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킹] 예측할 수 없는 맛, 내추럴 와인엔 냉털 안주

안동선 2021. 10. 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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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이 있는 밥상 ② 내추럴 와인과 타파스

내추럴 와인(Natural Wine)의 폭발적인 인기는 이제 일상이 된 듯하다. 을지로, 서촌, 삼각지처럼 ‘핫’하고 ‘힙’하다고 소문난 동네에 하루가 멀다 할 정도로 새로 문을 열곤 하던 내추럴 와인바와 보틀숍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영업 중인 걸 보면 말이다. 그뿐이 아니다. 내추럴 와인에 관한 번역서가 속속 출간됐고, 와인을 좋아하는 주위 사람 중에도 내추럴 와인만 마신다는 이들이 늘고 있을 정도다.

내추럴 와인의 기준은 생산자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최소한의 개입을 통해 최대한 자연적인 방식으로 만든 와인을 뜻한다. 지속 가능한 재배 방식으로 기른 유기농 포도를 사용해야 하고, 일부 와인에 소량의 아황산염(운송 과정에서 보존력을 높이기 위한 방부제 역할을 하는 물질)을 넣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빼거나 더하지 않고 만든다.

생산자가 최소한의 개입을 통해 최대한 자연에 가깝게 만든 내추럴 와인이 인기다. 사진 pixabay.


쉽게 말해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가 자연의 순리에 따라 만들던 방식을 그대로 고수해 만든 와인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그래서 매우 독특한 맛과 향을 선사하는데, 보관 상태나 날씨에 따라 전혀 다른 와인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내 경우에는, 내추럴 와인이 좋기도 하고 꺼려지기도 한다. 좋은 이유는 며칠 두고 마실 수 있어서다. 병을 딴 지 하루 정도가 지나면 안 먹는 것이 나은 일반 와인과 달리, 병입(와인을 병에 넣는 작업) 후에도 계속 ‘살아 있는’ 내추럴 와인은 며칠간 잘 보관하면서 마실 수 있다. 미묘하게 변화하는 그 맛이 좋아서 일부러 며칠을 두었다가 마시라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다.

자연을 최대한 거스르지 않겠다는 와인 생산자의 태도도 존경할 만하다. 변덕스러우며, 어떤 때에는 치명적이기까지 한 자연을 그대로 받아들여 와인을 만든다는 것은 거의 신념에 가까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소비자로서 내추럴 와인을 마시는 일이 생산자의 신념에 일조하는 행위라는 기분이 드는 것도, 내추럴 와인이 마음에 드는 이유 중 하나다.

반면 꺼리게 되는 이유는 와인을 하나의 상품이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다. 내추럴 와인은 일정한 맛의 퀄리티를 제공하지 못할 때가 많다. “어떤 와이너리의 어떤 빈티지는 이렇고 저런 맛이야”하는 공식이 통용되지 않는다. 또, 애초에 소량 생산되고 보관과 유통이 까다롭다 보니 와인 가격이 비싸다는 것도 결정적인 불만 사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 그 와인에서만 맛볼 수 있는 고유한 아로마와 뉘앙스를 선사하는 내추럴 와인을 만날 때면 ‘이것이 내추럴 와인의 마력인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어 혼자 또 감탄하고 마는 것이다. 결국, 나 혼자 내추럴 와인과 사랑에 빠졌다 다시 냉담해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내추럴 와인은 대개 와인바에서 마시는 편인데, 가끔 믿을 만한 소믈리에에게 좋은 와인을 소개받거나 친구들에게 선물 받을 때는 집에서 마시기도 한다. 집에서 내추럴 와인을 마시는 날이면, 거실은 캐주얼 ‘타파스 바’로 변신한다. 스페인에서 식사 전에 술과 곁들여 간단히 먹는 소량의 음식을 타파스라고 하는데, 냉장고를 털어 나오는 재료로 간단한 음식을 만드는 소위 나만의 ‘냉털 타파스’다. 내추럴 와인의 맛을 예측할 수 없으니 어울리는 음식도 미리 준비할 수 없어서다. 냉털 타파스는 누구나 좋아할 메뉴에 만들기 어렵지 않으며 어느 술과도 잘 어울린다는 것이 포인트다.


내추럴 와인과 냉털 타파스


① 감자명란 샐러드


날카로운 기포의 샴페인 같은 술뿐만 아니라, 커피와도 잘 어울리는 감자명란 샐러드. 사진 안동선.
개인적으로 가장 즐겨 해 먹는 음식이다. 2010년부터 8년간 서교동에서 ‘올드 크루아상 팩토리’를 운영한 양윤실 베이커의 레시피인데, 지난해 양윤실 베이커와 함께 독립출판물인 〈EDIT SALAD COOKBOOK〉을 만들면서 익힌 요리다. 염도를 낮춘 백명란을 사용하고 아보카도 드레싱을 흘러내릴 듯 뿌려주는 게 포인트다. 나의 경우, 친구들이 놀러 와 배고프다고 아우성치기 시작하면 빵에 곁들여 이것부터 내준다. 도예를 전공한 양윤실 베이커의 컬러풀한 감각이 돋보이는 레시피라, 손님 접대로 내놓기에도 손색이 없다. 또 술과 커피, 모두 다 잘 어울린다. 날카로우면서도 섬세한 기포의 샴페인이나 짭조름한 미네랄리티가 특징인 화이트와인은 물론이고, 브런치로 커피나 차와 함께 먹어도 좋다.

재료(2인): 감자 2개, 백명란 1알, 올리브오일과 레몬즙 조금, 아보카도 소스(아보카도 1개, 레몬즙 1/2스푼, 올리브오일 5스푼, 꿀 그리고 소금과 후추 조금).

만드는 법
1. 감자를 20여 분간 찐다.
2. 아보카도 소스 재료는 믹서에 한꺼번에 넣고 간다. 소금과 후추는 취향껏 가미한다.
3. 찐 감자를 뜨거운 상태에서 숭덩숭덩 자른 후 믹서에 갈아 놓은 아보카도 소스를 끼얹는다.
4. 백명란의 투명하고 얇은 껍질을 벗겨내 그 위에 듬뿍 올린다.
5. 올리브오일과 레몬즙을 취향껏 뿌린다.


② 방울토마토 피클


카나페의 재료나 사니시로 잘 어울리는 방울토마토 피클. 사진 안동선.
개인적으로 토마토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장을 볼 때면 매번 ‘야식 대신 먹어야지’하며 방울토마토를 사는데, 일주일이 지나도록 한 알도 건드리지 않는 일이 부지기수다. 그럴 때 피클을 만들어 말라 비틀어가는 토마토를 구제한다. 바게트에 마스카포네치즈를 바르고 그 위에 토마토 피클 한 알만 올려도 그럴싸한 카나페가 된다. 또 스테이크를 빛나게 해주는 가니시(garnish) 역할을 하는, 전천후 메뉴다. 방울토마토 피클은 어떤 면에서 내추럴 와인과 닮았다. 완성한 맛이 어떨지 만드는 순간에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맛의 완성은 숙성의 마법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안 파슬리나 딜 같이 좋아하는 허브를 양껏 넣어 와일드한 풀 향을 배가시키면 더 좋다.

재료(2인): 방울토마토 1팩, 양파 1/2개, 이탈리안 파슬리 혹은 딜 한 줌, 레몬 1개, 식초, 꿀, 소금, 후추, 올리브오일.

만드는 법
1. 토마토는 깨끗이 씻는다. 꼭지를 따고 열십자로 칼집을 내어 끓는 물에 30초~1분간 넣었다 뺀 후 껍질을 벗겨낸다.
2. 양파, 파슬리(혹은 딜)를 곱게 다진다.
3. 레몬즙, 식초, 올리브오일을 1:2:2의 분량으로 넣고 섞는다.
4. 3에 2를 넣고 꿀, 소금, 후추는 취향껏 첨가한다.
5. 소독한 병이나 락앤락에 넣고 하루 정도 냉장 보관했다가 먹는다. 일주일 정도 냉장 보관하며 먹는다.


③ 엔다이브와 치즈 딥


숙성된 산도가 특성인 내추럴와인이나 채소 스틱 등과 궁합이 좋은 엔다이브와 치즈 딥. 사진 안동선.
엔다이브는 꽃상추의 일종으로 벨기에의 대표적인 샐러드 채소다. 배추의 속처럼 타원형으로 생겼는데 씹을 때의 느낌이 좀 더 폭신하다. 무엇보다 끝이 뾰족한 순백색이 어여쁘다. 잎을 한 장씩 떼어 그 위에 큐브 형태의 연어나 참치회, 크림치즈를 올려 먹기도 하는데, 내 경우엔 염소젖 치즈 딥 소스를 만들어 찍어 먹는 걸 좋아한다. 특유의 육향을 지닌 염소젖 치즈에 크림치즈와 요거트 등을 섞어 내 취향으로 만든 딥 소스다. 염소젖 치즈는 전통적으로 소비뇽 블랑 등 산도가 좋은 화이트와인과 잘 어울린다고 알려진 치즈다. 숙성된 산도가 특징인 내추럴 와인과도 좋은 궁합을 이룬다. 엔다이브뿐 아니라 오이, 당근, 샐러리 등 채소 스틱과 먹어도 잘 어울린다.

재료(2인): 엔다이브 1팩, 염소젖 치즈 1/2개, 크림치즈나 생크림 혹은 요거트 5큰술, 허니 로스티드 마카다미아너트(생략 가능).

만드는 법
1. 엔다이브를 흐르는 물에 씻어 한 잎씩 떼어둔다.
2. 염소젖 치즈에 크림치즈나 생크림 혹은 요거트를 넣고 되직한 농도가 될 때까지 숟가락으로 섞어준다.
3. 약간 오목한 접시에 2를 깔고 그 위에 엔다이브를 한 장씩 겹쳐서 플레이팅 한 후 마카다미아너트를 살짝 부숴 전체적으로 뿌려 준다.

안동선 작가 cook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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