. 연인이 없는 사람들의 ‘호흡성 동성부정맥’은 확 줄어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음이 확인됐지만, 사랑에 빠진 사람들에서는 평소와 비슷하게 유지됐다. 차이는 부부가 다투는 장면을 볼 때 가장 뚜렷했다. 바로 사랑의 효과다.

의학노트


사랑이 우리 뇌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도 기능성 자기공명영상을 이용한 연구를 통해 꽤 밝혀져 있다. 사람들에게 연인의 얼굴을 보여준 후 촬영을 해보면, 대뇌 피질의 정중 뇌섬엽, 앞 띠다발, 해마 부위와 피질밑층의 줄무늬체, 측좌핵 등이 활성화해 있다. 이곳들은 우리 몸의 보상체계를 담당하는 곳인데, 활성화하면 해마를 통해 도파민을 분비해서 우리를 행복하고 황홀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사랑에 빠지면 기능이 저하되는 뇌의 부위도 있다. 무엇보다 판단력을 책임지는 전두엽 부위 기능에 지장이 생긴다. 우리는 가끔 ‘왜 저 사람은 자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저런 사람을 사귀지?’라며 의아해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는 사랑에 빠지면 전두엽 기능의 일부가 저하되기 때문에 상대방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라고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자식의 사진을 미소를 머금고 쳐다보는 엄마들의 뇌 기능 변화도 사랑에 빠진 사람과 흡사하다. 즉, 판단력을 관장하는 전두엽 부위의 기능이 저하돼 있다. 그러니 평범하기 그지없는 자기 아이들을 보며 착하고, 잘생기고,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의학적으로 잘 설명이 된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삼손은 사자를 맨몸으로 물리쳤다는 괴력의 유대 영웅이다. 그러나 적국의 여인 데릴라를 사랑하게 되자 그녀에게 자신의 힘의 원천을 알려주는 결정적인 실수를 범하고 만다. 영웅 삼손이 이런 초보적 실수를 저지른 이유는 무엇일까? 스페인 그라나다 대학 하이메 빌라 교수팀의 연구를 보자.

빌라 교수팀은 연인이 있는 대학생 54명을 연구 참여자로 모집하여,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 4장, 낯선 사람의 사진 4장, 일그러뜨린 얼굴 사진 4장을 각각 6초씩 보여주고 ‘눈 깜빡 놀람 반사’를 측정했다. 이 반사는 예측하지 못한 소리를 들었을 때 눈을 깜빡하는 반응으로 우리 몸의 방어 능력을 반영한다. 물론 반사 강도가 높을수록 우리의 방어 체계가 잘 작동하고 있음을 뜻한다.

결과는 분명했다. 일그러진 얼굴이나 낯선 사람의 사진을 보았을 때에 비해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았을 때 ‘눈 깜빡 놀람 반사’의 강도는 확연히 줄어들었다. 즉,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방어 체계의 스위치를 끄고 스스로 무장해제하는 셈이다. 특히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훨씬 더 많이 마음을 놓고 반사 강도를 줄였다.

코로나는 잠잠해질 기미가 없고 대학 입시는 코앞이라 다들 예민해져 있다. 사랑에 빠진 이가 연인을 볼 때나 엄마가 사랑스러운 아이를 볼 때처럼 전두엽의 기능을 조금 낮춰 상대방의 사소한 말실수나 마뜩잖은 행동을 한두 번쯤은 너그럽게 봐주면 어떨까? 그러면 모든 게 훨씬 나아질 것 같다. 존 레넌이 노래한 것처럼, 사랑이 답이다.

임재준 서울대 의대교수 의학교육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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