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잘 될 거야~♬ 이 가수의 슬기로운 음악 생활

권혜숙,인터뷰 2021. 10. 6.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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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노래로 위로하고 연대하는 '슈퍼스타'의 이한철
싱어송라이터 이한철은 “노래는 사람과 사람, 마음과 마음을 잇는 4분의 기적”이라고 했다. 음악인이 아닌 이들과 공동음악창작 작업을 통해서 ‘사람이 어떻게 음악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가’에 대한 답에 가까워지고 있다고도 했다. 김지훈 기자


음악에는 힘이 있다. 힘든 시절에 더 빛을 발하는 가수 이한철의 노래 ‘슈퍼스타’가 좋은 예다. ‘괜찮아 잘 될 거야/ 너에겐 눈부신 미래가 있어/ 괜찮아 잘 될 거야/ 우린 널 믿어 의심치 않아’라는 희망과 격려를 담은 가사로 2007년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노래’ 등 2관왕을 차지하며 국민 위로송 반열에 올랐다. 원래 이 곡에는 실제 모델이 따로 있다. 가사에 ‘까무잡잡한 스포츠맨’으로 등장하는 고3 야구선수가 주인공. 대학 진학에 실패하고 실의에 빠진 그를 응원하기 위해 쓴 곡이었다.

코로나19로 힘겨운 날들이 길어지면서 이 곡의 주가가 다시 높아졌다. 최근 인기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2’의 주연배우들이 ‘슈퍼스타’를 리메이크해 음원 순위에 올랐다. 금의환향한 도쿄올림픽 양궁 국가대표 선수들이 TV에 출연해 부른 노래도 이 곡이었다. 이한철 본인도 동료 가수 17팀과 이 곡을 새로 편곡해 부르고 음원 수익금을 기부했다.

‘슈퍼스타’가 음악이 갖는 위로의 힘을 보여주는 노래라면, 이한철은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과 음악을 통한 소통과 연대의 힘을 실험 중이다. 2015년 중증장애인들을 시작으로 이웃과 함께 곡을 만들어 노래하고 음원을 발매해 무대에까지 서는 ‘나우’(나를 있게 하는 우리)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햇수로 7년, 모두 14곡이 발표됐다. 그동안 시니어 뮤지션들, 뇌전증 어린이들과 그 가족들, 암 경험자들, 경도 인지장애 어르신들, 노인맞춤돌봄서비스의 어르신들과 그들을 돌보는 생활지원사들과 같이했다. 이한철은 “사회에서 소외를 경험해 납작해진 사람들의 마음을 부풀어 오르게 만드는 게 음악의 역할”이라고 했다.

납작해진 마음이 부풀어 오르게

-음악인이 아닌 사람들과 작업하는 뮤지션은 흔치 않은데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제가 환경재단과 일본의 피스보트가 매년 띄우는 ‘피스앤그린보트’에 10년 넘게 참가했어요. 배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탑승자들과 어울려 노래를 만들게 됐어요. 1절은 한국어로, 2절은 일본어로 완성했는데 제게도 특별한 경험이었고 탑승자들에게도 서로 공감하는 잊지 못할 경험이 됐던 것 같아요. 그 자리에 있던 서정주 한국에자이 이사가 노래 만들기를 확대해서 체계적으로 해볼 것을 제안했고 나우가 출발하게 됐죠.”

-참가자들은 음악 작업이 처음일 텐데요. 다들 기뻐하나요.

“두려워하는 분도 계시죠. 2018년부터 3년 동안 암 경험자들과 합창단을 만들었어요. 첫해에 ‘아내가 권하고 음악을 좋아해서 왔지만 지금은 목소리도 잘 안 나오니 그냥 탈락시켜주세요’ 하신 분이 계셨어요. 그랬다가 합창단에 들어오셨고 1기 회장이 되셨어요. 그런데 점차 건강이 나빠지는 분들이 생겼어요. 결국 네 분이 돌아가셨죠.”

-아, 어째요.

“같이 노래하던 동료가 세상을 떠나는 걸 어떻게 받아들이실까 걱정이 컸어요. 그런데 더 단단해지더라고요. 밤을 새워 장례식장을 지킨 분들도 계셨죠. 그다음 주 연습에 더 열정적으로 참여해주셨고요. 위기의 순간에 마음으로 스크럼을 짜고 뭉치는 모습이 큰 감동이었어요. 1기 회장님이 돌아가신 분 중 한 명이었는데 아내분이 공연할 때마다 대신 응원 와주세요. 그렇게 만남과 인연이 이어지더라고요.”

중증장애인 정훈씨와 스튜디오에서 함께한 이한철. 긴장으로 계속 떠는 그를 위해 내내 손을 잡고 녹음했다고 한다. 나우 제공


암 경험자들이 모인 룰루랄라 합창단과 시니어 밴드 실버그래스는 봉사활동을 다니거나 버스킹을 하며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그중에는 음악 활동을 통해 삶이 달라진 이들도 있다.

“암 경험자들은 완치가 돼도 사회에 복귀하는 게 어려우니까 심적으로 위축된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음악 작업을 하고 나서 출판사를 만들어 ‘암밍아웃’(암+커밍아웃)이라는 책을 낸 분이 있고 뜨개질 클럽을 만들어서 활동하는 분도 계세요. 혼자 시작했다가 암 경험자들로 그룹을 만들었죠. 시니어 밴드 멤버 중에는 대학에 입학해 장학금을 받는 분도 있고요.”

서정주 이사가 옆에서 거들었다. “음악이나 창조 활동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경험을 하면 자존감과 자기 효능감이 높아지고 주체의식과 자치역량이 강화된다는 연구가 있어요. 실제로 나우 참여자들이 어떻게 자신감을 얻고 삶을 능동적으로 만들어가는지를 저희가 보게 됐고요.”

-음악이 그분들 마음에 희망의 씨앗을 뿌려서 열매를 맺고 있는 거네요. 같이 창작하고 같이 노래하면서 고난을 딛고 일어설 힘을 얻고, 그 경험을 공유한 분들과 연대가 이뤄지는 거로군요.

“맞아요, 딱 그거예요. 음악에 짜릿한 몇 가지 순간이 있어요. 본인이 툭 던진 말이 멜로디에 착 달라붙어서 가사가 됐을 때 감동이 있고 노래를 녹음할 때 또 한 번 그런 순간이 와요. 녹음실 부스에 들어가면 오롯이 내 목소리에만 집중하게 되거든요. 그리고 라디오에서 내 노래가 나오면, 그때 자존감이 팍팍 커지죠. 저도 그랬거든요. 처음 제 노래가 나왔을 때 ‘이게 제 노래예요!’ 소리 지르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그 기분을 경험하실 수 있게 제가 일부러 라디오에 출연해서라도 꼭 한 번은 방송에 노래가 나오게 노력합니다.”


나우 활동이 알려지자 지난해 EBS는 치매 환자로 구성된 ‘메모리즈 합창단’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그에게 합창단 지도를 의뢰했다. 그에게도 중증 치매 합창단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만나니까 저를 몰라보시는 거예요. 합창단이라서 앞줄 오른쪽에서 다섯 번째, 이렇게 자기 자리가 있는데 그걸 잊어버리시니까 2시간 연습에 1시간을 자리 잡다가 끝나기도 하고요. 목표가 제주국제합창축제 무대에 서는 거였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온라인 합창 공연으로 마무리가 됐어요.”

삐뚤빼뚤한 목소리가 주는 감동

나우의 공동음악창작은 이한철이 멜로디를 만들면 참가자들이 가사를 얹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모둠으로 나눠서 쓰기도 하고 구술하는 걸 서로 받아적기도 하면서 놀이하듯 가사를 만든다고 한다. 노래를 완성하고 연습을 거쳐 녹음하기까지 3~6개월의 과정이 걸린다.

-팬들은 서운할 수도 있겠어요. 개인 앨범을 만들 시간을 나우 활동에 할애하는 셈이잖아요.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은 적도 있었어요. ‘내 거 해야 되는데’ 하면서요. 그런데 이분들과 딱 마주하면 ‘내 거’가 사라져요, 그 순간만큼은.”

-나우의 노래들이 완성도 면에서 이한철씨 개인 곡보다 뒤처질 수밖에 없는데요.

“아무래도 곡을 쓸 때부터 맞춰야 할 부분들이 있죠. 할머니들하고 노래하는데 힙합을 하면 안 되잖아요. 음높이도 너무 도약이 되면 안 되고요. 하지만 음정이 틀리고 박자가 어긋나도 왠지 마음이 가는 음악이 있잖아요. 처음 몇 번은 참가자들이 부른 노래와 제가 솔로로 부른 노래를 같이 발표하다가 그만뒀어요. 제 건 못 듣겠더라고요. 그분들의 경험을 담아 직접 쓴 노래니까 그분들의 목소리가 답이라면 답인 거죠. 삐뚤빼뚤한 목소리가 주는 감동이 더 크더라고요.”

음악평론가 임진모는 이한철에 대해 ‘랄라라’ ‘나나나’ 같은 후렴구가 있는 떼창 형식의 곡을 많이 만들었다면서 ‘자신의 노래와 사람들이 함께 호흡하는 것을 꿈꾸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그는 화려한 보컬리스트가 사랑받는 시대에 ‘어떻게 부르느냐’보다 ‘무엇을, 왜, 누구와 부르느냐’를 고민하는 뮤지션으로 보였다. 그에게도 ‘완벽한 음악’에 대한 고민이 있었지만 기술적으로 잘 만든 노래보다 진정성을 담은 노래가 더 잘 전달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고 했다. 실제 이야기를 담은 ‘슈퍼스타’가 그 어떤 곡보다 많은 공감을 얻었듯이.

매년 나우의 한해 활동을 선보이는 ‘나우 패밀리 콘서트’의 한 장면. 올해는 지난달 11일 온라인 공연으로 진행됐다. 나우 제공
CEO가 된 ‘슈퍼스타’의 주인공

올해 나우 프로젝트는 서울 대전 대구 광주의 마을공동체를 찾아갔다. 지역 뮤지션들이 참여해 각각 서울 성미산 마을, 대전 대덕구마을, 대구 안심마을, 광주 일곡마을 사람들과 노래를 만들었다. ‘밥은 먹었슈?’ ‘우예 지냈노, 함 안아보자’처럼 귀에 쏙쏙 들어오는 가사가 담긴 4곡이 발표됐다.

-나우 활동을 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오히려 제 음악 안에 안주했으면 못 누렸을 경험을 쌓았죠. 제 음악 안에서 답을 찾고 그 깊이가 깊어지는 것도 물론 좋지만 많은 분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가사로 옮기고, 한 줄씩 같이 부르면서 차곡차곡 쌓이는 게 있었어요. 그러면서 제 음악도 성숙해졌고요.”

인터뷰를 마무리하려다 문득 ‘슈퍼스타’의 주인공인 고등학생 야구선수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야구는 그만뒀는데, 엄청 잘 됐어요. 노래가 나오고 나서 스스로가 자랑스러워졌다고 기운을 내더니 몇 년 전 화장품 스타트업을 시작했어요. 지금은 베트남 화장품 판매 순위 10위 안에 들었대요. 직원도 많고 사무실도 큰 회사의 CEO가 됐어요.”

음악은 과연 힘이 세다.

권혜숙 인터뷰 전문기자 hskw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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