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오피니언 나는 저격한다] 대통령님, BTS와 춤을 춰야했습니까
문재인 대통령님.
지난달 17일 국회 앞 인도 한쪽에 합동분향소가 생겼다는 소식은 들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거기선 천막용 천을 접어 임시 제단을 차리고, 모래가 담긴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향을 태웠습니다. 영정 사진 대신 놓인 액자에는 ‘근조 대한민국 소상공인·자영업자’가 적혀 있었고요. 코로나19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자영업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마련된 공간이었습니다.
23년간 맥줏집을 운영하던 한 자영업자가 코로나로 인한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로 영업이 곤란해진 상황에서 1000만 원 가까운 월세와 직원 월급 등을 감당하지 못하자 극단적 선택을 한 겁니다. 마지막 길을 가기 전에 본인의 원룸 보증금을 빼 직원 월급을 지급했다고 합니다. 평택에서는 또 다른 노래방 업주가 매달 800만 원에 달하는 임차료 등을 견디다 못해 배달대행과 대리운전을 전전하다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했습니다. 여수에서도, 그리고 무안에서도 비슷한 비극적인 사건이 이어졌습니다. 벼랑 끝에 몰린 자영업자들의 집단적 목소리를 내기 위해 조직한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코로나 이후 극단적 선택을 한 자영업자가 최소 22명이라고 합니다.
극단적 선택한 22명의 자영업자
“청와대가 재난의 컨트롤 타워이다.”
이 정부 출범 초기 문재인 대통령이 한 말씀입니다. 지금이 바로 미증유의 국가재난 상황입니다. 그러나 국민이 죽어가는 비극적 상황에 대통령이 재난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많지 않을 겁니다. 자영업자들의 간곡한 호소에도 그 눈물을 닦아주는 어떠한 대답도 없이, 아니 대답은커녕 애도조차 없이 유엔총회 참석을 이유로 출국했습니다. 미국이 코로나 확산 우려를 내세워 방문 자제를 요청했는데도 말입니다. 그리곤 BTS와 함께 유엔총회에 참석해 한반도 종전 선언을 제안하셨죠. 총회가 끝난 후 김정숙 여사는 BTS와 함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방문했고, 문 대통령님은 또 BTS와 함께 미 ABC방송에 출연해서 BTS의 빌보드 1위 곡인 ‘퍼미션 투 댄스(permission to dance)’ 안무를 소개했습니다. 아무 근심 없이 참 평화로운 장면들입니다.
문 대통령님, 그런데 아십니까. 자영업자 합동분향소를 외면하고 해외에서 BTS 안무를 소개하는 동안 한국의 하루 코로나 신규 확진자가 사상 최대치인 3000여명을 돌파했습니다. 늘어난 숫자만큼 불안도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불안감보다 더 무서운 건, 또 이 숫자를 내세워 가뜩이나 강화한 사회적 거리두기 규제의 종료 시점이 무기한 늘어날지도 모른다는 불확실성입니다. 온 국민이 고통스럽게 희생하면서 정부의 무원칙하며 강력한 거리두기를 잘 따라도 신규 확진자 수는 낮아질 것 같지 않으니 말입니다.
대통령께서 추석 전에 백신 1차 접종률이 70%에 도달한 것을 정책 성과로 강조하면서, 슬슬 방역 정책이 지금 같은 격리 일변도의 거리두기를 완화해 위드 코로나로 전환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하지만 계속 “짧고 굵게”를 얘기하며 희망 고문을 해온 전적을 고려할 때 국민 상당수는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자영업자를 비롯한 국민의 고통이 끝날 기미가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대통령님. 왜 지난 정권 때 했던 말씀과 행동이 그렇게 다른 건가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안전한 나라’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잖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소통’하겠다 하지 않으셨나요.
우리가 지금 겪는 상황은 ‘나라다운 나라’가 아닙니다. 국민이 죽어간다고 아우성쳤습니다. 그런데 재난 대응을 책임지는 대통령이 고통을 어루만지고 진지하게 대안을 찾아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기는커녕 해외 방송에 출연해 유명 보이그룹 안무를 소개하다니요. 이것이 어찌 ‘국민이 행복한 나라’인가요. 이러고도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나요? 여전히 “청와대가 재난의 컨트롤타워”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BTS와 방송 대신 방역 설명 해달라
소통해 주십시오. 해외 방송에서 BTS 안무를 소개할 게 아니라 우리 방송에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직접 연일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는 코로나 확진자 수치가 가지는 의미를 설명하면서 국민을 안심시켜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방역이 무슨 근거로, 어떻게 이루어질지도 설명해 주세요. 그게 대통령의 역할입니다. 재난지원금에 막대한 세금이 쓰였다는 게 무색하게 코로나로 가장 고통받은 자영업자는 당장 매일매일 생존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전 국민 소득 하위 88%에 돌아가는 1인당 25만원의 재난지원금은 당장 정권의 지지율을 높이고 다음 대선의 판도를 흔들어 놓을 수는 있을 겁니다. 그러나 삶의 위기에 처한 자영업자들에게 힘이 되지 않습니다.
대통령님. 생사를 고민하는 자영업자 입장에서 어떻게 그들을 도울 수 있을지 고민해 그들을 위한 답을 주십시오.
유엔 기조연설에서 내놓은 북한과의 종전선언, 물론 중요하겠죠. 하지만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국민이 죽어가고 있다는 걸 잊지 말아 주세요. 부디 대한민국 국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주십시오.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국민이 늘고 있습니다. 국민을 외면하는 국가는, 정부는, 왜 존재하는 겁니까. 국민이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 주십시오. 지금 대한민국은 위급한 재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대한민국호(號)의 선장으로 필요한 자리에서 필요한 판단을 내려주세요.
문 대통령님께 투표했던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 간곡하게 호소드립니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서민으로 살다보니 ‘삶포자’가 됐다고 느끼는 게 저뿐일까요”
「 잇따른 자영업자의 죽음, 그리고 이런 와중에 문재인 대통령 부부와 함께 뉴욕에 동반 나들이를 한 BTS를 엮어 “대통령의 정치적 책임은 어디까지인가”라는 물음을 던진 전직 사무관 출신 조국과민족(필명)의 ‘저격’ 글은 적잖은 반향을 일으켰다. 중앙일보 홈페이지엔 6일 현재 184개. 네이버엔 4682개의 댓글이 달렸다. 여러 이메일도 쏟아졌는데, 이 가운데 ‘서민으로 살다가 삶포자로 느끼는 건 저만의 생각일까요?’라는 제목을 단 next****의 글이 인상적이었다. 학창 시절엔 수포자(수학 포기), 이후 연애·결혼·출산·내 집 등 n포자로 살아간다는 자조적 얘기는 많았지만 아예 삶을 포기할 지경이라는 ‘삶포자’라는 조어가 씁쓸하게 다가왔다.
“코로나19가 대한민국에서만 일어난 것도 아니고 전 세계적으로 일어났고, 어떤 나라는 수만 명이 죽었다. 이걸 다 대통령이 책임져야 하나”(comb****)라며 대통령 입장에서 옹호한 글도 있었지만 댓글은 대체로 어려운 삶을 토로하고 개선을 촉구하는 내용이 많았다.
19살이라는 jdd1****은 “자영업자 문제만 심각한 게 아닙니다. 재난지원금으로 저와 같은 사람들을 유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친구 누나가 자살을 했습니다. 주변 사람도 이렇게 피폐해지고 죽어 나가는데(…)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들이라면 국민 서러움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라고 썼다. wolf**** 역시 “누구나 소중한 국민입니다. 힘 있는 단체에 속하든 그냥 한 개인이든 동등한 가치를 가진 소중한 국민”이라며 “표가 되지 않으면 무시하고 관심이 없는 정부”를 비판했다. diff****도 “신차 캐스퍼를 온라인 계약했다고 자랑하고, 또 하필 이 시국에 개 식용을 금지하겠다고 하는 걸 보니 참 자영업자, 소상공인의 절박한 심정은 죽어도 모른다 싶었다”고 자괴감을 드러냈다.
비판 외에 대안 제시도 눈에 띄었다. keiz****는 “자영업자 살리려면 재난지원금 살포보다 고정비(인건비·임대료)의 상당 부분을 지급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제안했다.
natl****은 “인구 500만의 작은 나라지만 뉴질랜드는 매일 오후 4시 총리가 직접 코로나 관련 인터뷰를 한다고 한다. 옆에 보건부장관, 그리고 코로나 방역 전문가를 대동하고. 정책 문제 등 총리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직접 한다”며 국민 가슴에 와 닿는 코로나 대책을 요구했다.
안혜리 논설위원
」
디지털 오피니언 ‘저격’은 중앙일보 사이트(joongang.co.kr)와 앱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반론이 들어오면 함께 싣습니다.
조국과민족(필명) 전직 사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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