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어죽거나 탈레반에 죽거나"..최악 경제난 내몰린 아프간

2021. 10. 6.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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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주민들이 현금을 인출하기 위해 은행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아프간) 수도 카불에 거주하는 비스밀라 자케리는 최근 날마다 길거리에 나와 살림살이를 내다 팔고 있다. 빵 살 돈을 구하기 위해서다. 자케리는 카불이 탈레반에 점령당하기 직전까지 교육부에서 간부급으로 일했다. 그는 "지금 상황은 굶어죽거나 탈레반한테 죽거나 둘 중 하나"라며 "어떻게든 현금을 마련해 파키스탄으로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

굶주림에 내몰린 아프간 시민들이 식기·이불 등 생필품까지 중고시장에 내다 팔며 현금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5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아프간을 재장악한 직후 국가 경제가 마비됐다고 보도했다.

현재 아프가니스탄은 국제적 고립으로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미국 등 서구권이 탈레반을 아프간의 합법 정부로 인정하지 않고 자금을 동결해 압박 수단으로 쓰고 있어서다. 아프간 정부가 미국에 보유하고 있는 중앙은행 자산 90억 달러(약 10조7000억원)에 대한 탈레반의 접근도 차단됐다. 아프간 경제는 지난 20년간 의존해온 국제 원조와 송금을 통한 달러 유입도 멈췄다.

시중에 달러가 마르자 아프간 은행은 인출을 제한하고 회사는 조업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식량 부족, 물가 급등으로 국민들의 생활고는 극에 달한 상황이다. 카불 소매업 협회에 따르면 탈레반 점령 이후 아프간의 쌀·식용유·밀가루 등 주식 가격이 30% 급등했다. 유엔개발계획(UNDP)은 내년 6월엔 아프간 국내총생산(GDP)이 13.2% 감소해 3800만 국민 모두 빈곤에 허덕일 것으로 전망했다.

탈레반은 달러의 국외 반출을 금지하고 은행 인출액을 주당 200달러로 제한하는 등 자본 통제에 나섰다. 카불에서 자동차 정비공으로 일하는 할렘 굴은 블룸버그통신에 "수리비를 지불할 돈을 갖고 있는 고객이 아무도 없다"며 "현금이 씨가 말랐다"고 전했다. 북부 최대도시 마자르 이 샤리프에서 카펫 공장을 운영하는 자예드 메흐리는 "직원 월급을 줄 현금이 없어서 조업을 중단해야 할 판"이라고 밝혔다. 이미 아프간의 일부 회사들은 현금 부족으로 폐업한 상황이다. 아프간 공무원조차 탈레반 재장악 이후 수개월째 월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

아프간 UNDP 대표 압둘라 알다르다리는 "극단적인 상황"이라며 "국가 경제가 돌아가고 있지 않다. 붕괴됐다"고 토로했다. 이에 국제기구와 각국 정부는 아프간 난민의 엑소더스(대탈출)를 막기 위해 제한적인 원조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지난달 UN은 12억 달러(약 1조4300억원)의 긴급 지원을 약속했고, 중국도 3100만 달러(약 369억원)를 지원키로 했다.

김서원 기자 kim.seo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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