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생 사진 붙인 교장의 일갈 "좋은 대학 가면 '인재'입니까?" [복작복작 순창 사람들]
[최육상 기자]
▲ 전북 순창군 순창여중 교장실에 전교생 사진을 붙인 최순삼 교장. 사진 촬영을 위해 잠시 마스크를 벗었다. |
ⓒ 최육상 |
전북 순창군 순창여자중학교 교장실 벽면에는 전교생 한 명 한 명 사진과 이름이 붙어있다. 10대 여학생끼리 장난치며 주고받을 앙증맞은 사진을 붙인 주인공은 최순삼 교장이다. 교장실에 붙은 사진은 학생들 사이에게도 화제다. 박은혜(3학년) 학생회장은 "교장선생님이 오셔서 학생들 사진을 처음 붙이셨다"고 말했다.
최 교장을 처음 만난 건 지난 1월 29일이었다. 당시 순창여중 후문 쪽에 걸린 "한국은 5면이 바다이죠, 동해, 서해, 남해, 선배님들 사랑해! 그리고 졸업을 축하해!"라는 현수막에 호기심이 동해 취재하면서였다. 그 때 만난 학생들은 "'5해 현수막'을 학생회 이름으로 교문에 걸 수 있었던 건 교장 선생님과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의견을 존중해 주셨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첫 만남 이후 최 교장을 수차례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고향 순창에서 초·중·고를 졸업한 최 교장은 전북대 사범대학(윤리교육과)을 나와서 1988년부터 교직 생활을 시작했다. 순창군내 학교에서만 11년 6개월을 근무했던 최 교장은, 정년을 4년 남겨둔 지난해 다시 고향으로 발령받았다. 다음은 지난 9월 6일 교장실에서 최 교장과 나눈 대화 내용이다.
교장실에 전교생 사진을 붙인 이유
- 교장실에 학생들 사진을 붙이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김승환 전북교육감 체제가 출범할 때, 제가 전북교육청에서 2012년부터 8년 간 근무했어요. 그 때 저는 학생들이 학교에서 진정한 주인으로 대접받고 학교가 즐겁고 행복한 곳이 되려면 '권리의 주체', '배움의 주체'로서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학교장부터 학생들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면 아이들 얼굴과 이름을 아는 게 기본이어서 사진을 교장실에 붙였죠."
- 자유분방한 사진을 붙였는데.
"학생들의 잠재능력은 대부분 친구들이나 교사들과 관계 속에서 발현된다고 봐요. 당장 학부모님들이나 외부에서 전화가 오면 학생들의 잠재능력이나 고유 특성, 그 학생이 처한 환경 같은 걸 알아야 하는데 막상 학생 얼굴이 딱 떠오르질 않는 거예요. 학생 사진을 보면 학부모님들과 조금 더 원활한 대화가 가능하죠. 증명사진보다 개성이 드러나는 사진을 보니까 더욱 좋고요."
"저도 순창여중에 와서 같은 생각을 했어요. 선생님들이 학생들한테 진로 관련 자료와 내용을 다양하게 열어주면서 교육했구나, 그런 걸 느꼈죠. 학생들이 진로나 진학 관련해서 자기 의견을 제대로 드러낼 수 있다는 게 매우 중요하죠. 학교가 학생들의 의견을 좀 더 수용해주고 학생들이 좋아하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고, 인생이 행복하고 풍부해 질 수 있다는 걸 이야기해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 순창여중 현관에 들어서면 학생들의 정말 다양한 꿈이 그림으로 그려져 붙어 있다. |
ⓒ 최육상 |
- 교직원이 지녀야 할 '바람직한 학생관'이 있다면.
"학생을 '배움의 주체', '권리의 주체'로 바라봐야 합니다. 학생들과 생활하면서 갖는 학생관입니다.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결정해 본 경험이 많은 학생은 나중에 자기 삶과 자신을 주도적으로 끌어갈 수 있는 힘과, 민주시민으로 더불어 살 수 있는 힘이 생겨요. 저는 한 학생이 한 사람의 인격체로 독립해서 인생을 풀어 가면 교육은 성공했다고 봐요."
최 교장은 대화 내내 교육철학과 학생관을 분명하게 못 박았다. 그는 "학생인권의 꽃은 자치권"이라고 단언하며 "학생들이 관련된 일을 스스로 결정하고 실천해서 성장하고, 또 그걸 통해서 스스로의 삶을 풀어갈 수 있는 능력을 키운다면 그게 학생들이 갖는 최고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최 교장이 전북교육청에서 근무하던 당시 진보교육감의 중요한 담론은 '학생인권' 문제였다. 그는 '전라북도학생인권조례'를 만들기 위해서 2년여에 걸쳐 수많은 공청회를 열고 학생들과도 수 없이 대화했다. "학교의 중심은 학생들이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전라북도학생인권교육센터'도 개원했다. 그는 전북교육청에서 학생인권조례를 만들 때의 경험을 설명했다.
"학생인권조례가 처음에는 전북도의회에서 부결됐어요. '학생들에게 권리를 주면 학교 교육이나 활동을 더 어렵게 하는 게 아니냐' 그런 우려가 컸죠. 2012년과 2013년에 계속 토론했죠. 그 동안 권리를 먼저 주고 책임을 갖게 한 교육이 없었지, 아이들은 생각보다 합리적이고 상식적이에요. 학생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 시간, 예산 이 3가지를 교육감님한테 말씀드리고 2014년부터 중고등학교에 500만원씩 학생회실 예산부터 먼저 지원했어요. 지금은 대부분 학교에 학생자치실이 있어요. 자치활동에 학교 예산의 1%를 의무적으로 편성하고요."
- 학생인권에서 '자치권'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래의 불확실성이 더욱 커졌어요. 모든 청소년들이 겪는 현실적인 고통이죠. 거꾸로 보면, 그렇기 때문에 자기 인생이나 미래, 진로 등에 대한 더 많은 탐색과 자기결정권 행사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거죠. 불확실성을 깨고 가는 데는 학생들의 자치권이 중요해요. 스스로 결정하고 성취해 나가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거든요."
공부는 대학교만 결정되면 끝난다?
순창군에는 군에서 위탁해 운영하는 '옥천인재숙'이 있다. 군내 중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한 학년에 50명씩 매년 총 200명의 학생들을 선발한다. 학생들은 하교 후에 옥천인재숙에서 별도 교육을 받으며 기숙사 생활을 한다. 군이 매년 수십 억 원의 예산을 들여서 학생 200명에게 '특별 사교육'을 시키는 셈이다.
- 순창 교육에서 옥천인재숙 문제는 동전의 양면인 것 같다.
"옥천인재숙이 2003년부터 시작했을 거예요. 근본적으로 교육적 관점에서는 차별화된 교육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중학교 3학년 학생들부터 인재숙에 다니는 아이와 안 다니는 아이의 차별이 생겨요. 받아들이기 힘들어요. 정말 슬픈 일이죠. 우리 학생들은 모두 소중하잖아요. 교육 차별에서 나오는 누적된 문제들에 대해서 이제는 공론화하고, 공개적이고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최 교장은 '교육 차별'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목소리를 가장 높였다.
"한국 교육의 최고 병폐가 뭡니까. '입학하는 학교가 학벌'이라는 거예요. 어떤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이 나오기 쉽지 않은 구조가, '공부는 입학하는 대학교만 결정되면 끝난다'는 생각 때문이에요. 한국 사회에서 좋은 대학에 가는 게 '인재'라고 하는데, 이 때 쓰는 인재라는 용어는, 용어의 오염이라고 봐요. 교육에서는 '인재'를 정말 포괄적으로 넓고 다양하게 봐야 해요. 어떻게, 좋은 대학에만 가면 인재입니까?"
최 교장은 정년까지 2년 반을 남겨뒀다. 그는 "고향에서 교직을 내려놓을 수 있어 참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화 내내 심사숙고하면서 교육 전반을 조목조목 짚었다. 최 교장은 순창에 대한 걱정과 대안으로 말을 맺었다.
"순창이 20~30년 후에도 지속 가능할 것인가? 일자리, 복지, 문화관광 이런 곳에도 힘을 쏟아야 하지만,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순창의 역사, 문화, 교육적인 힘 등에 대한 실천적인 연구가 동시에 병행되어야 합니다. 이건 내 문제고, 고향이 없어지고, 부모님과 아이들의 삶터가 없어진다는 절박함이 있잖아요. 주인의식을 갖고 부족하나마 저도 도울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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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전북 순창군 주간신문 <열린순창> 10월 6일자에 보도된 내용을 수정, 보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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