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개고기 송

장주영 2021. 10. 7.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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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영 내셔널팀 기자

박지성이 잉글랜드 프로축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에서 뛰던 시절, 팬들이 즐겨 부르던 응원가가 있다. 일명 ‘개고기 송’이다. 맨유의 홈구장인 올드 트래퍼드에서 경기가 있는 날이면, 이 노래는 어김없이 울려 퍼졌다.

‘박지성, 네가 어디에 있든/너희 나라에서는 개를 먹지/임대주택에서 쥐나 잡아먹는 리버풀보다는 그게 낫지.’

분명 박지성 응원가인데, 가사의 내용과 전개가 희한하다. ‘개를 먹지’란 표현도 뜬금없는데, 이게 맨유의 라이벌팀인 리버풀을 깎아내리는 소재로 사용된다. 해학과 풍자라기엔 허용 가능 수준을 넘은 느낌이다. 인종이나 지역으로 우열을 나누고 있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격한 스포츠라도 차별과 폭력을 경쟁이란 이름으로 미화하거나 정당화할 수는 없다.

현역 시절 팬들의 응원가를 묵묵히 들어왔던 박지성은 최근 개고기 송 중단을 호소했다. 박지성은 맨유 구단 팟캐스트에 출연해 “한국인에 대한 인종적 모욕이 될 수 있다”며 “이 노래를 멈춰달라”고 목소리를 냈다. 실제로 이 노래는 최근에도 불렸다. 맨유 팬들은 지난 8월 원정경기에서 당시 울버햄튼에 입단한 황희찬을 향해 이 노래를 불렀다. 맨유는 박지성의 발언 이후 홈페이지를 통해 “그의 발언을 전적으로 지지한다. 팬들도 그의 뜻을 존중해주길 바란다”고 글을 올렸다.

프리미어리그의 인종차별은 비단 과거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현재 프리미어리그는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의미로 경기가 시작할 때마다 전 선수들이 한쪽 무릎을 꿇는 ‘블랙 라이브 매터스(BLM)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잊을만하면 경기장 안팎에선 인종차별 사건이 발생한다. 손흥민(토트넘)을 향해 ‘DVD나 팔아라’ 같은 아시아인을 비하하는 표현을 쓰는 극성팬들도 있었다. 일부 선수는 ‘의미없다’며 BLM 캠페인 참여를 아예 거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박지성의 소신발언은 적잖은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오랜 시간 자신을 응원해준 팬들에게 각성을 촉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팬들이 (응원가를) 만들어줬다는 사실은 여전히 자랑스럽다”면서도 “한국인들이 특정 부분에 대해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유럽에 진출한 어린 한국 선수들에게도 미안함을 느낀다”고 밝혔다. 그가 보여준 선배의 품격과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장주영 내셔널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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