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 없이, 형상 없이 삶을 수놓다

원동업 2021. 10. 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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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살롱 작가 이야기②] 전통의 추상 탐구하는 텍스타일 작가 최수영

1일부터 10일까지 서울 성수동 오매갤러리에서 열리는 <자수살롱>展은 조금 특별한 전시다. 2019년 <자수신세계>展으로 <자수공간> <자수잔치> 그리고 외전격인 <안녕! 바다 씨!>까지 네 번에 걸쳐 꾸준히 변화하고 성장해 현재 2021년 <자수살롱>展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살롱에 참여한 열 명의 작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기자말>

[원동업 기자]

자수의 자(刺)는 가시 침 혹은 찌르는 것이다. 그래서 자객(刺客)은 찌르러 찾아오는 낯선 나그네지. 수(繡)는 수, 수놓다란 뜻이며, 형태를 그린다. 바늘로 찔러 그 뒤에 달린 실의 선을 이용해 형태를 만들어가는 작업을 자수라 한다면, 최수영의 직조작업은 자수는 아니다.

직조는 오로지 날실(경사 세로줄실)과 씨실(위사 가로줄실)의 엮음을 통해 천을 짠다. 그 짜임새는 평직이 기본이지만 능직과 수자직(주자직)의 방법도 있고, 파일직이나 자카드직 등 기타 조직도 포함된다. 이 세계는 넓고 깊고 다양하다. 자수는 이 넓은 세계를 품음으로써 확장될 수 있다. <자수살롱>의 취지다. 노원에 위치한 서울여성공예센터 더아리움에서 최수영 작가를 만났다(그는 이곳 레지던스 작가다).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추상 
 
▲ 자수살롱 전시된 작품 옆에 선 최수영 작가 베틀을 이용한 추상 작품. Connected BLUE, 60x95cm, Rayon, 2020오매갤러는 바람과 햇살이 전시장에 들어오는 전시장이다.
ⓒ 원동업
 
최수영은 대학에서 미술대 공예과 섬유전공이었고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석사 논문은 <한옥의 조형적 특성을 이용한 직물작품 연구>. 실을 이용해 천을 짜내는 베틀을 수영은 갖고 있다. 이건 작가가 가진 최고의 '자본'이기도 하다. 다만 그 자본을 굴려 작동시켜 생산해 내는 것은 언뜻 무용한 듯 보이는 작품이다. 그 작품은 무엇이며 무엇을 말할까? 
   
최수영의 작품은 심심하다. 여러 요소들이 보이지만 기본적으로는 선과 면과 색(아주 단순한 몇 개의 무채색) 뿐이다. 검정과 회색과 흰색의 세로 직사각형이 검정과 흰색의 딱 중간일 것 같은 네모, 조금더 진한 가로직사각형 안에 갇혀 있고, 이것이 중력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늘어진 실들을 통해 또다른 세로직사각형의 직조물에 연결돼 있다. 그런데 이 단순함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보는 이는 잠시 명상 상태가 되고, 이후 놀라운 속도로 활성화된다. "저게 무엇인가?" 하고 고개를 빼고 찬찬히 작품 전체로 마음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현대적 예술이나 디자인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가 바우하우스다. 1919년 독일에서 설립 운영된 이 학교의 목표는 '건축을 중심으로 각기 분산된 모든 미술 분야를 통합'하는 것이었고, '건축가와 조각가, 화가, 우리 모두는 공예가로 돌아가야 한다'는 모토를 내세웠다.

1933년 나치에 의해 폐쇄된 이 학교에도 직조 직물 공방이 있었다. 이곳에서 애니 알베스와 군타 스톨츨 등 학생들이 직조해낸 것은 이전의 '서정적 풍경'이 아니었다. 태피스트리를 벗어나 이들은 오직 직선적 면들과 그 안의 색만으로 추상적 디자인을 선보였다.

그건 전통적 회화를 거부하고, 여성은 직물공방으로만 몰아넣는 학교의 정책에 반항하는, 여성들의 선언이었다. 그 단순하고 동시에 복잡한 세련됨 안에는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목소리가 있다.  

오방색과 한옥에서 추상한 것들
 
▲ 베틀 작업을 하고 있는 최수영 작가 베틀 작업은 천을 직조해 가는 과정이다. 한줄 한줄 작업 과정을 장악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창조적 개입을 할 수 있다. 장소는 서울여성공예센터 더아리움
ⓒ 원동업
 
다시 최수영의 작품으로 돌아와 <Connected BLUE>를 본다. 실은 레이온을 썼고, 크기는 60×95cm이다. 이 작품을 작가에게 물었다. 해석은 아직 관람객들에게 남아있고, 그 해석은 당연히 그 자신에게 옳고 정당한 것이겠지만, 작가의 한 해석도 의미가 작지 않을 것이니까. 

"왼편의 세로 직사각형과 오른편의 정방형 사각형이 있죠. 왼편에는 세로의 검은 직사각형과 오른편의 회색빛 스퀘어가 있고요. 왼편의 바탕과 오른편의 바탕천은 같은 실이에요. 전부 이어져 있죠. 그런데 왼편 바탕이 더 어둡고 오른편은 상대적으로 밝죠(그렇게 보이죠). 이 작품은 코로나19의 상황속에서 만든 작품이었어요. 우리는 주변에 영향을 받는 존재들이고, 우리가 그걸 아는 것과 모르는 차이는 크다고 생각해요. 왼편과 오른편은 이어져 있는데요. 코로나블루를 벗어나고자 하는 소망 그리고 변화로도 읽을 수 있는 도상이죠."
   
최수영 작가에게 작품의 영감이 어디에서 오는가 물었을 때, 그는 한옥을 꼽았다. 한국의 전통적 색으로 널리 이야기되는 오방색도 짚었다. 

"전통과 현대 사이에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기본적으로 제가 차분한 무채색을 좋아하는데, 전통적 오방색을 현대적으로 표현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어요. 오방색에서 색을 따와 무채색이랑 결합했을 때 엄청 현대적일 수 있겠다. 누가 봐도 오방색이긴 한데 그 중간을 맞추어 볼 수 있도록 작업해 봤죠.

한옥에 들면 제게는 가장 먼저 공간이 보여요. 대청마루와 그 곁의 공간들이 모두 개방돼 있잖아요. 그게 좋았어요. 지붕선을 보면, 그걸 만들 때 밧줄을 자연스럽게 늘어뜨려서 잡는 것이나, 주변의 산 능선에 맞추어서 건물의 높이를 설정하는 것도 마음에 드는 부분이죠. 제겐 그게 한옥의 소통이라는 생각을 했고… 그걸 느껴보실 수 있도록 제 작업에 많이 녹아들게 하는 거죠."

작품에 사람에 세상에 스며드는 일
 
▲ 작품들 앞에 선 최수영 작가 추상적인 작품들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최수영 작가는 꼭 전시실에서 질감을 느끼고 실제적 크기에서 오는 차이를 느껴보도록 권했다
ⓒ 원동업
 
최수영은 2021년 4월 북촌 한옥청에서 그간 '꿈꾸어 왔던' 개인전을 치렀다. <서서히, Slowly> 전. 한옥청은 가회동에 있고, 한옥이 가진 특성들(땅에 터를 잡고, 햇빛과 바람 같은 바깥 세계를 집 안으로 들이고, 직선과 곡선이 어울어진)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공간이다.

당연히 이런 공간을 추상화해서 작품으로 형상화한 최수영의 작품은 그곳에서 '입안의 혀'처럼 어울렸다. 2019년 갤러리 가이아에서 <Permeated> 전도 했는데, 그 공간은 전형적 화이트 큐브였다. 그 공간 역시 그의 추상작품은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제 어린 시절은 너무나 평범했는데요. 엄마는 제게 적당한 선에서만 개입했어요. 김이숙 대표님은 제게 '삶의 폭풍이 없는 작가'(웃음)라고 하셨는데 실제로 저는 조용한 아이였어요. 애가 안 보여서 찾으면 어디 구석서 장난감 정리하고 있고, 각 잡고 있고. 패턴과 치수는 계획하는 일이잖아요. 1mm까지 기획을 한 다음 짜내서 그걸 맞춰내면 희열이 있고, 거기서 저는 마음의 안정을 얻어요. 어느 한구석에 그런 강박적 성향이 있는 거죠."

신당창작아케이드에서 레지던시를 진행하면서, 미대 생활 때와는 달라진 동료들을 세계를 봤다. 서로 고독한 작업을 하면서 그들은 직접 서로를 돕고, 때론 멀찍이서 마음으로만 응원도 한다.

레지던시가 좋은 건 조직적으로 외부와의 협업도 가능하다는 점이다. 스스로의 작업을 지키며 그들이 원하는 외부(때로 상업적)의 디자인에 맞추는 것도, Permeated 또다른 스며듦일 것이다. 거기엔 자연스레 인간들과 삶과 작품이 부딪치면서 겪는 임팩트들이 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겠는가.        

"제 작품을 보실 때, 바탕 원단을 사서 자수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그걸 '다 직접 짜는 것이구나' 하는 걸 느껴주셨으면 해요. 인간의 몸은 아무리 커도 2미터를 넘기 어렵잖아요. 크기가 커지면 그게 주는 동물적 위세가 있어요. 핸드폰이나 모니터로 보면 절대 느낄 수 없는 부분이죠. 그러니까 작품들은 직접 보셔야 해요."

[관련기사 : 천 위에 펼쳐진 무한한 세계... 이런 자수 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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