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빨간불에도 "걱정없다" 英총리..외신 "근거없는 낙관론"
세계 5위 경제대국 영국의 전국 주유소에 기름이 떨어져 대기 차량이 꼬리를 물고 늘어서는 ‘주유 대란’이 발생했지만,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방송국 인터뷰에 등장해 “영국 경제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장밋빛 낙관론을 펼쳤다. 일각에서는 존슨 총리를 두고 “현실 감각을 잃은 팡글로스(근거없는 낙관론자)”라는 비난이 나왔다.
주유대란 심한데 총리는 "경제 성장중"
5일(현지시간) 존슨 총리는 영국 ITV와 BBC 라디오 인터뷰에 잇달아 출연해 “영국 경제는 거인이 깨어나면서 겪는 스트레스와 긴장 상태에 있을 뿐, 인플레이션 우려는 없다”며 “영국은 견실한 경제 성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영국이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를 계기로 결국 임금 상승과 투자 확대라는 수혜를 입게 될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현재 영국은 지난달 26일부터 전국적으로 극심한 주유 대란이 지속되고 있다. 이날 영국 대형 석유회사 브리티시페트롤(BP)이 “최근 전국 주유소의 3분의 1 정도는 기름 재고가 바닥났다”고 발표하자 일부 운전자들 사이에 기름 사재기가 빚어졌다. 대다수 주유소는 아예 문을 닫았고, 그나마 기름이 있는 곳에서는 1인당 주유 한도를 30파운드(4만8000원) 이하로 제한했지만 금방 재고가 바닥나고 있다. 주유소마다 기름을 구입하려는 차량이 길게 줄을 서면서 도로에는 차량이 뒤엉켜 정체가 빚어졌다.
브렉시트로 외국인 노동자 사라지자 곳곳 인력난
이 같은 주유 대란은 브렉시트와 코로나19 사태 후유증으로 외국인 노동자가 대거 빠져나간 데서 비롯됐다. 올 1월 영국은 브렉시트를 발효하면서 저숙련 노동자의 이민을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이민 제도를 변경한 바 있다. 새 이민 제도에 따르면, 외국인이 영국에 취업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숙련 기술과 영어 능력을 기준으로 점수를 받아야 한다. 저숙련 저임금 노동자나 영어 구사를 어려운 사람에게는 사실상 비자 발급을 막는 제도다. 결국 브렉시트 이후 외국인 트럭 운전사 2만 명이 영국을 빠져나갔다.
이에 대해 노동당의 키어 스타머 대표는 “영국에 석유 재고는 바닥이 났고, 석유를 실어나를 트럭 운전사는 현재 10만 명이 부족하다”면서 “충분히 예견 가능한 일이고 막을 수 있었음에도 정부의 완전한 계획 부족으로 이 같은 사태가 초래됐다”고 비판했다. 뉴욕타임스(NYT) 역시 “현재 영국의 주유 대란과 물자 부족은 외국인 노동자 고용을 어렵게 만든 브렉시트의 결과”라면서 “정작 정부는 사재기에 나선 국민에게 화살을 돌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NYT는 영국의 공급 부족이 크리스마스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영국인들은 크리스마스 때마다 칠면조, 베이컨으로 감싼 소시지, 글레이즈드 햄, 요크셔푸딩 등의 특선 요리를 먹는다. 하지만 전국양돈연합은 “도축장 인력 부족으로 12만 마리의 건강한 돼지마저 도태시킬 정도”라고 말했다. 영국양계협회 역시 “인력 부족 때문에 칠면조 생산량을 20% 줄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는 트럭 운전사 5000 명에게 단기 비자를 발급하기로 했지만, 지금까지 127명이 신청했을 뿐이라고 존슨 총리는 말했다. 업계에서는 27명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물가 상승세도 심상치 않다. 영국의 8월 물가 상승률은 3.2%였고 영란은행은 4%가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목표 물가 상승률은 2%였다.
"다른 길 없다"는 총리…외신은 "팡글로스" 비난
상황이 이런데도 존슨 총리가 방송 인터뷰에서 “최근 회자되는 인플레이션 공포는 근거가 없으며, 수요공급 법칙에 따라 기업들이 문제를 풀 것”이라고 낙관론을 이어갔다. 브렉시트가 옳은 결정이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다른 길은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는 마거릿 대처 전 총리의 어록을 인용하기도 했다. 대처 전 총리는 과잉 복지와 생산성 저하라는 ‘영국병’을 고치기 위해 강력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면서 이같은 말을 남겼다.
존슨 총리는 또 “정부는 하루아침에 마법처럼 시스템을 변화시킬 수는 없고, 영국은 새로운 경제모델로 전환하는 터닝포인트에 와 있다”고 강조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존슨 총리가 BBC와의 인터뷰에서 주유 대란과 인플레이션 문제에 대해 모호한 장광설을 이어가자 진행자가 “그만 말하라”고 저지했다고 보도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칼럼을 통해 존슨 총리의 태도를 ‘팡글로스’에 빗댔다. 팡글로스는 프랑스 작가 볼테르의 소설 『캉디드』에 등장하는 엄청난 낙천가다. 순진한 청년 캉디드를 가르치는 팡글로스 교수는 “모든 것은 최선의 상태에 있다”고 주장한다. 볼테르는 팡글로스를 통해 유럽의 근거없는 낙관론을 조소했다. 가디언은 “존슨 총리는 현재의 경제난을 밝은 미래로 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시적 난기류로 설명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총리가) 목적지를 유토피아로 그릴수록, 거기에 도달할 실제 가능성은 낮다”고 일갈했다. NYT 역시 “존슨 총리와 영국 보수당은 안일하고 현실 감각이 없다”고 비판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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