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人] 유럽의 병자에서 경제대국으로..'무티 리더십'이 이끈 16년

조유진 2021. 10. 6.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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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아시아경제 조유진 기자] ‘유럽의 병자에서 최대 경제 대국으로’.

통일 여파로 장기 침체에 빠진 ‘병든 국가’ 독일을 유럽연합(EU)의 최대 경제 대국으로 탈바꿈시킨 앙겔라 메르켈 총리. 지난달 말 치러진 총선과 함께 16년간의 총리직에서 물러나지만 여전히 독일인들은 메르켈을 그리워하고 있다. 총선 이후에 차기 연립정부 구성에 상당한 난항이 예상되면서 ‘포스트 메르켈’ 시대에도 여전히 메르켈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전망까지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4일(현지시간) "메르켈은 독일의 일대 번영을 이끌었지만 그는 호전적이지도, 독재적이지도 않은 자비롭고 용감한 지도자였다"며 "독일은 그와 같은 지도자를 다시 보기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강국들의 이기심 속에서 그는 서구진영의 리더십을 상징하는 인물이 됐다.

◇부실투성이 獨 … EU의 전체 GDP의 4분의1로= 메르켈은 2005년 독일 역사상 첫 여성 총리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취임해 4차례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메르켈이 집권했던 지난 16년 간 위기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1년 유럽재정위기, 2015년 시리아 난민사태, 그리고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등 시련이 닥칠 때마다 ‘무티(엄마) 리더십’을 발휘해 독일을 이끌었다.

EU 통계 기구인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 사태 직전 해인 2019년 EU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4분의 1(24.7%)은 독일에서 나왔다. 메르켈의 집권 14년 차에 이뤄낸 성과다. 메르켈은 독일을 EU 1위 경제 대국으로 성장시켰지만 첫 출발부터 순탄치는 않았다. 그가 취임한 2005년만 해도 독일은 통일 여파로 높은 실업률과 극심한 재정적자에 허덕였다. 경제는 부실투성이었고, 2002년 이래 매년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GDP)의 3% 이내로 유지하도록 한 EU ‘안정성장협약’ 기준을 위반할 정도로 재정 상태는 악화일로였다.

메르켈은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의 ‘어젠다 2010’ 개혁정책의 기본틀을 이어받아 세제, 노동, 경제 부문에서 개혁을 단행했다. 고용유연화와 법인세율 인하 등 시장친화적 정책으로 기업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부유세를 거둬들이는 세제 개혁을 단행, 부채 감소와 경제 회복을 이끌었다. 이 결과 메르켈 총리가 집권하는 동안 실업률은 2005년 11.1%(세계은행 집계 기준)에서 지난해 3.8%로 낮아졌다. 현재 독일은 EU 회원국 가운데 네덜란드에 이어 실업률이 가장 낮은 국가로 꼽힌다.

메르켈이 대량 실업 위기 돌파를 위해 꺼낸 카드는 ‘쿠르자르베이트(단축근무제)’였다. 쿠르자르베이트는 위기 상황에서 고용자가 직원을 해고하는 대신 근무시간을 단축해 고용을 보호하는 프로그램으로, 단축근로로 줄어든 급여삭감분의 일부를 정부가 보전해주는 제도다. 골드만삭스 애널리스트들은 "메르켈 정부가 건전한 공공 재정을 유지하고 부채 증가에 제동을 걸었다"면서 "그는 2008년과 2020년 위기 때마다 ‘쿠르자르베이트’ 프로그램으로 노동시장을 성공적으로 방어했다"고 평가했다.

독일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단축 근무를 활용해 고용 위기를 극복한 전례가 있다. 당시 폭스바겐, 다임러, BMW 등 독일 완성차 3사를 비롯해 루프트한자항공 등 대기업들도 단축근무에 동참했다. 그 결과 메르켈 집권 첫해 2조3000억유로(독일연방통계청 집계치)였던 독일 GDP는 지난해 3조3000억유로로 뛰어올랐다.

독일이 영국·프랑스 등 다른 EU 강국들과 다른 면모를 보였던 건 난민정책이다. 메르켈 총리는 EU 국가들의 반이민 정서 속에서도 나홀로 포용적인 이민정책을 펼쳤다. 특히 시리아 내전으로 수십만 명의 난민이 EU에 밀려들던 2014~2015년 당시 국경을 폐쇄하고 반이민기조를 보였던 다른 국가와 반대로 메르켈은 국경을 개방하고 100만명이 넘는 난민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 같은 관용적 난민정책은 보수 지지층의 반발과 이탈로 이어지면서 2017년 총선에서 지지율이 하락하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포스트 메르켈’ 시대 누가 이끌까= 독일에서는 차기 연립정부 구성을 위한 협상이 본격화됐다. 5일(현지시간) 캐스팅 보트를 쥔 녹색당과 자유민주당(FDP)은 1단계 예비협상을 마치고, 이번 주 내 사회민주당과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연합 중 어느 정당과 먼저 연정 협상에 나설지 결정한다는 계획이다. 현재로선 지난 20대 연방의회 선거 결과 16년 만에 제1당으로 올라선 사민당의 올라프 숄츠 총리 후보가 ‘포스트 메르켈’ 시대의 주인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총리 역시 역사적으로 1당에서 선출되지만 무조건적이지 않다.

독일은 전통적으로 사민당과 기민당이 번갈아 1, 2위를 차지하며 2개 정당이 참여하는 연정을 구성해왔다. 연정 구성 시나리오는 현재 신호등, 자메이카, 대연정 등 3가지로 압축된다. 사민당과 메르켈의 기민·기사련은 각자의 정당이 연정을 주도하겠다는 입장이다. 3개 구도 중 가장 가능성이 큰 시나리오는 사민당이 주도하고 자민당과 녹색당이 참여하는 신호등 연정과, 기민·기사련이 주도하고 자민당과 녹색당이 참여하는 자메이카 연정이다. 양대 정당 중 어느 쪽이 연정 구성을 주도하든 자민당과 녹색당을 끌어들여야 한다. 기민·기사련이 배제되는 신호등 연정 구성 시 독일 정부 방향에 있어 대변화가 예상된다.

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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