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검색어 사라진 자리, 더 끔찍한 것이 차지했다

하성태 2021. 10. 6.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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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사이버 렉카'와 다를 바 없는 커뮤니티 기사의 폐해

[하성태 기자]

 대다수 커뮤니티 기사들은 언론사들의 제 살 깎아먹기 경쟁을 반영하거나 클릭 장사의 폐해를 여과없이 반영하고 있을 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elements.envato
 
"16세 자녀 음란물 문제 어떡하면 좋죠..."

최근 어느 직장인 커뮤니티 게시글 제목이다. 눈에 확 띈다. 또래 자녀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라도 관심을 가질 사안일 수 있다. 구체적인 문의 내용이 어땠는지는 둘째치더라도 청소년기를 통과한 이라면 한 번쯤 눈길을 줄 만한 사연이었다. 실제로 해당 게시글이 공유된 각 커뮤니티마다 수백 개의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해당 사연은 <조선일보>를 비롯해 최근 일부 언론이 기사화하면서 한층 더 널리 퍼져나갔다. 이른바 '커뮤니티발 보도'의 일환이었다. 맞다. 하루가 멀다 하고 포털에 출몰하는, 유력 매체가 1보를 썼다하면 줄줄이 관련 기사가 쏟아지는 그 커뮤니티 보도가 관심을 키운 것이다.

물론 순기능도 있다. 최근 '당근마켓에 등장한 범죄자'란 커뮤니티 게시글을 인용한 기사들이 그랬다. 해당 기사들은 유명 중고거래 앱에 올라온 청소년들을 상대로 한 '신분증 위조 범죄'를 고발하는 순기능을 발휘한 측면이 없지 않다. 

지난 9월 27일 SBS는 <"내 집서 내가 피우는 담배" XXX호 주민의 황당 협조문>이란 보도에서 "한 아파트에 흡연자 주민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적반하장식 협조문이 붙어 누리꾼의 공분을 사고 있습니다"라고 전했다. 이 역시 '실시간 e뉴스'란 이름 하에 커뮤니티 게시글을 인용한 보도였다.

SBS는 해당 보도 말미 "다만, 관리사무소 등을 통해 흡연 중단을 권고하는 제재만 가능하다고 기사는 전했습니다"라고 전했다. 우연인지 실수인지, '커뮤니티 게시글' 내용을 '기사'라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일부다. 이런 순기능이나 보도 역할을 담당하는 커뮤니티발 기사의 숫자 말이다. 대다수 커뮤니티 기사들은 인터넷 시대를 넘어 스마트폰 시대로부터 도래한 언론사들의 제 살 깎아먹기 경쟁을 반영하거나 클릭 장사의 폐해를 여과없이 반영하고 있을 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허한 외침, '이게 기사냐'

'이게 기사냐'라거나 '인터넷 커뮤니티가 취재 현장이냐'와 같은 기사 댓글들을 목도한 적이 있으신지. 대부분의 커뮤니티 기사들은 해당 게시글을 짜깁기하거나 적당히 편집한 수준에서 머무르는 것이 고작이다. 연예인이나 유명인, 공인들의 소셜 미디어 글 하나마저도 기사화되는 시대에 뭐 어떠냐고?

그게 그렇지 않다. 사실인지 확인되지 않은 커뮤니티 글이 기사화되고 포털에서 확인되는 순간, 얘기가 달라진다. 예컨대 피해자와 가해자가 명확히 갈리는 경우는 어떤가. 커뮤니티 글에 담긴 일방의 주장이 허위였을 때를 떠올려 보라.

사실 확인을 거치지 않은 기사들은 그 허위 주장에 어마어마한 힘을 실어주는 허위 보도로 기능하게 되는 것이다. 그게 대수롭지 않게 여겨진다면 스스로가 그 허위 보도의 피해자가 됐을 때를 상상해 보시기를.

이미 커뮤니티 기사의 폐해는 상당 부분 진화에 진화를 거듭 중이다. 개인의 공방을 넘어 사회적 담론이나 논쟁을 부추기는 경우까지 나왔다. 지난 7월 <뉴스1>의 <'핫팬츠 女승객 쓰러졌는데 남성들 외면...3호선서 생긴 일 '시끌'>이란 기사가 대표적이다(관련 기사 : "지하철에서 쓰러진 여성 승객, 남성들도 도왔다" http://omn.kr/1ud3s).
 
 지난 추석연휴 끝무렵 포털사이트를 달군 커뮤니티발 기사
ⓒ 화면캡처
 
과정은 이랬다. 인터넷 커뮤니티 '보배드림'에 올라온 <어제 지하철에서 생긴 일>이란 게시글이 발단이었다. "지하철에서 여성분이 갑자기 실신했는데 정말로 주변 남성분들 대처를 안 하더라"던 해당 게시글을 <뉴스1>이 1보로 기사화했다. 이 매체는 '여성 승객의 짧은 옷차림 때문에 남성들이 성추행 의심을 받을까봐 도와주려 나서지 않았다'는 게시자의 목격담을 여과 없이 전했다.

사실 확인은 부실했다. 보도가 확대 재생산되면서 애초 게시글에 담긴 '젠더 갈등'의 요소 역시 눈덩이처럼 부풀었다. 하지만 게시글 내용은 사실이 아니었다. 수일이 지나서야 <로톡뉴스>, <오마이뉴스> 등이 확인 취재에 나섰고, 여성 승객은 숏팬츠 차림도 아니었고 남성 승객들이 도와줬다는 사실이 전해졌다.

하지만 확인 보도보다 갈등 기사가 훨씬 더 잘 팔리는 법. 해당 기사가 부추긴 젠더 갈등은 이미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 등을 한바탕 휩쓸고 간 뒤였다. 이와 관련해 지난 7월 KBS <질문하는 기자들 Q>는 <무분별한 커뮤니티 보도..부끄러움 모르는 언론>에서 해당 논란을 취재한 뒤 이런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와 유명인 SNS, 외국언론, 다른 언론사가 쓴 화제성 기사 등을 주 소재로 하루에 5~10건 넘게 기사를 쓴다. 현직 '인터넷 이슈 대응'부서 기자들도 이러한 현실에 대해  "언론 신뢰도나 매체 영향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며 부정적이다. 하지만 언론사들은 오히려 이런 불량 기사들을 '픽'해 적극적으로 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질문하는 기자들 Q>는 또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언론사 18곳을 대상으로 지난 3개월 동안 포털에서 조회 수 상위권을 기록한 10개 기사를 분석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익명의 게시글을 단순 인용해 남녀갈등을 유발하는 기사에 1만 개가 넘는 댓글이 달리고, 94만에 이르는 페이지뷰를 기록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먹고사니즘의 폐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정성과 클릭 장사. 이러한 커뮤니티 기사들이 왜 양산되는지, 왜 언론사들은 이런 저품질 기사들을 끊어낼 수 없는지에 대한 비판 및 취재는 이미 수해 동안 지적돼 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저품질 기사들이 결국 기사의 과도한 연성화로 이어진다. 더 나아가 이러한 저품질 연성화 기사들은 유튜브 시대 '사이버 렉카' 영상의 범람에 일조한다고 볼 수 있다.

언론들의 망가진 의제 설정 기능과 클릭 장사 몰두를 통한 수익 우선이야말로 '사이버 렉카'로 돈을 버는 유튜버들의 자양분으로 기능하고 있기 때문이다(관련 기사 : '손정민 사건' 언론 보도, 사이버렉카 비판할 자격 있나 http://omn.kr/1tgts).

지난 6월 <기자협회보> 또한 <'실검 보도' 사라진 자리 꿰찬 '온라인 커뮤니티 보도'> 기사에서 이러한 커뮤니티 기사의 폐해를 지적하며 현직 언론인들의 토로를 담아낸 바 있다. 인터넷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 폐지 이후 이러한 커뮤니티 기사들의 숫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실검이 사라진 이후 다양한 시도의 일환인 거다. 실검 대응을 할 때는 그나마 시사 이슈에 대한 내용이었지만, 이제는 말초적인 내용이 더 많아졌다. (...) 온라인 기자들도 울며 겨자 먹기로 하고 있다. 최근 이런 기사들이 소위 '먹히는' 걸 보고 타사에선 커뮤니티 발 보도, 해외토픽 류 기사만 전담하는 조직을 만들려는 움직임도 있다." (종합일간지 온라인부서 소속인 A 기자)

"기사들이 네이버 언론사 편집판에 올라가면 조회수가 엄청나다. 해당 기사 조회수가 높으면 AI가 'MY뉴스'로 픽업해 기사를 더욱 확산시킨다는 얘기도 돈다. PV(페이지 뷰)를 100이라고 보면 언론사 편집판을 통해서 들어오는 게 30~40이고, 나머지는 MY뉴스 영역이다. AI가 작동해서 이런 기사의 PV를 더 올리고 있는 것(이다)."

결국 언론들의 '먹고사니즘'에서 비롯된 것이 커뮤니티 기사를 포함한 저품질 기사다. 그러한 저품질 기사들이 안 그래도 바닥인 대한민국 언론의 신뢰도를 갉아 먹고 있다. 유감이지만, 이러한 언론계 생태계에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명제는 통용되지 않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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